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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긴 만남 부모님 집에서 약간은 뜻밖의 책을 발견했는데, 책 겉표지에 마종기의 이름과 함께 루시드 폴의 이름이 적혀있는게 아닌가. 집에 마종기 시집이 한두권 돌아다니는 것은 봤던지라 부모님이 마종기 시인을 좋아하나 하긴 했었는데, 마종기와 루시드 폴의 이름이 동시에 등장하는 책이라니. 나는 이런 책이 나와 있는 줄도 몰랐다. 이 책에 대해 얘기가 나오자 어머니는 우리더러 마종기 시인을 아냐고, 마해송씨 아들인데 시인이라고 설명한다. 우린 오히려 마해송씨가 마종기 시인의 부친이라고 해야 더 쉬우니... ㅎㅎ 물론 두분은 루시드 폴은 잘 모르신다. 먼저 yeon이 발견해서 빌려와선 읽었고, 나도 읽었다. 우선 나는 루시드 폴을 매우 좋아한다. 미선이 시절 음악은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지만, 루시드 폴로 활동하면서부터는 .. 2009. 11. 7.
암살주식회사 잭 런던의 암살주식회사의 원제는 The Assassination Bureau, Ltd. 이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르나, 요즘 회사에서 재무관련 수업을 듣고 있는 영향인지 암살주식회사라면 설마 상장한 회사인가, 이것은 번역하면 암살 유한책임회사 아닌가, 과연 소설 속 이 조직이 유한책임회사의 형태인가... 잠시 생각해보았다. 뭐 Bureau, Ltd.라니 책 안에서는 암살국이라는 번역도 쓴다. 이후 스포일러(?) 있으니 유의하시라. 왠지 책 커버 디자이너가 책을 제대로 안읽어본 것 같아. -_-; 어쨌든. 이 책은 제목도 흥미롭지만 그 태생은 더욱 흥미롭다. 노동하듯 쓰기를 지속하여 다작으로 소재가 고갈되어간 잭 런던이 1910년 무명작가 싱클레어 루이스로부터 70달러에 구입한 14편의 .. 2009. 10. 24.
The Time Traveler's Wife yeon이 아마 시카고에 있을 때부터 사가지고 있다가 다 못읽고 두었던 것 같은데, 나는 일찌감치 영어로 읽는 건 관두고 한글판을 따로 샀다. 개인적으로는 영문판 표지가 훨씬 좋다. 소설의 가장 지배적인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번역판은 두권으로 나눠진 것도 별로고. 처음 제목을 들었을때부터 내용이 궁금했는데, 다 읽고 난 뒤에 생각해보니 제목이 상당히 낚시였다. 왜냐면 시간여행자인 남편과 일반인인 부인이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공동 주인공인데, 만일 남편을 제목으로 딴다면 제목은 그냥 '시간여행자'가 될 것이고, 공평하게 한다면 제목이 '시간여행자 가족'이 되겠으나, 어느 쪽이었어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아, 굳이 '아내'를 붙여야 겠다면 남편의 시간이동도 의지대.. 2009. 10. 14.
얼렁뚱땅 흥신소 예전에 내조의 여왕이 끝났을 때 썼던 드라마 얘기에서 2007년에 제대로 본 드라마가 없다고 했는데, 하나가 채워졌다. 그때도 썼지만 원래는 2007년 작품으로 검증된 김명민의 하얀거탑을 보려 하였으나, 브로드앤TV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브로드앤TV에 전엔 종영 드라마가 제법 많았는데, 지상파 방송사들과 계약이 바뀌었는지 영 라이브러리가 빈약해졌다. 그래도 남아있는 종영 드라마들 중에 눈에 띈 것이 얼렁뚱땅 흥신소!(이하 '얼뚱소') 2007년의 드라마로 얼뚱소를 손에 꼽은 몇몇 글들을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나서 보게 된 얼뚱소. 사전 지식은 '재밌다더라'가 전부. 사진 출처 : http://www.kbs.co.kr/drama/gold/issue/download/index.html 잠시 사족인데, .. 2009. 8. 17.
Night on Earth 이 와중(?)에 특별 언급할 만한 영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사연도 있고 얼마전에 나름 재미있게 본 작품이다. 짐 자무쉬 감독의 1991년작, 위노나 라이더가 출연한 영화라니 내가 그때 얼마나 보고 싶어했을 영화였겠나. 그러니까 내가 무려 18년 동안 보고싶어 하던 영화다. 그때는 몰랐을거다. 내가 그 당시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되리란 것을. 그리고 그런 세월이 흘러도 나는 그 세월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는 것을. 이 영화는 다섯개 도시의 택시와 관련된 다섯 밤 이야기다. 그 옛날의 여신이었던 그녀도 택시 드라이버로 나온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영화에 대한 정보였고, 이 영화는 가장 오랜동안 내가 볼 영화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아주 최근에 그 영화 리스트는.. 2009. 6. 14.
Be Kind Rewind 미셸 공드리와 짐 캐리가 만나서 전혀 기대치 못했던 이터널 선샤인이 나왔다면, 미셸 공드리와 잭 블랙이 만난다면? 영화를 보고 나니 이 경우엔 조금 더 예상 가능한 결과물이 나왔다고나 할까. 이터널 선샤인이 전형적인 짐 캐리 영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반면, Be kind rewind의 경우에는 감독과 주연의 트레이드 마크들이 반반씩 만난 것 같다. 그러니까, 기발하고 웃기다. 아래부턴 스포일러가 있다. 장면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수면의 과학에서도 보여준 과장된 소품. 저걸 보고 비디오가게 주인이 철자법을 잘 모른다는 결론을 내린 비디오가게 알바. 어이없는 녀석들. 어이없는 잭 블랙. 비디오 가게의 비디오들은 왜 다 저렇게 맛이 갔을까? 주인한테 들키지 않기 위해 자작 영화들을 찍어대는데.... 2009. 5. 22.
내조의 여왕 내조의 여왕이 끝났다! yeon과 나는 1년에 두개 정도의 우리나라 드라마 - 주로 16부작 내외의 미니시리즈 - 를 보는데, 내조의 여왕은 올해 우리에게 선택된 첫번째 드라마다. 사실 내가 드라마를 찾아서 본 건 그 옛날 최민수가 대발이로 나오던 '사랑이 뭐길래' 이후 꽤나 긴 공백기가 있었다. 찾아보니 '사랑이 뭐길래'는 91~92년 방영된 55부작... -_-;; 그 이후로 수많은 장안의 화제작들이 있어왔으나 나는 '여명의 눈동자'나 '모래시계' 같은 드라마도 매우 띄엄띄엄 봤을 뿐이다. '대장금'이나 '허준'도 한두편도 채 안봤고, '가을 동화'니 뭐니 하는 한류 드라마는 아예 한편도 안본 것들이 대부분이다. '거짓말'이나 '아일랜드' 같이, 왠지 나랑 코드 맞는 사람들도 좋아하던 작품들도 별로 .. 2009. 5. 21.
부분과 전체 불확정성 원리로 유명한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역시 고전은 읽는데 시간이 걸린다. -_-; 이 책의 쟝르(?)를 어떻게 구분하면 좋을까...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위주로 풀어간 자서전적인 비망록 정도로 정의하면 될까? 책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나름 인터넷에서 떠도는 유명한 사진 한장 보고 가자. 1927년 Solvay회의 참석자들의 무시무시한 포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마담 퀴리, 슈레딩거, 보어, 막스 플랑크, 로렌츠, 파울리, 보른, 윌슨(안개상자), 콤프턴, 드 브로이, 폴 디락 등등... 이 사진의 29명 중 17명이 노벨상을 받았거나 받게 된다. 얼핏 물리학 전체 역사의 1/3쯤은 여기 다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도 난다. 당시 하이젠베르크 주변에 넘쳐나던 이런 사람들과의 대화, 누.. 2009. 5. 10.
당신 인생의 이야기 나는 원래 책을 따로 시간내서 읽는 편이 아니다. 출퇴근 전철안에서 읽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일단 손에 잡은 책은 상당히 정독한다. 그러다보니 다독과는 거리가 멀다. 정독의 습관은 적어도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안좋은 방법이다. 그래도 내가 구입까지 하는 책들은 대부분 정독하고 싶은 책들이다. 하지만 요즘은 회사에 책 빌릴 곳도 있으니, 정독 한두 권이 끝나면 주마간산 시즌을 정해서 몇권씩 쉽게 넘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훑어봐도 괜찮을 책들도 많으니까. 전에 신문을 보던 때에는 출퇴근 시간 대부분을 신문에 할애했으니 책읽는 속도는 훨씬 더 느렸다. 요즘은 신문을 안보니 그래도 출퇴근 시간 정도는 나지만, 특히 올해 들어서는 어쩌다 진도 잘 안나가는 책들을 읽다보니 책 얘기할 기회가.. 2009. 4. 22.
Battlestar Galactica 미드 Battlestar Galactica(이하 BG)가 4시즌의 대장정을 마쳤다. 작년 브로드앤TV가 하나TV던 시절에, BG 1시즌 전체가 무료길래 보다보니 너무 재밌어서 후딱 다 봐버렸다. 그리고 2시즌 보려하니 돈을 내라더군. -_-;; 이건 뭐 마약상들이 초보한테 처음에 거저 주는 거랑 똑같잖아!! 뭐 그래도 재미가 있었으니 4시즌까지 다 보고 말았다. 1, 2 시즌까지는 흥분하면서 보고, 3시즌은 처지는 에피소드들이 너무 많다가, 4시즌은 마지막 시즌인고로 그간의 떡밥들을 주워담기 시작하면서 또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3, 4시즌 정도면 길이가 딱 좋은 것 같다. 뭐 24처럼 시즌별로 끝내는 게 확실한 드라마는 늘어져도 큰 상관 없지만, 큰 줄거리가 있는 드라마는 4시즌 넘어가면 예전 에피소드.. 2009. 3. 25.
Gran Torino 결정적인 스포일러 있음. 이제는 정말 안쓰러울 정도로 늙으신 건지, 아님 그것도 연기인 건지, 아무튼 여전히 영화에 만큼은 3, 40대 감독을 못잖은 활동을 보여주고 계신 이스트우드 옹. 그릉대는 목소리나 행동거지가 딱 늙은 호랑이의 그것이다. 무얼 해도 '미국'이 얘기되어 지는 참 특이한 영화 이력의 사내. 안그래도 마침 뒤에 성조기가 보이는구나. 글쎄... 이 영화에 좋은 평 일색인 것이 살짝 의아하다. 감동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평이야 그렇다쳐도... 이 영화가 이스트우드에 의한,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아니었더라면 사실 말할 건덕지도 적어지고, 영화도 굉장히 단순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스트우드의 영화라고 이 영화의 함의가 얼마나 더 깊어지나 생각해보면 그것도 좀 부정적이다.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 2009. 3. 23.
Waltz with Bashir 작년 MEFF 상영작이었던 애니메이션. 스포일러 있음.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상상력이 풍부하다면 이 말만 듣고도 무릎을 치면서 여러가지를 상상해볼 것이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라니. 다큐멘터리는 건조한 화면과 사실성을 미덕으로 하는 쟝르 아닌가? 꼭 그렇진 않다. 전에 얘기한 '마라도나 바이 쿠스트리차' 역시 중간중간에 애니메이션을 사용하였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 등에서도 비슷한 시도는 종종 본 것 같다. 그렇지만 다큐멘터리를 통째로 애니메이션이라니? 무엇을 위해서? 보고나면 이 영화가 형식적으로 얼마나 완벽한 선택을 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억과 망각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 악몽과 혼란스러운 이미지, 이것들을 풀어내기에 더없는 수단이 애니메이션이다. 보기로 결정한 영화에 대해서는 더이상 최대.. 2009. 3. 11.
작은 것이 아름답다 E.F.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1973년에 발간되었으니 벌써 35년이 넘었다. 이 번역본도 99년판이니 표지나 편집도 꽤 낡아 보이고, 현재의 시점에서는 다소 진부한 얘기들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아마도 옳지만 당위만을 얘기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편견으로 인해 오랫동안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런 선입견은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었다. 부제인 '인간 중심의 경제학'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슈마허는 본래가 경제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인물인지라, 환경에 대한 직접적인 논의보다는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경제학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35년전에 나왔음에도 바로 지금에 대한 얘기와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그때도 심각했던 많은 문제들이 지금은 얼마나 오래 방치되어 더 심각해.. 2009. 3. 6.
바다소녀 엘피 영화든 책이든 보다가 보면 희한하게 비슷한 주제나 관련성 있는 것들을 의도하지 않게 연달아 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작년 같은 경우 스페인어권 소설들이 서너권 연달아 걸린 적이 있었고.. 최근에는 환경을 주제로 한 영화와 책이 연달아 걸렸다. 일본 애니메이션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 '산호초전설 푸른 바다의 엘피', 제니퍼 코넬리와 키아누 리브스가 나오는 '지구가 멈추던 날', 그리고 몇년 동안 책꽂이만 지키다 결국 읽어버린 E. F.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이중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대략적인 주제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나머지는 환경에 관한 것이라고는 별로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다. (경고 : 언급된 작품들의 스포일러 있음)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은 미야자키 하야오적인 주제에 영화 E.. 2009. 3. 4.
멋진 하루 스포일러 있음. 영화 광고에서 아래 장면을 보고 왠지 홍상수 감독 삘이 느껴지면서 좀 불편한 구석이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었는데, 뻘쭘한 장면들은 대체로 코믹하고 따뜻하기까지 하다. 추격자의 하정우도 물론 괜찮았지만, 원래 싸이코나 매우 abnormal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경우에는 평가를 약간씩 짜게 주는 편이다. (그래서 Dark Knight의 히스 레저에게도 최고점은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라도 이 영화가 하정우에 빚진 바는 추격자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된다. 전도연이 하정우와 하루를 같이 다니면서 변해가는 감정이 관객들이 하정우를 보며 느끼게 되는 감정과 잘 일치하는 것은 이윤기 감독의 꼼꼼함도 물론이겠지만 하정우의 이해력도 크다고 생각된다. "어이구 저 화상" 소리가 절로 나오다가.. 2009.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