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12 Stoner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 2024. 3. 3. 숨 테드 창의 많은 팬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또한 '당신 인생의 이야기'로 인해 그의 팬이다. 그의 팬 노릇을 하는 것은 매우 쉽다. 그가 과작의 작가이면서, 또한 중단편만 쓰기 때문이다. 게다가 때가 되면 이렇게 작품들을 빠짐없이 묶어 내놓으니 그때그때 발표될 때마다 찾아 읽지 않아도 된다. 30여년 동안 2권, 17편의 중단편. 생계를 해결하는 직업이 따로 있으면서 1, 2년에 한편씩 중단편을 쓰는 삶도 꽤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 더 많은 시간을 작품에 쏟는다고 더 좋은 작품들이 나오리라는 법도 없다. 시간과 함께 숙성되어 나올 수 있는 글들도 있으니, 어쩌면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더 좋은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능가하는 작품이 없을지라.. 2019. 10. 21. 빛 혹은 그림자 이 기획 소설집에 눈독을 들인 것은 순전히 호퍼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스티븐 킹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는 작가도 없다. 당연히 여기 참여한 작가들도 모두 호퍼의 팬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꼭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듯. 번역되어 나왔을 때부터 찜해두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대부분 아는 작가들도 아니고 작품 수도 17편이나 되다 보니, 다 읽기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몇군데서 블로그 글을 보고 각각의 추천작들만 읽기로 하였다. 거기에 내가 왠지 읽고 싶었던 한두편 추가하다보니, 결국 12편을 읽게 되었다. -_-;; 사람들마다 추천이 다르고, 거의 안겹치기도 했다. 그냥 차례대로 다 읽었어도 되었을 듯 하지만, 그냥 남은 건 안읽은 채로 두기로. 읽히길 기다리는 책들이 줄어들면.. 2019. 7. 29. 예술과 중력가속도 예술과 중력가속도라니 이 무슨 제목인가, 하고 보니 배명훈의 단편집. 저질 기억력 때문에 기억나는 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타워'는 재미있게 읽었고 블로깅까지 했으니, 가볍게 읽어볼까 하고 집었다가 가볍게 읽었다. 본문이 300여 페이지에 열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한두편 읽어보고 재미 없으면 집어치우기 딱 좋다. 가볍게 읽은 건 내용도 대체로는 가벼워서이다. 뭐랄까 우리나라 소설들 특유의 싸함은 있지만. 각 단편들에 대한 짧은 감상.짧은 이야기들이다 보니 짧은 감상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유물위성1인칭으로 이야기하는 화자가 너무 수다스럽게 느껴지지만 떠오르는 이미지에 몰입된다. 다만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들과 결말? 스마트D데뷔작이자 이번 단편집의 제목이 될 뻔 했다는데, 키보드의 D에 관한 이런저.. 2017. 8. 1.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중국계 이민자인 남자와 '평범한' 백인인 여자, 그리고 그둘의 세 아이들 이야기. 어떤 이야기들은, 아니 많은 이야기들이 그 구성을 통해 더 강한 생동감을 가진다.이 소설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고, 문장들 또한 좋은 부분들이 많으나, 리디아의 죽음을 처음에 배치하지 않고 제임스와 메를린이 만났을 때부터 리디아의 죽음까지를 순서대로 나열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더랬다. (이하 스포일러가 심하니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은 나중에 읽고 보시길.)거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기까지, 리디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처럼 묘사된다. 타살 아니면 자살이라고 생각되는데, 자살일 수 있다는 실마리는 주어지는데 반해 타살이라는 근거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으니까.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마지막에 이르.. 2017. 1. 1. 안 그러면 아비규환 안 그러면 아비규환. 제목부터 화끈하다. 두께가 상당하여 주저하였으나, 화려한 필진의 20편에 달하는 단편이니 지루하거나 버겁진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이야기'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마음에 들어 손에 집었다. 이 책이 기획된 계기에 대하여 뒷부분에 나오는데, 소설에 있어 서사가 죽은 시대인 건 우리나라만의 얘긴 아닌 듯. 왜 우리나라 소설들은 이리 자폐적인가 짜증내면서 잘 안보기 시작한지 꽤 되었는데, 내가 그나마 최근에 읽은 영미 소설들이 대게 서사 중심이어서 그랬는지 잘 몰랐는데 말이다. (최근에 떠오르는 소설들만 해도 파이 이야기, 시간여행자의 아내, 빅 픽쳐 등 죄다 영화화 되었거나 진행중인, 서사 중심 소설들이다.) 사실 같은 분량이면 대체로는 단편들보다 장편 한편이 더 빨리 읽힌다. .. 2013. 1. 11. 타워 SF의 탈을 쓴 음... 풍자 소설? 배경이 Beanstalk(잭과 콩나무의 콩줄기 이름)라는,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674층에 인구50만짜리 거대 건물도시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6편의 단편 모음이다. 각 단편은 '개'를 제외하고는 인물도 겹치지 않고, 시간적 배경도 수십년씩 차이가 난다. 각각에 대해 짤막하게 촌평을 남겨보자면, (스포일러 약간 함유) 동원 박사 세 사람 : 개를 포함한 경우 비싼 술의 은밀한 이동경로를 추적한 권력장 연구라는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정치적인 권력장 연구 얘기로 시작한 이야기의 끝은... SF+추리소설 느낌이 제법 풍긴다. 자연예찬 부록의 "작가 K의『곰신의 오후』중에서"와 더불어, K의 소설속 자연주의 소설은 정말 지겹기 그지 없다. ㅋㅋ 작가는 도대체 이 소설속 소설들을.. 2012. 3. 10. 나쁜 소녀의 짓궂음 페루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지 싶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노벨상도 받았고 생각보다 유명한 작가인 듯. ㅋㅋ 보르헤스나 마르께스도 그렇지만, 스페인어권의 날리는 작가들은 더이상 스페인에서는 나오지 않는 듯.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은 처음인데, 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이 소설은 그의 대표작에 놓기에는 좀 이질적인듯. 매우매우 쉽고 단순하고, 아주 고전적인 이야기 스타일이다. 영화로 만든다 해도 잘 어울릴 듯. 아니 길이가 좀 기니까 chapter 당 에피소드 하니씩으로 7부작 드라마로 만들면 근사할 듯. 근데 책대로 하자면 21+ 등급은 되어야 할 듯. ㅎㅎ 1. 칠레 여자아이들 2. 게릴라 3. 스윙잉 런던에서 말을 그리는 화가 4. 샤토 메구루의 역관 5. 말 못하는 아이 6. 아르키메데스, 방파제.. 2012. 1. 10.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굉장히 즐겁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박민규의 다른 소설들에는 이상하게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워낙 개성 넘치는 문체 탓에, 그보다 나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은연중에 있었던 것일까. 작년에 이상문학수상집에서 대상을 받은 그의 단편 2편을 보았지만, 뭐 여전히 재미있긴 했지만 장편에는 역시 그다지 손이 안가고 있다가, 동생이 이 책을 사서 온가족이 돌려보고 있었다. 부모님에 yeon까지 다 보고 나서야 나도 집어들었다. yeon이 하도 열심히 보길래, 대체 무슨 내용이야?라고 했더니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얘기라나. 뭐야 말도 안돼! SF인가?! 아마 이 정도가 내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회사에서 빌릴 책들이 전부 대기인 틈에 .. 2011. 4. 23. 정열의 열매들. '마법의 숙제'에 이어 두번째로 읽은 다니엘 페낙의 소설이다. 말로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시리즈중 일곱번째 작품인데,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온 2001년까지는 연작의 가장 최신작이었으나, 이후에 또 말로센 시리즈가 계속되었는지는 찾아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닥 인기가 많지 않은지 네편 정도만 번역이 되었고 그나마도 절판에 이후로 번역된 건 없는 듯. 다른 시리즈를 읽어보지 않았어도 이 책을 읽는데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없으나, 이전의 시리즈들을 통해 등장인물들을 더 잘 알았더라면 더 재미있는 부분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뱅자맹 말로센은 어찌하여 직감적으로 자신이 매제의 살인 혐의로 감옥에 가리라고 생각하고 책들을 잔뜩 구입하였는지 같은 것. 책 뒤에 옮긴이 김운비씨의 해설에 시리즈.. 2010. 1. 18. 암살주식회사 잭 런던의 암살주식회사의 원제는 The Assassination Bureau, Ltd. 이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르나, 요즘 회사에서 재무관련 수업을 듣고 있는 영향인지 암살주식회사라면 설마 상장한 회사인가, 이것은 번역하면 암살 유한책임회사 아닌가, 과연 소설 속 이 조직이 유한책임회사의 형태인가... 잠시 생각해보았다. 뭐 Bureau, Ltd.라니 책 안에서는 암살국이라는 번역도 쓴다. 이후 스포일러(?) 있으니 유의하시라. 왠지 책 커버 디자이너가 책을 제대로 안읽어본 것 같아. -_-; 어쨌든. 이 책은 제목도 흥미롭지만 그 태생은 더욱 흥미롭다. 노동하듯 쓰기를 지속하여 다작으로 소재가 고갈되어간 잭 런던이 1910년 무명작가 싱클레어 루이스로부터 70달러에 구입한 14편의 .. 2009. 10. 24. The Time Traveler's Wife yeon이 아마 시카고에 있을 때부터 사가지고 있다가 다 못읽고 두었던 것 같은데, 나는 일찌감치 영어로 읽는 건 관두고 한글판을 따로 샀다. 개인적으로는 영문판 표지가 훨씬 좋다. 소설의 가장 지배적인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번역판은 두권으로 나눠진 것도 별로고. 처음 제목을 들었을때부터 내용이 궁금했는데, 다 읽고 난 뒤에 생각해보니 제목이 상당히 낚시였다. 왜냐면 시간여행자인 남편과 일반인인 부인이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공동 주인공인데, 만일 남편을 제목으로 딴다면 제목은 그냥 '시간여행자'가 될 것이고, 공평하게 한다면 제목이 '시간여행자 가족'이 되겠으나, 어느 쪽이었어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아, 굳이 '아내'를 붙여야 겠다면 남편의 시간이동도 의지대.. 2009. 10. 1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