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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reading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by edino 2011. 4. 23.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굉장히 즐겁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박민규의 다른 소설들에는 이상하게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워낙 개성 넘치는 문체 탓에, 그보다 나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은연중에 있었던 것일까. 작년에 이상문학수상집에서 대상을 받은 그의 단편 2편을 보았지만, 뭐 여전히 재미있긴 했지만 장편에는 역시 그다지 손이 안가고 있다가, 동생이 이 책을 사서 온가족이 돌려보고 있었다. 부모님에 yeon까지 다 보고 나서야 나도 집어들었다.

yeon이 하도 열심히 보길래, 대체 무슨 내용이야?라고 했더니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얘기라나.
뭐야 말도 안돼! SF인가?!
아마 이 정도가 내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회사에서 빌릴 책들이 전부 대기인 틈에 집어들어 보기 시작하였다.

시녀들, 벨라스케즈

 
흠... 다 읽고 드는 생각은, 박민규 이 아저씨 정말 이렇게 순수한 구석이 있는거야? 그런 척 아냐?
이렇게 정색하고 조금은 오글거릴수도 있을 만치의 사랑찬가를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거야?

그해 가을을 살았던 사람들 중 누구보다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랑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가장,,, 큰 이익이었다. 천.문.학.적. 이.익.이란 아마도 이런 걸 뜻하는 게 아닐까,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이렇게 정색하고 사랑만세가 사회적 메시지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흥미롭다.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 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 아니,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배우니 하는 여자들이 아름다운 건 실은 외모 때문이 아니야.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기 때문이지. 너무 많은 전기가 들어오고, 때문에 터무니없이 밝은 빛을 발하게 되는 거야.

인간은 참 우매해. 그 빛이 실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모르니까... 가난한 이들이 도리어 독재 정권에게 표를 주는 것도, 아니다 싶은 인간들이 스크린 속의 인간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헌납하는 것도 모두가 그 때문이야. 자신의 빛을... 그리고 서로의 빛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 기대하지 않고... 서로를 발견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야.



삼미슈퍼스타즈 때부터 loser/minor 정서에 기대는 바가 크긴 했지만, 상당히 직설적이기까지 한 사회비판은 세련되진 않아도 공감 많이 되는 메시지인지라... 이것도 약간은 의외? 뭐랄까, 난 이 아저씨가 좀더 비뚤어진(?) 표현을 즐기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럴 듯한 인생이 되려 애쓰는 것도 결국 이와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이왕 태어났는데 저건 한번 타봐야겠지, 여기까지 살았는데... 저 정도는 해봐야겠지, 그리고 긴긴 줄을 늘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삶이 고된 이유는... 어쩌면 유원지의 하루가 고된 이유와 비슷한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나, 자기가 말이야... 여기까지 와서 열차도 안 타고 가면 어떡해.. 봐, 남들 다 타잖아... 이러는 사람이 아니라 참 좋아.

이정도는 몰아야... 이정도는 벌어야...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이었다. 닮으려 애를 쓰고 갖추려 기를 쓰는 여자애들을 보며 게다가 이것은 자가발전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있는 한 인간은 결코 자본주의의 굴레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세상은 과연 발전한 것인가, 나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의 노예들에겐 노동이 전부였다.
하지만 현대의 노예들은 쇼핑까지 해야 한다.


약간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면 일본어 번역투의 문체가 지나치게 자주 사용되는 것..

문득 처음 요한 선배에게 물었던 스스로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좋아할... 이유가 없잖아요? 아마도 그런, 질문이었다는 생각이지만....

'~했다', '~이었다'라고하면 될 것을, '~다는 생각이다', '~다는 기분이다' 이런식의 표현은 일본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사실 처음엔 어릴적 오사카에서 자란 것으로 되어있는 '요한'이 주로 쓰던 말투라, 호~ 이런 세심한 설정까지?라고 생각도 했었으나, 일본과 상관 없는 '그'와 '그녀'도 이런 표현을 너무 자주 써서 거슬렸다. 뭐, 서로 말투 등이 닮아가는 얘기도 있으니 그래서라고 우기면 할 수 없지만.

소설속에서 본 가장 긴 편지(27페이지에 걸친)인 그녀가 그에게 쓴 편지도 인상적이긴 했으나, 뭐랄까 어투 등이 여자는 그런식으로 편지를 쓰지 않는 존재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소설의 구성 또한 아주 독특한데, 본편 목차의 마지막 제목은 "해피엔딩"이다.

조금씩 눈이 가늘어져 문득 세상이 고요해진 느낌의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시간이죠. 어떤 감정도 스미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힘 있는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소한 말들... 아무것도 아닌 말들을 이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나 역시 수평의 땅위에 내려앉은 눈처럼 편안한 마음이었다. 그 순간 아득한 창공을 하강해온 삶이... 그런, 서로의 삶이 비로소 나란히 땅위에 누워 우리가 지나온 밤하늘을 뒤돌아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예쁜 문장들과 흔한 연애영화 같은 "해피엔딩"까지만 가도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나 착하게?! 박민규 당신 정말 이런 사람이었나?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럼 숨겨진 "Writer's cut"은 또다른 새드엔딩이라도 보여주겠단 건가?
싶지만 DVD에서 흔히 써먹는 "Director's cut"과는 좀 다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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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본편은 그와 그녀의 스무살때 마지막 만남의 장면에서 시작되어, 회상으로 이어지고, 다시 처음의 장면까지 이어지는 부분까지 한 덩어리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서 '그'에게 일어난 일들과 이후의 해후까지의 한 덩어리를 합치면 "해피엔딩"인 본편이라고 볼 수 있다.

Director's cut은 "요한/그녀/그의 이야기"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요한/그녀의 이야기"까지 이 Director's cut은 본편의 앞 덩어리를 과거를 약간 변형시킨 소설속 소설, 그리고 본편의 뒷부분을 순수한 소설속 창작소설로 만들어 버린다. (책을 읽지 않으면 이해가 안될 듯.) 그렇게 되면 '그'는 더이상 없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에는 무슨 내용이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이 문제의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정말 놀라운 방식으로 양립할 수 없는 2개의 엔딩을 하나로 합친다.
소설속의 소설은 소설속에서 또 현실이되, 그 현실은 '이 세상'은 아니다.
감동적이면서도 소름돋는 반전같은 구성.

참으로 기묘하게 framing된 액자들이 겹친 액자소설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든 '해피엔딩'인 것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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