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번역되어 나온 책인데, 사실은 1999년에 발간된 책이다.
무려 18년전에 나온 책, 그간 이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발전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한참 옛날 얘기일 수도 있는데 왜 이제야 번역되어 나온 것일까. 70년대에 나온 '이기적 유전자'도 아직까지 읽히는 걸 보면 나름 신간이랄 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새로운 내용들이 많았다. 고등학교때 과학 중 생물과 화학은 외울 것이 많아서 별로 안좋아했었던 뒤끝이 오래 간 것일까. 이쪽 분야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서 제대로 읽어본 교양 과학서들도 거의 없다. 그러다 최근에는 건강과 의학의 발전에도 관심이 생기면서 '매력적인 장腸 여행' 같은 책도 읽게 되고, 유전자 관련 책까지 오게되었다. 흥미로운 내용이 워낙 많아서, 좀더 최신의 유전자 관련 책이 있다면 더 찾아 읽고 싶을 정도.
여기에 나온 많은 이야기들은 아주 확실하진 않은 것들도 많다. 유전자란 서로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고, 우리는 아직 그것을 완벽하게 해독하지 못했고, 완벽한 해독이 가능한지 아닌지도 사실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밝혀진 사실들로부터 그럴듯한 상상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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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흥미로왔던 "유전자가 서로 충돌하고, 게놈은 어버이 유전자와 어린아이의 유전자 사이 또는 남성과 여성 유전자 사이의 전쟁터"라는 이야기.
Y염색체는 여성에는 존재할 일이 없으므로, 남성에게는 조금만 유용해도 여성에게 나쁜 유전자를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정액은 유전자의 산물인 여러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초파리를 교배하였을 때, 이 단백질은 암컷의 혈액 속으로 들어가 여러 부위 중에서도 특히 뇌로 이동한다. 여기서 단백질은 여성의 성적 흥미를 줄이고 배란 속도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러한 증가를 생물종에 유리한 것으로 해석했다. 암컷이 더 이상의 성적 파트너를 찾기보다는 둥지를 찾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수컷은 암컷이 다른 수컷과 더 이상 교배하지 않고 그의 정자로 더 많은 알을 낳도록 암컷을 조작하려고 한다. 암컷은 물론 이러한 조작을 거부하는 선택적 압력을 점점 더 받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무승부의 대치 상태다.
라이스는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기막힌 실험을 수행했다. 진화적 변화가 없는 특정군의 암컷을 별도로 보관하고, 암컷 초파리가 저항성이 증가하지 않는 방법으로 27세대 동안 교배하였다. 한편으로, 그는 수컷이 훨씬 더 효과적인 정액 단백질을 만들어내도록 훨씬 더 저항적인 암컷과 교배하였다. 그리고 27세대가 지난 후 이 두 군의 초파리를 같이 교배하였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수컷의 정액은 너무나 효과적으로 암컷의 행동을 조작하여 치명적이기까지 하였다. 암컷을 죽일 수도 있었다.
트리버스의 주장에 의하면 X염색체가 여성에 존재하는 기간이 남성보다 두 배나 길기 때문에, 특정 유전자가 남성이 자손을 가지는 데 두 배씩이나 해가 되더라도 여성이 자손을 가지는 데 이익을 준다면 이 유전자는 X염색체 위에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남성의 동성애 성향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가 여성의 가슴의 크기에 영향을 미친다면, 아들에게는 그 유전자가 그들의 자손을 가지는 것을 감소시킨다고 해도, 딸에게는 더 유리한 장점을 주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남성의 동성애 성향이 모계 유전에 의한 것이라는 연구는 특정 가계에서는 성립했으나 일관성있게 발견된 사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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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능에 관한 유전자의 영향.
사실 저자는 지능은 유전이다라고 단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을 애써 돌려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어떤 아이가 경험하는 환경은 외부적 요소만큼이나 자신의 유전자에 따른다. 그 아이는 자신의 환경을 찾고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소녀가 기계적 성향이 있다면 기계적 기술을 연습하고, 책을 좋아하면 책을 찾는다. 유전자는 어쩌면 능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향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근시안의 유전은 눈 형태의 유전성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습관의 유전에 의한 것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능의 유전은, 곧 타고난 능력의 유전만큼이나 길러지는 능력의 유전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골턴에 의해 시작된 한 세기의 논쟁을 마감하는 너무도 만족스러운 결론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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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혈액형에 관한 이야기.
혈액형은 그 자체의 구분 이외에 어떠한 유전적 영향도 주지 않는 것이 정설인양 되어 있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다.
O형은 예전에는 아주 치명적인 질병이었던 콜레라에 민감하다. 예전부터 콜레라가 유행하던 지역인 갠지스강 일대는 O형의 비율이 다른 나라들보다 적다. 아메리칸 인디언에게는 O형이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콜레라 같은 설사병이 이 지역에서 유행하지 않았음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O형이 자연선택에 의해 소멸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O형은 다른 혈액형들에 비하여 말라리아에 좀 더 저항성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암에 걸릴 확률도 약간 낮은 것으로 보인다. "어떤 면에서 게놈은 사람들과 인종에 대한 의학적 경전처럼 우리의 병리 현상의 과거 기록인지도 모른다."
최근의 기사를 찾아보니 더 다양한 조사들이 있어왔다. O형이 콜레라에 왜 약한지에 대한 설명도 연구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게놈 수준에서 완벽하게 해석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혈액형에 의한 성격 분류도 완전히 미신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ㅋㅋ
인간이 서로 다른 혈액형을 지니는 것은 질병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를 위해서라는 게 지금까지의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예를 들면 O형은 바이러스 질병에 강한 반면 A형과 B형은 세균 질병에 더 강하다. 인류는 그 같은 질병에 모두 방어하기 위해 4가지 혈액형을 일정 수준으로 고르게 유지하는 것이다.
지난해 영국 ‘데일리메일’이 세계보건기구 및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영국 보건의료제도의 자료를 토대로 만든 그래픽에 의하면 O형은 콜레라와 코피에 취약한 반면 심장질환과 말라리아에는 강하다. 또 A형은 위암 및 빈혈에 취약하지만 노로 바이러스에는 강하며, AB형의 경우 기억상실을 경험하기 쉬우나 위궤양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한 통계도 있다. 2014년 분당서울대병원 박경운 교수팀이 조사한 질병과 혈액형 간의 연관성 연구 결과에 의하면, A형은 빈혈, 간암 등의 발병률이 높았다. 또 O형은 위장출혈, B형은 척추전방전위증, AB형은 대퇴골 경부골절 등이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The Science Times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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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굉장히 궁금했던 유전자 치료에 관한 내용. 유전자 치료에 관한 얘길 들으면 이미 태어난 인간도 유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말일까 하고 의아했었다. 100조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는 인간을 유전적으로 조작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1970년에 레트로바이러스가 RNA로부터 DNA 복사본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갑자기 유전자 요법은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되었따. 레트로바이러스는 자신의 RNA 게놈 속에 간단히 말하자면 "나의 복사본을 만들어서 네 염색체 속에 끼워넣도록 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전자 요법자가 해야 할 일은 레트로바이러스의 유전자 중 몇 개(특히 감염 후 병을 유발하는 것들)를 잘라내고, 대신에 사람의 유전자를 집어넣은 후 환자에게 이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게 전부다. 레트로바이러스가 몸 속의 세포에 자신의 유전자를 삽입하게 되면 이제 유전적으로 변형된 인간이 탄생하게 된다. (P.314)
놀랍도록 쉬워 보인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울리는 없다.
각각의 레트로바이러스는 오직 한 종류의 조직만 감염시킬 수 있고, 유전자를 막 속에 넣어 포장하기 위해서는 아주 세심한 주의가 요망된다. 이들은 염색체의 아무 부위에나 임의로 들어가거나 종종 발현되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감염 병균들과 맞서도록 고도로 준비된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서투르게 조작된 레트로바이러스를 놓치지 않는다... 그래도 1989년에 몇 가지의 신기원이 이룩되었다. (P.315)
그리고 또 항암치료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들. 이 책에 의하면 대부분의 항암치료는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몸의 촘촘한 감시망이 망가져 암세포를 제거하는 p53이 제대로 활동하지 않을 때, 인위적으로 화학물질이나 방사선으로 몸에 손상을 주어 p53을 활성화시켜 암세포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오래 살수록 우리 유전자 속에 더 많은 실수들이 쌓여 동일한 세포에서 종양 유전자는 커지고 종양 억제 유전자는 꺼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것이 일어날 확률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우리 생애 동안에 만들어내는 세포도 거의 상상치 못할 정도로 많다... "100경 번의 세포분열에서 1개의 치명적인 악성 세포의 생성은 제법 성공적인 것이다."...
거의 모든 암치료법이 p53과 그 부류들을 깨워서 아폽토시스를 유도함으로써 효과를 낸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방사선이나 화학요법이 세포의 DNA 복제에 손상을 주어... 선택적으로 죽이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어떤 종양들은 이런 요법이 효과가 없는 것일까?... 만일 그런 요법이 분열하는 세포를 죽이는 것이라면 그 요법은 항상 효과가 있어야 할 것이다.... 스콧 로가 기막힌 답을 찾았는데, 이러한 요법들은 실제로 DNA에 어느 정도 손상을 주지만 세포를 죽일 만큼은 아니며 대신에 p53을 일깨워 그 세포들을 자살케 할 만큼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화학이나 방사선 요법은 사실상 백신처럼 몸이 스스로 자신을 돕게 하여 효과를 내는 것이다.... 방사선 요법이나 세가지 화학 요법, 곧 5-불화우라실, 에토포사이드, 아드리아마이신은 모두 바이러스 종양 유전자에 의해 감염된 실험실 배양 세포들의 자살을 촉진한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치료 효과가 있던 종양이 갑자기 나빠져 치료요법에 효과가 없을 때, 그 변화는 TP53을 망가뜨리는 돌연변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TP53이 이미 망가졌는지를 검사하면 의사들이 화학요법이 듣게 될지 여부를 미리 판단할 수 있게 되고, 이미 TP53이 망가진 경우 환자나 그 가족들은 현재와 같은 헛된 희망을 가지고 생의 마지막을 고통으로 보내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P.304)
아무튼 암을 정복하기 위핸 새로운 유전자 요법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1992년에 케네스 컬버는.. 레트로바이러스를 스무 명의 뇌종양 환자의 종양에 직접 주입하였다... 레트로바이러스에는 헤르페스 바이러스에서 뽑은 유전자가 들어가 있어서 종양세포가 레트로바이러스를 받아들이면 헤르페스의 유전자를 발현하게 된다. 그런 다음에 컬버 박사는 놀랍게도 환자에게 헤르페스 치료약을 투여함으로써, 이 약이 종양세포를 공격하게 하였다. (P.318)
5명 중 4명이 실패로 비록 결과가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으나, 유전자 요법은 이제(아직도) 초기 단계이다.
이러한 시도에 대한 논란들 중 윤리적 논란은 초기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안전성 논란에 있어서도, 저자는 급진적인 편에 선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최악의 접근일 것이다.
인공지능 연구도 그렇듯이 그 결과를 완전히 알지 못하는 것을 먼저 만드는 것은 무모하다. 그렇지만 저지르기 전에 배우는 것은 저지르고 나서 배우는 것에 비하면 훨씬 적을 것이기에, 인간들은 아마도 저지르고 말 것이다. 다만 그 파급력이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것이 아니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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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를 구성하는 유전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 유전자 결정론을 돌려서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위안이 되는 표현들이다.
인간의 행동은 단기적으로 예측하기가 힘들지만, 장기적으로는 넓은 의미에서 예측이 가능하다... 어느 날 어느 순간에 내가 밥을 먹지 않겠다고 택할 수 있듯이 먹지 않는 것은 내 자유다. 그러나 그날 언젠가는 내가 밥을 먹으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내가 언제 먹는가는 많은 요인들 이를테면 시장기, 날씨 또는 나에게 같이 식사하자고 제의한 다른 사람의 결정에 달려 있다. 유전적인 것과 외부적인 영향의 상호작용이 나의 행동을 예측 불능으로 만들지는 몰라도 결정론적이다. 그 사이에 자유가 존재한다. (P.399)
만일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자유라면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으로부터 기원된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더 낫다. 우리가 자기 복제를 혐오하는 것은 어느 정도 우리 자신만의 특징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자유 의지에 대한 유전자가 다른 사람이 닿을 수 없는 우리 내부에 있어 우리 행동의 원천이 되기에 그렇게 모순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1개의 유전자가 아니라 훨씬 더 고차원적이고 장엄한 것인 인간 본성으로 유연하게 우리 염색체 속에 미리 정해져 있으며 각자마다 특유하게 존재한다. 모든 사람들은 특이하고 상이하며 내적인 본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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