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책을 따로 시간내서 읽는 편이 아니다.
출퇴근 전철안에서 읽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일단 손에 잡은 책은 상당히 정독한다.
그러다보니 다독과는 거리가 멀다.
정독의 습관은 적어도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안좋은 방법이다.
그래도 내가 구입까지 하는 책들은 대부분 정독하고 싶은 책들이다.
하지만 요즘은 회사에 책 빌릴 곳도 있으니, 정독 한두 권이 끝나면 주마간산 시즌을 정해서 몇권씩 쉽게 넘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훑어봐도 괜찮을 책들도 많으니까.
전에 신문을 보던 때에는 출퇴근 시간 대부분을 신문에 할애했으니 책읽는 속도는 훨씬 더 느렸다.
요즘은 신문을 안보니 그래도 출퇴근 시간 정도는 나지만, 특히 올해 들어서는 어쩌다 진도 잘 안나가는 책들을 읽다보니 책 얘기할 기회가 더 뜸하다.
그러다 요즘 읽는 책 내용 관련해서 인터넷에서 자료를 좀 더 찾아 보다가, 관련 블로그에서 쥔장이 이 책을 좋아하는 책으로 꼽아놓은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마침 이 책은 나도 작년에 본 책 중에 베스트로 꼽는 책이다. 작년에 처음으로 읽은 책이었는데, 괜찮은 책들도 꽤 많았음에도 끝까지 작년의 베스트로 남았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하도 평이 좋아 기대를 하였건만,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주었다.
8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진 두툼한 책인데, 작품 하나하나가 꽤 인상적이다.
특히 바벨탑에 대한 독창적인 상상의 세계를 그린 '바빌론의 탑'이나, 그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지는 '지옥은 신의 부재' 같은 작품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일곱편만으로는 작년의 베스트로 꼽기는 조금 저어하게 만드는 그런 느낌을 날려버리는 작품이 바로 표제작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이다.
재미있게도 이 책의 원제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는 목차에는 '네 인생의 이야기'로 번역해 놓았다.
높임법 때문에 영어로는 같아도 한국말로는 다르다. 그래서 사실 내용상 이 단편의 제목은 '네 인생의 이야기'가 맞다.
그래도 책 제목으로 '네 인생의 이야기'보다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왠지 더 끌리는 느낌이라 그렇게 한 게 잘한 것 같다.
언어에 관한 얘기가 중요한 축의 하나인 이 단편을 쓰면서, 중국계 미국인이지만 한자는 읽거나 쓸 줄을 모르는 테드 창은 여러 나라의 문자 시스템을 공부했고, '헵타포드'어의 모티브가 되었을 한자와는 정 다른 편에 서있는 흥미로운 문자 시스템인 한글에 대해서도 극중에 언급하고 싶었는데, 매끄럽게 언급할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는 인터뷰도 재미있었다. (말이 길다.)
언어 얘기하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나바호어라던지 투바어라던지 독특한 언어의 얘기들을 들으면 뜬금없이 그 언어를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몽글몽글 샘솟는다. 뭐 단지 영어에 대한 압박감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암만 생각해도 모국어를 쓰는 곳이 아닌 곳에서는 제대로 토착종 마냥 뿌리내리고 살기는 쉽지 않은 법인데, 굳이 다른 나라 언어를 유창하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면, 여러 나라 언어를 재미있을 만큼만 배워보면 좋을텐데.
어쨌든, 이 감동적인 단편에 대해 늘어놓은 이야기가 매우 건조하지만,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감동은 아닌 듯 하니 미리 단념한다.
(P.S.) 나는 책을 빌려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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