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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reading

아주 사적인, 긴 만남

by edino 2009. 11. 7.

부모님 집에서 약간은 뜻밖의 책을 발견했는데, 책 겉표지에 마종기의 이름과 함께 루시드 폴의 이름이 적혀있는게 아닌가.
집에 마종기 시집이 한두권 돌아다니는 것은 봤던지라 부모님이 마종기 시인을 좋아하나 하긴 했었는데, 마종기와 루시드 폴의 이름이 동시에 등장하는 책이라니. 나는 이런 책이 나와 있는 줄도 몰랐다.

이 책에 대해 얘기가 나오자 어머니는 우리더러 마종기 시인을 아냐고, 마해송씨 아들인데 시인이라고 설명한다. 우린 오히려 마해송씨가 마종기 시인의 부친이라고 해야 더 쉬우니... ㅎㅎ 물론 두분은 루시드 폴은 잘 모르신다.
먼저 yeon이 발견해서 빌려와선 읽었고, 나도 읽었다.


우선 나는 루시드 폴을 매우 좋아한다. 미선이 시절 음악은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지만, 루시드 폴로 활동하면서부터는 앨범을 다 찾아 듣고 있다. 그래도 그가 나와 동갑내기 공대출신이라거나, 마종기 시인의 열혈팬이라거나 하는 사실들은 잘 몰랐고, 다만 얼마전 그가 유학가서 쓴 논문이 무슨 상을 받아서 화제가 된 것은 여기저기 회자되어서 알고 있었다.

마종기 시인이라면 아마도 얼마전 결혼한 pm230양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지 싶다. 대학교때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좋아하는 시들을 모아서 아래아한글 파일로 정리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녀가 가져온 시중에 마종기 시인의 시가 있었다. 생각난 김에 파일을 찾아보니 있다! 62페이지에 걸쳐 빼곡히도 시들이 적혀 있고 그중에 마종기 시인의 시도 몇편이 있다.

그 폴더에 시들이 여럿 적혀 있는 파일이 몇개 더 있어서 열어보니 거기에도 마종기 시인의 시들이 종종 보인다. 이제 생각이 난다. L사 다닐때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라디오 프로그램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는 매일 한편씩의 시를 낭독해 주었다. 전영혁씨 특유의 그 음산한 목소리로. 웹 어딘가에 매일같이 거기서 읽어주는 시들을 올려주는 게시판도 있었다. 거기서 시들을 따다가 간직하고 있었던 것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네.

마종기 시인의 시집도 한 권 쯤은 책꽂이에 있는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없다. 누가 빼갔는지 원래 없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저렇게 접한 마종기 시인의 시들은 대체로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특별히 제목을 대거나 읊지는 못해도 말이다.
(오늘 보니 안방에 '이슬의 눈'을 yeon이 읽으려고 빼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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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좋아하는 가수와 좋아하는 시인의 서간집이라니, 관심이 안갈 수 없다.
일단 잡으면 왠만해선 중간에 그만 안두는 성격상 다 읽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약간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우선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주 사적인, 긴만남 이라니 이 구차한 느낌은 뭔가.
뭔가 둘 사이에 세대를 뛰어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우정이 있었고, 그들이 죽은 후에 발견된 서간들을 모아서 낸 것이라면 또 모르겠다. 이건 오히려 책을 위해 처음부터 기획된 '만남'이 아닌가 싶은 부자연스런 느낌이 있다.

게다가 처음에 모르고 읽기 시작할땐 당연히 편지가 오간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이메일이 왔다갔다 한 것이었다. 짐작하기에는 루시드 폴이 마종기 시인을 아주 좋아하는 것을 안 출판사에서 양쪽에 접촉해서 이런 기획을 제안했을 것이고, 물론 서로간에 편지나 교류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쨌거나 나중에 서로 오간 이메일들이 책으로 출판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채로 이메일들이 오가기 시작했지 않았나 싶다. 이런 기획이 어떻게 '아주 사적인' 것일 수 있으며, 겨우 2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오간 것들이 '긴 만남'일 수 있을까.

삐딱하게 보면 그렇지만, 또 어떻게 보면 나이차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직접 대면도 아니고 글로 교류를 시작한다면 이런식으로 밖에는 흘러가기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공부 잘해서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예술을 한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깊은 공감같은 것들을 느끼기엔 역시 2년간 이 정도 글의 교류만으로는 한계가 보인다. 편지 치고는 너무 자신의 이야기들만 나열하고, 또 상당히 회상적이면서 구구절절 설명적이다. 처음 서로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덕분에 독자들도 둘이 살아온 자취를 들어보기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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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에게나 시인에게나 그들의 작품뿐 아니라 개인에게 관심이 좀더 있었더라면 알아보려고 찾아보기도 했겠지만, 그냥 잠깐 궁금해하고 넘어갔던 것들을 이책에선 꽤 알 수 있었다. 마종기 시인이 미국에서 40년 넘게 살면서 돌아오지도 않고 우리 글로 계속 시를 써내게 된 이유라던가, 루시드 폴은 대학교때 공부도 안했을 것 같은 애가 어쩌다 유학은 떠났으며 앞으로 음악은 어떻게 할 것인지 라던가.

읽다 보면 마종기 시인은 가끔 아들들, 부모형제 얘기는 종종 하는데, 부인 얘기는 한번 정도 짧게 언급 된 것 빼고는 거의 생각이 안날 정도로 얘기를 안하는 것도 특이하다. 시인과 돈 잘버는 의사는 참 잘 매치가 안되는 직업인데, 시인의 한국말 잘 못하는 세 아들들도 묘하지만 그들의 직업 또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첫째는 의사이자 교수, 둘째는 변호사, 셋째는 와튼 출신 돈 잘버는 비즈니스 맨. 시인이 세 아들들로 이렇게 완벽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다니! ㅋㅋㅋ

그에 비하면 우리 부모님의 포트폴리오는 정말 꽝이다. 형제가 둘다 공대 같은 과니, 이건 뭐 사양산업 특정주에 몰빵한 격이지. 뭐 사실 부모님이 딱히 원했던 바는 아니었겠지만 아들놈들이 말을 들어먹어야지. ㅋㅋ
우리 부부는 Kiwi에게 특정한 직업을 권하거나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우리가 가보고 이길은 아니다 싶은 공대와 예체능은 말리려고 한다. ^^;;

그리고 루시드 폴은 친구 얘기는 많이 하는데 여자친구 얘기는 한번도 안한다. 지금 여자친구가 없을 수는 없어도, 예전 친구 얘기들은 많이 하면서 여자친구 얘기는 전혀 없는 걸 보면 역시 이 책은 매우 사적이지는 않은 듯.

그리고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 재능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보다보면 은근히 자기 자랑들도 많다. ㅎㅎ
형식적인 겸손으로 감춰지지 않는 그런 것들.

한국을 떠나있는 두 사람은 한국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한국의 문제에 대해서는 월권에 가까우리만치 비판하는 모습도 보인다. 잠시 공부를 위해 떠난 루시드 폴은 몰라도, 마종기 시인이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미국은 이런 점이 좋은데 한국은 안좋다라는 식의 얘기를 하는 것들은 잘 공감이 안되는 부분들도 많다. 아무래도 미국에 오래 의사로 살아서 어느 정도 보수적일 것이라는 예상대로 약간은 그런 경향도 보이는데, 그래도 말은 통할 것 같은 정도의 합리적 보수주의자 같고, 루시드 폴은 의외로 꽤 세게 현정부를 비판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둘다 그다지 차이에 대해 좁히려는 의도보다는 닮은 점들만 찾아가며 얘기들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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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읽어보는 건 나름 인간적으로 느껴지면서 좋은 점도 있지만, 뭐랄까 가수나 시인에게 잘 모를때 생기는 신비감도 사라지고, 다른 종류의 선입견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그게 앞으로 그들이 내놓을 노래나 시를 감상하는데 약간은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나저나 시를 읽은지도 꽤나 오래되었네.
나중에 Kiwi가 말을 알아들을 때가 되면 이렇게 저렇게 모아둔 시들도 읽어줘야겠다.
아마 끊임없는 질문들을 해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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