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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watching

Waltz with Bashir

by edino 2009. 3. 11.
작년 MEFF 상영작이었던 애니메이션.
스포일러 있음.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상상력이 풍부하다면 이 말만 듣고도 무릎을 치면서 여러가지를 상상해볼 것이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라니. 다큐멘터리는 건조한 화면과 사실성을 미덕으로 하는 쟝르 아닌가?
꼭 그렇진 않다. 전에 얘기한 '마라도나 바이 쿠스트리차' 역시 중간중간에 애니메이션을 사용하였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 등에서도 비슷한 시도는 종종 본 것 같다.
그렇지만 다큐멘터리를 통째로 애니메이션이라니? 무엇을 위해서?

보고나면 이 영화가 형식적으로 얼마나 완벽한 선택을 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억과 망각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 악몽과 혼란스러운 이미지, 이것들을 풀어내기에 더없는 수단이 애니메이션이다.


보기로 결정한 영화에 대해서는 더이상 최대한 사전 정보를 피하고 보는 편이다.
(영화 감상의 즐거움을 전혀 해치지 않도록 제한된 정보만 찾아서 내 취향에 맞을 확률이 높은 영화를 골라내는 노하우는 이제 상당한 경지에 이른 듯 싶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에는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그림체 또한 사실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나 색감은 오히려 스릴러나 느와르에 어울릴 것 같은 풍경이다. 그에 비해 뒷부분에 나오는, 실제 인물들이 말하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인물 소개 자막까지 넣어가며 처리한 부분은 이 영화의 다큐적 성격을 분명히 한다.


이 장면은 정말 환상적이다.
감독도 한번만 써먹긴 아까웠는지 여러번 나오는 이미지다.


아마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전쟁씬.
저 구덩이에는 이스라엘 병사들이 몸을 웅크리고 있고, 어딘지 알 수 없는 맞은편 건물 어딘가에서는 끊임없이 총알이 날아 들고, 이스라엘 병사들 앞을 몸을 잔뜩 굽히고 거의 기어가는 카메라맨과 유유히 걸어가는 기자, 그리고 이를 '구경'하고 있는 주민들.


이런 형식적인 참신함이나 환상적인 애니메이션, 그리고 마지막의 진짜 실사 장면은 여운이 꽤 있지만, 다시 이 영화 전체를 놓고 생각해보면 어딘지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다. 이렇게 잔인한 학살은 기독교계 팔랑헤당 민병대가 저지른 일이고, 일개 병사들인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조명탄만 쏴줬을 뿐이고, 책임있는 자는 알고 있었지만 방조한 것 같다... 이 정도의 얘기에도 이스라엘은 불편한 것일까?

물론 이것이 진짜 다큐일 수도 있다.
아마 내가 감독의 입장이었더라도, 제3자가 아닌 비자발적 방관자라는 어정쩡한 입장에서 이 이상을 말하는 것은 쉽지도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것일지 모른다. 나도 아리엘 샤론이 강경파라는 것만 알았지, 민간인 3000여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라는 것은 이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니까, 잊고 싶은 이스라엘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도 용기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이스라엘의 잊고 싶은 기억일 뿐 아니라 더이상 핑계댈 팔랑헤당도 없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생각해볼 때, 뭔가 핵심은 건너 뛰고 단지 전쟁은 나쁘다고 추상적으로 말하는 것 같은 이 성급함은 여전히 찜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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