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읽은 책인데 이제야 남긴다. (글 작성 버튼을 누른 건 2월이나, 이걸 실제로 쓰고 있는 건 5월)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에 다루는 주제가 집중되어 있다보니 쉽게 정독하긴 어려운 책이라, 듬성듬성 읽었다. 하지만 책 앞부분에 이 책의 주제와 목적이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다.
... 긴축이 아니라 조세를 통해 국가부채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이 우리가 택해야 할 경로이다. 물론 긴축은 불공정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조세를 통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덧붙여 채무자가 채권자보다 더 많은 게 현실이기는 하지만, 그 이유로 조세를 해결 수단으로 동원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가 근원적으로 인플레이션 편향성을 띠기 때문에 긴축을 거부하자는 주장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인플레이션 편향성을 갖고 있지도 않다. 우리가 긴축을 단념해야 하는 이유는 그 무엇보다 긴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저자는 넓게 케인즈주의자에 속할 것이다.
이 책을 쓴 이유는 긴축이 왜 손쉽게 채택되고, 누구에게 유리하고,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 말하고자 함이다.
쉽게 가정경제를 생각하면 가족 누군가 빚을 내고 흥청망청 했다면 그 빚을 갚고 가정경제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허리띠를 졸라 매는(긴축) 일이 필요하다. 그런 상황에서 긴축 없이 가정경제가 파멸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너무나 직관적으로 당연하기 때문에, 국가경제에 있어서도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정치적 수사가 쉽게 먹혀든다.
그런데 국가경제라면 다를까? 아무리 케인즈주의자라도 국가가 영원히 빚을 내며 살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내 부정확한 기억과 내맘대로 해석에 기대면) 긴축의 문제는 크게 2가지다.
첫째, 가정경제와 달리 국가경제는 긴축으로는 기대하는 경제 회복을 이룰 수 없다. 1930년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험과 최근의 사례들에서 긴축이 긍정적인 결과를 낸 경우는 거의 없으며, 오히려 긴 침체를 가져오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인플레이션과 국가부채를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물론 일부 국가들에서 행해진 포퓰리즘 식 과잉복지로 인한 국가경제 파탄의 사례도 있기는 하나, 극히 예외적인 일이고, 주변부 국가들에서만 일어난 일이다.
둘째, 긴축은 상위 계층에게는 득이 되나 하위계층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식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해법이 그러했다. 은행과 금융기관은 위기를 불러온 장본인들이었으나, 구제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자산을 대부분 보장받았고, 그를 위해 팽창한 부채를 갚기 위해서는 하위 계층이 희생된다. 더욱 안좋은 점은 그러한 희생으로도 바라던 경제 회복은 더욱 요원해진다는 점이다.
... 소득분포 상위 3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이 보유 자산에 대한 구제 혜택을 받고 그 결과 공공 부채가 팽창할 때, 구제금융이라는 풋옵션 행사에 따르는 비용은 보유 자산이 그리 많지 않고 재정지출과 공공재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치르게 된다. 바로 그 재정지출과 공공재가 감축되기 때문이다. 사회의 가장 극빈 계층이 스스로 동의한 바 없는 보장보험에 의해 비용을 떠맡아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러한 비용을 치르면서도 구제된 자산의 보유자들로부터 단 한 푼의 보험료도 받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긴축을 특정 계급을 위해 맞춤 설계된 풋옵션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이다. 긴축은 소득분포상 상위 계층에게 주어진 공짜 자산 보험인데, 바로 이들이 마침 투표 참여율이 가장 높고 선거를 가장 많이 후원한다. 이들 계층이 개인의 입장에서 행하는 합리적 행동이 집합적으로 봤을 때는 자신들에게도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은 풋옵션의 가격에 포함되지 않았다 ...
책의 대부분은 이에 대한 논증이다.
분량에 비해 메시지는 명확하여 오히려 남는 것은 확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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