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휴가지는 늦게 결정되었다.
작년 Barcelona 가는 비행편이 너무 길었다 보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끝나기 전까지는 유럽쪽은 좀 버겁게 느껴저서, 처음에는 캐나다나 남반구를 알아봤었다. 뉴질랜드는 그쪽 겨울 날씨가 영 별로라 하여, 그나마 북미에서 가까운 Vancouver 정도를 알아봤는데, Rocky산맥의 멋진 풍경을 보러 Banff 등으로 가자니 운전시간이 만만치 않다. 나도 장거리 운전이 힘들지만 Kiwi도 자동차 오래 타는 걸 싫어한다. 그냥 도시 여행으로 Vancouver와 Seattle 정도 묶어서 가볼까 싶어 여행책자도 좀 봤는데, 비행기값이나 시간 등을 고려할 때 가성비가 영 아쉬웠다.
더위를 피해 직항이 있는 곳을 보자니 몽골이나 중앙아시아도 가보고는 싶은데, 호응도 별로고 준비도 미흡하다.
Kiwi가 이제 중3이라 한달도 채 안되는 짧은 여름방학에 학원 다 빠지고 길게 휴가 가기도 어렵고, 리조트 여행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만만하게 갈 곳은 일본 뿐이다. 일본의 여름에 그나마 가볼만한 곳은 홋카이도 뿐 아닐까 하여 알아보니 역시 모두 같은 생각들인지 홋카이도 비행기표 값이 80만원 가까이 한다. 물론 마일리지 표도 씨가 말랐다.
극악무도한 비행기값에 고민하던 차에, yeon이 일본지사 직원에게 들은 일본인들이 여름에 많이 찾는다는 휴양지를 알아왔다. 이름도 생소한 가루이자와. 해발 1,000미터 가까이 위치한 곳이라 부자들의 별장도 많고 여름 휴양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70분이면 간다고 하니, 괜찮겠다 싶어 가루이자와를 도쿄와 묶어 가기로 결정.
도쿄는 비행편이 많아 마일리지표도 좀 있고, 올해까지 소진해야 할 마일리지도 좀 있어서, 가는 편도는 마일리지로 예약하였다. 처음에는 가루이자와 일정을 중심으로 도쿄 1박-가루이자와 2박-도쿄 1박으로 일정을 짜다가, 도쿄 일정이 너무 잘게 나뉘고 호텔 이동도 번거로와, 가루이자와 2박-도쿄2박 일정으로 바꾸었다.
작년에 Kiwi가 비행기 타고 멀미 비슷한 걸 해서 상당히 힘들어 했는데, 그래도 이번엔 2시간 정도니 괜찮겠거니 했다.
왠걸 비행기 냄새가 괴롭다고 하는데 이번엔 더 심해서, 기내식도 전혀 못먹었다. 나는 재미삼아 해산물식을 사전 신청 해서 먹었는데, 평범한 연어구이였다.
하네다 공항에 내려서 도쿄역으로 이동하여 신칸센을 타고 바로 가루이자와로 향했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갈까 하다가, 해당 구간이 평일에 금방 표가 매진되는 건 아닌 듯하여 도쿄역에 도착해서 표를 구매하였는데 별 문제 없었다. 1시간에 1대 꼴로 있어서, 많이 기다리지는 않았다.
신칸센은 처음 타보는 것 같다. 에키벤도 먹어본 적 없어서 한번 시도해 보았다. 막연히 기차 안에서 팔거나 JR에서 뭔가 공식적으로 파는 건 줄 알았는데, 그냥 역의 가게들에서 파는 도시락이다. 따뜻한 밥의 도시락도 아니고, 그야말로 편의점 도시락 같은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칭찬하는 한국 편의점 도시락도 너무 별로였어서, 큰 기대는 안하고 그래도 에키벤이란 걸 경험은 해보자는 마음으로 구매하였다. 1,500엔 정도로 가격도 싸진 않은데, 나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ㅎㅎ 내 선택이 좋았던 건지 Kiwi의 멀미 여파가 아직 문제인 건지, 나는 맛있게 잘 먹었는데 Kiwi는 많이 남겼다. yeon도 김밥, 유부초밥 맛있었다는데, Kiwi는 기차 내려서까지 한참 힘들어했다. -_-;
일본 열차가 선로 폭이 좁다고 들었는데, 신칸센은 2+3 좌석 배치임에도 매우 쾌적했다. 최근 목포에 갈 때 탔던 SRT 특석 1+2 좌석 배치랑 공간감이 별 차이 없고, 일반석 2+2 배치보다는 훨씬 쾌적한 것 같았다. 알고보니 신칸센은 선로 폭을 더 넓게 설계하여 기존 노선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KTX와 동일한 표준궤이긴 한데, KTX/SRT보다 차량폭은 훨씬 넓다고 한다.
아무튼 신칸센 가격은 비쌌지만 편안히 70여분 달려 가루이자와 역에 도착. 해발 940m로 고도가 가장 높은 신칸센역이라고 한다. 역은 아주 크진 않지만 작지도 않고 있을 건 다 있다.
가루이자와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곳은 호시노야인데 숙박비가 너무 비싸기도 한데다 이미 빈 방도 없었다. 호시노야 뿐 아니라 대부분의 숙소가 상당히 비쌌다. 작년에 비싸다고 생각했던 Barcelona 호텔값은 이곳에 비하면 매우 싸게 느껴진다. 인원수가 좀더 많다면 아파트 같은 숙소가 선택지로 있지만, 우리는 단기이고 렌트도 안할 생각이라, 이동하기 편리한 호텔이 좋았다. 그래도 휴양지에 가까운 곳이라 숙소에서 시간도 적지 않을 듯하여, 좀 비싸긴 했지만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예약했다.
우리 호텔은 역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다. 따로 셔틀은 없는 것 같고, 걸을 만한 거리라 걸어갔다.
가루이자와의 첫 느낌은 조용하고, 오래되었지만 깔끔한 소도시. 이제껏 일본에서 가본 곳 중에 가장 소도시(?) 아닐까 싶다.
호텔은 객실이 3층까지 밖에 없는 아담한 건물이었다. 가루이자와 전체적으로 4층 이상의 건물이 별로 안보인다.
호텔이 꽤나 비싼 가격이었지만, 일본 호텔 룸들이 기본적으로 작기도 하거니와, 홈페이지의 사진도 별로 안넓어보여 큰 기대는 안했었는데, 생각보다 방이 좋았다. 광각으로 찍어 더 넓어보이긴 하지만, 꽤 여유롭다. 저 욕실 유리창은 물론 내려서 가릴 수는 있지만, 유리가 아니라 벽이었다면 훨씬 갑갑했을 것 같아서 거의 내리지 않고 사용했다. 어차피 안쪽 화장실이나 샤워실은 별도 불투명 유리문이 있고, 목욕은 옥상층에 있는 대욕장이 좋다.
비행기 멀미에 이어 에키벤 멀미(?)까지 하는 Kiwi는 일단 Wi-Fi 충전으로 기력을 회복시키기로 하고, yeon과 둘이 주변을 둘러보러 나갔다.
19세기말부터 서서히 피서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는데, 일본내 외국인들이 먼저 즐겨 찾기 시작한 모양이다.
일본지사 직원으로부터 듣고 온 얘기기도 한데, 서양 음식점들이 많아 오히려 정통 일식집 찾기가 더 어렵다.
가루이자와의 가장 번화가는 구 가루이자와 긴자인데, 우리 호텔에서 멀지 않아 걸어갈 거리다.
구 가루이자와 긴자의 시작지점이라 할만 삼거리(혹은 사거리).
가루이자와 버스들이 많이 정차하여 줄 선 사람들도 많고 관광버스도 많이 오간다.
혹시 가루이자와 여행정보를 찾다 들어온 사람들에게 팁을 준다면, 렌트가 꼭 필요한 것 같진 않다. 그렇게 많이 다닐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데나 세워도 되는 곳들은 아니라 주차도 신경써야 한다. 그렇다고 여기저기서 나와 있는 것처럼 자전거로 다니는 건 생각보다 먼 거리도 있어, 아무리 가루이자와라도 한여름에는 좀 버겁다. 버스를 타면 왠만한 곳은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는데, 문제는 대부분 한시간에 한두대(시간대에 따라 다름) 정도라 여행 일정을 버스 시간표에 맞추는 게 좋다. 구글의 버스 안내가 맞는 경우도 많지만 가끔 틀려서 아예 안오는 경우도 있었으니, 현지 정류장에서 안내판을 보고 참고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구글 렌즈 덕이니, 구글 없을 땐 어떻게 여행했나 모르겠다. 택시는 Uber로 두번 불러봤는데 기차역 근처가 아니면 잘 안잡혔다. 다른 현지 택시 앱을 쓰면 좀 나을 것 같은데 안써봐서 모르겠다.
구 가루이자와 긴자 초입은 꽤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요즘 일본 여행객 중 한국인 비중을 고려했을 때, 가루이자와에는 한국인이 별로 없어서 2박3일 동안 2,3팀 정도 본 것 같다. 오히려 중국 관광객이 꽤 많이 보였다.
초입에 Snoopy 물건들만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구경하기 좋다. 물건들이 싸지는 않다.
가게 앞엔 귀여운 포토존이 있어 사람들이 찍고 간다.
거리를 걷다 보니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거리 끝에 이르고 보니, 숙소에서는 좀 먼 것 같아서 딱히 가볼 예정에는 없던 쇼 예배당이 멀지 않아 거기까지 가보기로 했다. 원래 가보려던 가루이자와 성 바오로 성당은 오후 4시까지여서 벌써 닫았다.
가는 길에 있는 예쁜 까페 건물.
쇼 예배당과 쇼의 흉상. 주변은 성당보다는 오히려 신사 같은 느낌이 난다.
내부에 들어가볼 수 있는데, 우리가 들어갔을 땐 아무도 없었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는 내부는 그다지 크지 않고 목조라 신기한 느낌이다.
오히려 유럽에서 보던 성당들보다 훨씬 오래된 고대 교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ㅎㅎ
이런 기념 예배당이 있다니, 쇼는 순교자라도 되는 걸까? 방금 찾아보니 캐나다 성공회 목사이긴 하나 가루이자와를 여름 휴양지로 유명해지게 만든 인물이라고 한다. ㅎㅎ
어쨌든 일본에서 성당 구경이라니 나름 색다른 경험이긴 하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지도에는 길 외에 아무것도 없다시피 하다.
그래도 길이 있으니 조금만 더 걸어가 보았다.
한여름 아니라 가을쯤이면 하이킹하기 괜찮지 않을까 싶은 길이다.
Wi-Fi 충전을 끝낸 Kiwi도 데려나오려 숙소로 일단 복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쿠모바이케. 1.3km 정도 거리라 버스를 탈까 했는데, Kiwi가 그정도면 걷자 하여 걸어갔다. Wi-Fi 충전 효과가 크다.
쿠모바이케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호수인데, 사진으로 봤을 때 혹하게 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래저래 안가다 보면 가루이자와에는 갈 데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ㅋㅋ 어쨌든 가보았으나, 날도 좀 흐리고 습한 날씨에 이런 모습이라, 감탄할만한 곳은 아니었다. 다만 저렇게 보면 더러워 보여도(?) 물은 꽤 맑고, 바닥이 보이는데 깊이는 대부분 생각보다 훨씬 얕다.
후딱 걸으니 한바퀴 도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10분쯤 걸렸으려나.
끈적끈적한 날씨에 해도 지려 하고 있어 벌레 걱정도 되고, 사색을 즐길만한 시간은 아니었다.
오는 길이 꽤 인적이 드물었어서, 오다가 본 근처의 몇몇 식당에 가면 어두울 때 귀가하기 난감할 것 같았다.
아직 해가 있을 때 큰 길가에 있는 숙소 근처 식당을 찾아보았다.
평점 꽤 높은 이탈리안 식당을 찾았는데, 갔을 땐 아무도 없었지만 이미 예약이 가득 찼다 하였다.
또 하나 팁을 얘기하자면, 가루이자와에서는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미리 예약을 하자.
다음날 저녁도 평일이니 괜찮겠지 하고 찾아갔던 스페인 음식점이 자리가 없어보이지 않았는데도 예약하지 않았으면 안된다고 하여 거절당했다.
결국 주변에서 적당해보이는 식당에 찾아갔다.
Kiwi는 함박스테이크를 시켰는데, 나머지 주문한게 나오니 정신없이 먹었는지 사진이 없고 기억도 안난다. -_-;;
Kiwi에게 물어보니 피자와 파스타를 시켰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피자는 옛날 피자맛 나면서 괜찮았던 것 같다.
가루이자와 현지 맥주가 있어서 시켜 먹었는데, 좀 싱거웠다.
편의점의 나라 일본이지만, 가루이자와는 그렇지 않다.
심지어 번화한 구 가루이자와 긴자 쪽에도 우리가 아는 유명 체인 편의점은 없다.
결국 물이나 간식 거리 등을 사기 위해서는 식당에서 숙소 반대쪽인 역 앞으로 가야했다.
Kiwi는 화장실 가겠다고 하여 먼저 호텔로 보내고 yeon과 둘이 걸어 다녀왔다.
그래도 여긴 규모가 꽤 컸다. 편의점에서도 가루이자와 맥주를 몇 종류 더 사봤는데, 전반적으로 다 싱거운 느낌.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본 예쁘게 지어둔 공중화장실.
겨우 8시 즈음의 큰 길가인데도 낮의 구 가루이자와 긴자 거리에서 봤던 인파는 온데간데 없고, 거리가 무척 한적하다.
방에서 조금 쉬다 옥상의 대욕장으로 갔다.
탈의실에서 한두명 마주치긴 했는데 안쪽의 탕과 바깥의 노천탕에는 사람이 없어서, Kiwi와 전세낸 듯 사용했다.
물 온도는 적당하고, 바깥 날씨도 밤이 되니 덥진 않다.
위는 호텔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노천탕 사진. 왼쪽 담벼락이 어른키보다 조금 높은데 아마도 여탕일거라, yeon을 불러볼까도 했지만 다른 사람도 있을지 모르니 말았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Kiwi와 둘만 있다 보니 기분 좋은 호사였다.
요즘 여드름이 꽤 난 Kiwi는 여기서 목욕한 후로 피부가 좋아진 것 같다며 나중에 도쿄에서도 온천을 찾았다.
여행지로서 다른 건 유럽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유럽이었다면 이제 막 착륙했을 시간이다. 일본에선 이미 다른 도시로 기차를 타고 넘어와 이렇게 이런 저런 일정을 소화하고 목욕까지 개운하게 마치고 잘 준비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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