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혼자 발길 닿는대로 돌아보았으니, 오늘은 가족들과 함께 차근차근 돌아보기 시작.
호텔에서 아주 가까운 곳은 뒤로 미루고, 나머지 걸어서 갈 만한 곳들을 한붓 그리기 시도.
국립 도자기 박물관-레이나 광장-발렌시아 대성당-버림받은 자들의 성모 성당-비르헨(처녀) 광장-세라노 타워.
힘차게 출발, 하기엔 배가 고프니 일단 보이는 커피&베이커리에 들어가서 아침 식사.
9시반쯤이었는데 좌석은 좁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어 정신이 좀 없었다.
유명한 발렌시아 오렌지로 짜주는 주스가 있었는데, 농구공 던지듯이 껍질채로 기계에 던져넣으면 주스가 되서 나온다.
얼른 먹고 나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가려 하였는데... 오늘이 선거날이라고 문을 닫았다. -_-;;
설마 하는 생각에 발렌시아에서 가려고 마음먹은 박물관 1순위 Museo Fallero도 알아보니 오늘 안한다고. ㅠㅠ
발렌시아의 가장 유명한 축제인 Las Fallas 축제에서 인형들을 투표로 하나만 남기고 태운다는데, 그렇게 남은 인형들만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그런데 뭐 미술관이나 다른 데들은 다 열기도 하는 걸 보면 선거날은 그냥 어제 야근해서 피곤하니 쉬고 싶은데 핑계 아닌가 싶다.
도자기 박물관은 어제처럼 밖에서 건물만 구경하고 이동.
레이나 광장을 거쳐, 발렌시아 성당에 들어가 보았다.
바르셀로나 있다가 오니 성당인데 입장료가 없는 것도 고맙다.
일요일이라 미사보러 온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비르헨 광장도 바로 옆에 붙어 있다.
Basílica de la Mare de Déu dels Desemparats. 버림받은 자들의 성모 성당이라고 번역되나보다.
여기도 거주민들인지 미사를 보러 온 사람들이 많은 분위기.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매우 화려하고, 돔에 그려진 천장화가 인상적이다.
비르헨 광장의 동상과 분수대.
세라노 타워로 향하는 길에 마주친 아주 작고 예쁜 광장.
노란 톤의 건물들과 어울리는 오렌지 나무가 인상적이다.
세라노 타워가 나타났다.
입장료가 있다고 본 것 같은데, 오늘만인지 어쩐일인지 공짜라고 한다.(그런데 표는 준다.)
발렌시아 만세! 입장료가 있어도 바르셀로나 대비 엄청 싼 편이고, 무료도 많고.
3단에 걸쳐 올라갈 수 있다.
난간이라던가 안전장치는 부실한 편이니 알아서 조심.
난간에 올라 바라본 발렌시아 올드 타운 쪽.
반대쪽 풍경.
발렌시아 올드 타의 북쪽 절반은 동서로 길게 죽 이어지는 녹지가 감싸고 있다.
가려던 박물관들이 닫았고 더워서 빨리빨리 다니다 보니 11시도 안되었는데, 근처에서 가려던 곳들을 다 돌았다!
그렇다면 시간 되면 가보고 싶었으나 Kiwi 눈치에 자체 검열로 접어두었던, 발렌시아 미술관을 제안해 보았다.
세라노 타워에서 60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얼른 가서 시원한 거 마시자고 설득하여 출발.
겨우 600미터였지만, 익어버릴 듯이 뜨거운 길이었다.
다행인 것은 들어서자 마자 시원한 에어콘이 더위를 날려줬다는 것. 또 다행인 것은 까페가 없었지만 자판기 음료수 빼서 마실만한 공간은 있었다는 것.
위는 매표 공간이 있는 곳이다. 여기도 무료지만, 표는 나누어준다.
상설 전시 외에 특별 전시도 있었는데 그것까지 모두 무료.
여기까지 군말없이 온 것만 해도 칭찬해주기로 하고 Kiwi는 바깥에 앉혀 두고, yeon도 잡아두는 바람에 나혼자 먼저 전시를 봤다.
특별 전시를 먼저 볼까 하다가 그쪽에 사람도 별로 없기에 상설 먼저 보려고 들어갔다. 전시설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바깥에서 미술관 처음 들어왔을 때 같은 시원함이 한차례 더 다가왔다. 유럽은 미술관이라 해도 냉방이 부실한 경우가 꽤 많은데, 전시실 바깥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이 안쪽은 냉장고 같다. ㅎㅎ Kiwi에게 이 시원함을 알리면서 이 안에도 의자가 있으니 들어와 있으라 하였으나 아무래도 미술관 알레르기인가보다. 그냥 밖에서 대기.
카탈루냐 미술관에 비하면 정신없을 정도로 크진 않아, 40분 정도 둘러보았다.
중세부터 근대까지, 그리고 조각품들도 있다.
지나치며 보던 그림 중에 '이것은 벨라스케스?' 하고 보니 벨라스케스 자화상이었는데, 내가 벨라스케스 얼굴을 알았던가 하고 생각해보니, '시녀들' 속 그의 얼굴과 자세가 인상적으로 남아 있었나보다. 고야의 그림도 있고 하지만, 마드리드의 미술관들에 비하면 지방도시 미술관... -_-;;
미술관은 수도원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고 한다. 내부에 이런 공간도 있다.
먼저 보고 나와 yeon과 바톤 터치. yeon은 상설 전시를 보러 들어가고, 나는 Kiwi 더러 잠깐 혼자 있으라 하고 특별 전시를 보려 하였는데... 전시실 앞에 아까는 안보이던 긴 줄이 생겼다. 그것도 잘 줄어들지 않는 줄... -_-;;
그새 단체 관광객 버스가 몇대 오기라도 한 건지, 결국 전시는 못보았는데, 전시 안내 팜플렛을 보니 호아킨 소로야 작품 전시회였다. 호아킨 소로야라면 우리가 도착했던 발렌시아의 역이름? 소로야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발렌시아 태생이라 도시의 자랑인가보다. 꽤 대규모 전시인듯 싶었는데, 처음에 들어갔으면 좋았을 걸 아쉽다.
지난주 부모님 댁에 갔을 때 방에 걸린 달력을 보다가, 문득 어디서 본듯한 그림풍인데 싶어 화가를 확인해보니 소로야였다. ㅎㅎ 직접 본 그림은 몇점 없지만, 따뜻한 느낌의 화가이다.
이제 일단 호텔로 철수해야 하는데 어떻게 갈 것인가?
1.1km 정도 거리인데, 이 더위에 당연히 택시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들 걷겠다고 하여 출발.
이 더위에도 뛰는 사람들이 있다.
호텔로 돌아가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였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들러본 Redona 광장. 뭔가 좀 애매하다. ㅎㅎ
점심 메뉴는 발렌시아 원조의 맛을 느껴보고자 빠에야로 결정하고, 빠에야 잘하는 집으로 검색을 해서 찾아갔다.
대부분 제대로 빠에야 하는 집에서는 1인분이 안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하는데, 여기도 40분이 걸린다고 한다. 그정도 못기다릴 건 아닌데, 문제는 실내 좌석이 없어 바깥에 앉아야 한다는 것. 잠깐의 논의 끝에 기다리기로 결정. 그 와중에 시켜서 먼저 나온 발렌시아 오렌지 주스는 얼음도 안넣어줬다. (나중에 yeon은 따로 요청)
40분을 가만히 익어가길 거부하고, yeon은 자리를 지켰으나 나는 Kiwi와 마트 구경도 가고, Kiwi에게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하다 보니 마침내 나왔다. 거의 3시가 다 된 시간, 점심도 점점 늦어진다.
더운데 뜨거운 음식이었어도 Kiwi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나도 맛있게 먹었으나, 원조라고 특별한 맛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전에 스페인에 왔을 땐 음식들이 매우 짰던 기억이 있고, 여기저기 여행 안내에도 주문할때 덜 짜게 해달라는 주문을 꼭 하라고 되어 있었는데, 음식들이 특별히 짜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 빠에야 주문시에 처음으로 덜 짜게 해달라고 했었는데, 주문받는 분이 안짜다고 했다. ㅎㅎ)
점심을 다 먹으니 3시가 넘었다.
오후의 일정은 숙소에서 가장 먼 예술과 과학의 도시(CAC). 그래봐야 택시로 15분 정도 밖에 안걸린다.
이번 여행의 행선지 중에 가장 젊은, 최신의 목적지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해봤는데, 아직 완공도 안된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더 최신이라고 봐야 할까? 어쨌든 첨단을 달리는 범상치 않은 일련의 건축물들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몇년 안된 건물들이고 한꺼번에 다 지어졌으리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찾아보니 1998년부터 2009년 사이에 걸쳐 다 따로 지어졌다. 위에 보이는 로봇 머리 뒤통수 같은 Palau de les Arts Reina Sofía도 2005년에 지어졌다니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여전히 첨단의 느낌이다. 오페라 하우스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위 왼쪽의 다리는 2007년에 지어졌고, 그 가운데 보이는 L'Hemisfèric은 가장 오래된 1998년에 지어졌다. 위 오른쪽이 그 내부인데, IMAX 영화관과 플라네타리움 등이 있다. 고래 몸통 같은 걸 생각했는데 눈 모양을 형상화했다고 한다.(옆에서 보면 눈 모양)
왼쪽에 보이는 것은 2000년에 지어진 펠리페 왕자 과학박물관.
Kiwi에게 과학박물관 관람을 권유해 보았으나, Kiwi는 이미 여기에 꽂혀 있었다.
발로 밟는 녀석들은 금방이라도 빌릴 수 있으나, 전기로 가는 것은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겨우 10분 타기 위해 저 땡볕에서 30분을 기다리겠다고? 그러나 기꺼이 기다리시겠다고 하니 그럼 나도 같이 타려고 같이 기다렸다. 어차피 기다려야 할 거, 타기라도 해야지. ㅎㅎ 요금은 한 대당 5유료니 싼 편.
한 여섯대쯤이나 돌아다니고 있으려나. 10분 되기 전에 돌아오면 다음 사람이 넘겨 받아 탄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렇게 넓고 수요가 많은데 한 다섯배쯤 갖다 놓을 것 같기도... 우리 앞에 다 큰 20대쯤 되는 남자애들 서넛이 있었는데, 좀 기다리다 빠져 나가서 20분 정도 기다려서 탈 수 있었다.
속도가 매우 느려서 양말 신은 신발 신고 타도 안젖을 정도로 스릴감은 없지만, 이런 곳에서 타보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니 나름 즐겼다.
물가의 끝에 위치한 L'Àgora는 가장 최근인 2009년에 지어졌는데, 테니스 등 스포츠나 콘서트, 전시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고 한다.
CAC에서 가장 신기했던 건 내부에 상업적인 공간이 거의 없다는 것. 이 넓은 공간에 최소한의 식당 2개, 카페테리아 정도만 있고 일체의 상업시설이 없어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신선하기도 했다. 카페테리아 줄이 너무 길고 먹을 것도 없어서 결국 CAC에서 쓴 돈은 수상전기보드(?)를 타는데 쓴 10유로와 왕복 택시비가 전부였다.
꼭 내부의 컨텐츠를 즐기지 않아도 건축물들 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긴 하다.
여기서도 따로 내부 관람은 하지 않았다 보니 저녁 먹을 때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서, 택시를 타고 바로 숙소가 아닌 레이나 광장 근처에 내렸다.
바로 여기, 오르차타를 마셔보기 위해 Orxateria Santa Catalina를 찾았다.
들어서자마자 떠올랐던 느낌은 Lisbon에서 갔었던 에그타르트집과 비슷했다. 꽤나 전통있게 생겼고,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으며, 찾는 메뉴는 대부분 같은 것일 거라는 점에서.. 아니나 다를까 찾아보니 여기도 2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발렌시아는 오르차타의 원조격인 곳이고, 이 가게도 그 전통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맛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처음엔 2잔만 시켰다. 오르차타 외에도 초콜릿에 찍어먹는 추러스 등도 메뉴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셔 보니 다들 반응이 좋아 결국 오르차타 3잔에 Farton을 찍어 먹었다. 맛은 달라도 잘 안어울릴 것 같은데 더울 때 마시는 것이, 미숫가루 같은 느낌도 있다.
돌아갈 기력을 회복한 후, 다시 호텔로 돌아가 충분히 휴식.
저녁 6시도 안되 숙소에 들어갔는데, 거의 10시까지 쉬다가 나왔다.
너무 편안하다 이 리듬. ㅋㅋ
오늘은 어제 가보려다 못간 Gran Mercat에 재도전하여 성공.
여전히 줄도 있고 사람이 많았으나 금방 자리를 안내해줘 자리를 잡았다.
여기 와서 본 음식점들의 특징은, 술 종류는 메뉴에 잘 나와 있는데 그 밖에 음료에 대해서는 대부분 따로 적혀있지 않다. Kiwi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해 뭐가 있냐고 물어보면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다. 환타, 콜라, 스프라이트, 아이스티, 쥬스 등이고, 쥬스가 뭐 있냐 물으면 또 오렌지, 파인애플, 레몬 등등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yeon은 계속 물어보고, Kiwi는 그 중에서 또 선택을 한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선택된 것은 환타 오렌지일듯.
또 와인 메뉴도 부실한 경우가 많은데, 병으로 시키면 따로 리스트를 주는 곳도 있겠으나, 처음부터 와인 리스트를 주는 곳은 없다시피 하다. 그냥 레드, 화이트, 스파클링 중에 말하면 더 묻지도 않고 가져다 주는데, 하우스 와인이 무슨 와인인지 적혀 있는 곳도 별로 없다. 2006년 마드리드에서도 멀쩡한 레스토랑에서 병 와인을 너무 차갑게 내줘 신기했었는데, 암튼 이 동네는 많이 마시기는 하되, 별로 따지지는 않고 마시는 것 같다.
갈리시아 스타일(?) 문어 요리, 흰새우 요리, 감자요리(Patatas Bravas)에 화이트 와인 세잔, 파인애플 주스 두잔.
맛있게 배부르게 잘 먹었는데 46.5유로.
여기저기 많이 다닌 건 아니지만, 식도락은 여러모로 발렌시아 쪽이 가성비가 훨씬 좋지 않나 싶다.
이렇게 발렌시아에서의 마지막 밤도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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