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의 끝' 시리즈(?)를 더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수집의 끝' 시리즈를 쓸 즈음에, 몇가지 수집하던 것들을 더이상 수집하지 않기로 하고 없애면서 쓴 시리즈이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특별히 모은 것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책이 쌓이는 것도 싫어 대부분 빌려읽기로 독서 습관을 바꾸었고.
그러나 그 이후에도 계속된 수집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디지털 컨텐츠들이다.
이것들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낡지도 않으니, 가끔씩 백업을 해야하는 것 이외에 쌓이는 것이 크게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집의 끝'이라니?
물론 디지털 컨텐츠들은 더 이상 안모으고 버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사진 같은 경우는 계속 찍을 것이고 계속 쌓여나갈 것이다.
그럴만한 계기가 생긴 것은 음악들이다.
대략 대학원 시절부터 모으기 시작한 mp3들. 동영상의 경우에는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경우가 드문 편이라 소장하고 있는 영화는 매우 적으나, 음악들은 구세대라 그런지 스트리밍보다는 다운로드를 고수한다.
일단 들을 만 할 것 같은 mp3들은 다운로드 받고, 틈날 때마다 들어보고 괜찮으면 남기고 별로면 지우고.
그러던 것이 대략 2009년 정도부터 소화불량에 걸렸다.
새로운 음악을 들어나가는 속도가 쌓이는 음악들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유는 여러가지겠으나, 들을 음악은 점점 많아지는 반면, 들을 여유는 점점 없어진 것이 주된 이유다. 점점 늘어가는 괜찮은 음악가들이 신보를 낼 때마다 들어보면서 동시에 또 새로운 음악가들의 음악까지 있으니 쌓이는 속도는 늘고,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니 새로운 음악을 들을 여유는 더 없고. 특히 아는 음악보다 새로운 음악을 듣는 것은 꽤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처럼 흘려들을 게 아니고, 이 음악을 남길지 버릴지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더 그렇다.
그때부터는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을 듣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왠만한 새 음악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매우 좋아하는 소수의 음악가들의 신보나, 어쩌다 귀에 박힌 노래들만 찾아서 쌓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이미 쌓인 mp3들은 숙제처럼 남아, 아주 오랫동안 들어나가야 했다.
드디어 한두달 전에서야, 이 숙제는 끝이 났다. 총 11,007곡.
처음 mp3를 모으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음악 분류 체계는 위와 같았다. 그리고 mp3 파일의 태그들은 모두 제거된 상태.
400MB짜리 폴더부터 18GB짜리 폴더까지, 균형도 안맞고 최적의 분류체계도 아니지만, 나는 어떤 곡을 듣고자 할 때 이 분류에 따라 폴더 위치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바꾸지 않고 계속 이렇게 모아 왔다.
앞으로도 음악은 더 쌓이겠으나, 속도는 더 느려질 것이고, 숙제처럼 의무감에 들어야 할 쌓인 음악들은 더 이상 없다.
사실 그 음악들을 들어내기 위해 기존에 쌓아둔 음악들은 훨씬 덜 들었다. 이제는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일부만 들어내면 64G짜리 USB 메모리에 거의 대부분 들어간다.
그걸 차의 USB에 꽂아두고 random play로 음악을 듣는다.
분명히 내가 최소 1번 이상 들어보고 괜찮다고 모아둔 곡들인데, 생각보다 낯선 음악들도 많다.
하지만 꽤 좋은데도 잊고 있었던 곡들, 음악은 알지만 음악가의 이름도 곡의 제목도 잊은 음악들이 나와주니 선별해 모아둔 보람은 있다. 24시간 내내 틀어두어도 한달은 들을 분량이다. 이제 음악은 모으지 말고 즐기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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