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entiments/reading

빛 혹은 그림자

by edino 2019. 7. 29.

이 기획 소설집에 눈독을 들인 것은 순전히 호퍼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스티븐 킹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는 작가도 없다.

당연히 여기 참여한 작가들도 모두 호퍼의 팬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꼭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듯.

번역되어 나왔을 때부터 찜해두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대부분 아는 작가들도 아니고 작품 수도 17편이나 되다 보니, 다 읽기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몇군데서 블로그 글을 보고 각각의 추천작들만 읽기로 하였다.

거기에 내가 왠지 읽고 싶었던 한두편 추가하다보니, 결국 12편을 읽게 되었다. -_-;;

사람들마다 추천이 다르고, 거의 안겹치기도 했다.

그냥 차례대로 다 읽었어도 되었을 듯 하지만, 그냥 남은 건 안읽은 채로 두기로.

읽히길 기다리는 책들이 줄어들면 그때 봐도 되고.

 

너무나 유명한 Nighthawks.

대학교때 yeon이 엽서만한 이 그림을 액자에 줬었다.

호퍼의 그림이 주는 정서는 이 그림이 대표적인 것 같지만, 때로는 정 반대의, 밝은 햇볕 아래의 자연 풍경을 그린 그림에서조차 쓸쓸한 느낌을 주는 것이 놀랍다.

 

호퍼 얘기가 아니라 책 얘기로 돌아가자만, 전반적으로 작품들은 꽤 만족스러웠다.

그림을 소설에서 활용하는 방식도 다 가지각색. 대부분은 이야기의 한 장면에 해당하는 그림의 장면이 겹쳐 묘사되지만, 글 속에서 호퍼의 그림 자체를 소재로 보며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베스트 3는 꼽아보자면 바닷가 방×니컬러스 크리스토퍼, 영사기사×조 R. 랜스데일, 밤의 사무실×워런 무어.

 

이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위 그림 Rooms by the Sea 제목과 같은 '바닷가 방'. 이 책에 선택된 호퍼의 그림 중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그림은 셋 뿐인데, 그중 하나이다.

소설 '바닷가 방'은 여기 수록된 작품들 가운데 가장 이질적이다. 기본적으로 사실적인 화풍인 호퍼의 그림들은, 보고 있노라면 인물들의 사연이 있을 것 같고 이야기가 있을 것 같고 상상하게도 만들지만, 호퍼의 이 그림은 초현실주의적이라 조금 튀는 그림이기도 하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퍼는 그림보다도 더 초현실적인 상상을 펼친다. 저 열려 있는 문으로 통해 있는 바다가 그 상상의 원천이다. 보르헤스가 생각나기도 하는 마술적이고도 초현실적인 세계다.

 

'영사기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를 떠올리게도 한다. 영화관을 배경으로, 영화 같은 이야기가 흥미롭고, 호퍼의 그림처럼 쌉싸름한 결말도 딱이다.

 

'밤의 사무실'은 뜻밖의 설정이긴 하였지만, 무심한 듯한 묘사와 쓸쓸한 결말이 호퍼 그림의 정서에 맞닿아 있었고.

 

전반적으로 소설 속에서 호퍼 그림들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삽화 이상의 매개체가 되어 준다. 삽화가로 출발해 그 이상이 된 그의 이력이, 이 책에서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