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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wi

by edino 2009. 2. 9.

아직 이녀석 잘나온 사진이 이것 밖에 없다. 본 이들도 많을 듯.

미처 부모들이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생겨나 잘 자라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이번 겨울에 뉴질랜드에 놀러갔다 오고 나서 생겨나서 올해 말쯤 태어나 어여쁜 딸로 자라났어야 했다.

어디 계획대로 되는 게 인생이던가.
우선 우리의 기회비용을 상기시키는 뜻에서 태명은 kiwi.
그리고 벌써 세번째 아들 판정을 받았다. (더 안물어도 자꾸 확인시켜준다.)
뭐 계획이란 것도 늘 변하게 마련이니 현실은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곧 아빠가 될 예정에 있다는 걸 들은 다양한 인간들의 반응 중에는 나의 변화해온 ~주의에 대한 힐난들도 제법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 나는 고등학교때 처음 결혼관이 생겨났다.
그때의 결혼관(?)이란 건 심플했다.

"23살의 여자와 결혼하겠다"

내가 이렇게 단순했나 싶기도 하지만, 아마 대학교 1학년 초 정도까지도 유지된 듯 싶다.
그때 내게 23살은 충분히 성숙한 젊은 여인의 나이를 의미했다.
내 나이가 몇인가에 상관없이 23살의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거였지만, 실제 내가 결혼한 나이까지 미혼이란 건 상상도
못해봤지 싶다. 아마 27살쯤에 결혼하려니 여겼을 거다.

그 다음 단계는 잠시 동안의 독신주의였다.
사실 23살의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것보다 독신주의를 내세웠던 이유가 더 잘 기억이 안난다.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이유도 아니고, 그즈음 내가 뭐 포기하기 싫을 만큼 자유로운 single life를 만끽했던 것 같지도
않고. 얼마전에 같이 술마신 n군이 한 얘기로 봐서 대학교 3, 4학년때 즈음 결혼에 대한 주의였나보다.

뭐 이런 저런 사람 만나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도 왔다 갔다 했겠지만, 그 다음의 주의는 결혼은 하되 애는 싫다 뭐 이런
생각이었다. 말하자면 dink족으로 우아 떨면서 좀더 여유있게 살고 싶다는 거였는데, 이 생각은 여전히 이해가 잘 가는
생각이다. 아, 지금도 그러면 안되나? -_-;; 어쨌든 그래서 꽤 오래 이런 주의를 견지했었다.

그 다음 단계는 아마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결혼해서 딸 하나만 낳고 살겠다' 였다.
정확히 이 변화가 어디서 기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현실적으로 내가 우긴다고 관철하기 쉽지가 않겠다는 판단에서
수정된 주의일게다. 먼 옛날 나의 dink 주의에 동조했던 그녀도, 다시 만난 즈음엔 어느덧 애기를 너무 예뻐라 하고 있었고,
뭐 부모님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아들은 예쁘지도 않고 사고나 쳐대고 커서는 썰렁하기나 하니까 딸을 낳아야지 했다.

어쨌든 결과론적으로 가장 비현실적인 주의를 결혼할 때까지 유지했던 셈이다.
그래도 1/2의 확률로 맞으면 언행일치를 할 수 있었을 터이나, 역시 부모 뜻대로 안되는 게 자식인지라.
엄마 뱃속에서부터 부모의 뜻을 잘도 거스른다.

바뀐 현실 앞에 이젠 계획을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1) 그래도 하나만 이라는 거라도 지키자.
2) 그래도 형제가 있는게 좋지 않을까? 기왕이면 둘째 딸이면 더 좋고.
3) 그러면 kiwi의 누나뻘로 딸을 입양해서 kiwi를 키우게 하자.

뭐 이런 저런 다양한 안을 놓고 고민하다, 지금은 1)로 다시 많이 기운 상태다.
아들 하나면 딸 하나일 때보다 좀 덜 신경쓰면서 살 수도 있을 것 같고.
혹시 안예쁜 딸이면 뭐 그냥 아들도 괜찮지 않나 싶기도 하고. ㅋㅋ
주변 애들 자라나는 것 보면 딸 예쁜 것도 정말 잠깐인 것 같고.
맞벌이 하면서 둘 키우는 것도 쉽지 않고.
어차피 스무살 넘으면 다 각자 인생이고.
또 살다 보면 모르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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