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그 전날보다는 늦게 잤고, 오늘은 어제보다 늦게 일어났지만 그래도 일찍 일어났다.
오늘의 일정은 비교적 먼 곳+현재 숙소 주변으로 해서 피카소 미술관-산타 마리아 델 마르 성당-까사 밀라-까사 바트요.
피카소 미술관까지 전철편이 좀 애매해서 내려서도 한참 걸어야 해서 버스를 타려 했는데, 눈 앞에서 타려던 버스를 놓쳐버렸다. 버스 간격도 짧지 않고 구글 맵 정보도 믿을 수가 없어서, 어찌할까 하다가, 일단 근처 커피&베이커리에서 아침을 먹고 택시를 탔다. T-Usual 카드가 아깝긴 해도, 이동거리가 먼 건 아니라 택시비가 그리 많이 나오진 않는다.(8유로 나왔음) 패스 종류가 없으면 1회권 끊는 것보다 택시가 괜찮은 경우도 많을 듯.
택시 기사 아저씨가 영어를 잘하진 못해도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여주니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그 와중에도 지나치면서 유명한 것들 한번씩 얘기해준다. 여기 오른쪽에는 초콜릿 박물관도 있다 얘기해주고.
우리 묵은 호텔 근처와는 다르게 구도심 느낌이 나는 보른 지구에 피카소 미술관이 위치해있다.
좁은 건물 사이로 걸으면 나오는 미술관 건물이 예사롭지 않은데, 찾아보니 13세기~14세기에 지어진 저택 5개를 개조하여 하나의 미술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 아트티켓 세번째 사용, 이미 본전은 넘겼다.
워낙 비싼 양반이니 그러려니 해야겠지만, 피카소 미술관 이름 치고는 대작이 드물다.
예전에 마드리드 갔을 땐 소피아 or 프라도 미술관에서 게르니카도 봤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도 봤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소피아 or 프라도 미술관의 게르니카를 볼 수 있는 곳에 서면 사방으로 엄청나게 유명한 대작들이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촬영 금지였는지 사진은 안남아있고, 블로그에 기록하기 전이라 어떤 그림들이었는지 찾을 수가 없네. 그때 기록한 일기가 있을텐데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피카소 미술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재해석한 연작 시리즈. 70대 중반의 피카소가 다섯달 동안 58점의 연작을 그렸다고 한다. 각각이 작품이라기엔 하나를 위한 습작들 같기도 한 느낌. 전부가 다 여기있는지는 몰라도 상당수가 한 방에 전시되어 있다.
그림 못지않게 미술관 건물이 상당히 훌륭하단 말이지.
Kiwi는 어제 카탈루냐 미술관에서보다는 상태가 괜찮았지만, 연이은 미술관에 질려하고 있었다.
여행 복습을 하다 보니 피카소가 즐겨 찾았다는 4 cats 카페도 근처에 있다고 한다. 어제 알게 된 금수저 라몬 카사스가 연 까페라 하고, 여기에서 피카소와 연이 생겼다고.
다음은 불과 200여미터 떨어진 산타마리아 델 마르 성당(Basilica of Santa Maria del Mar).
바르셀로나는 무슨 성당도 돈을 받냐, 불만이었지만 5유로면 그냥 들어가기로.
이런 유럽 성당도 흔하다면 흔하지만 4년만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높은 천장은 늘 경외감을 준다.
하지만 내부가 덥고 Kiwi 등쌀에 오래 머물진 않았다.
성당 주변에 이렇게 약간의 공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부분들이 다른 건물들과 너무 붙어 있어서, 성당 전체를 조망하기에 안좋다. 이 광장과 저 구조물은 1700년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한다고 한다.
성당 바로 앞에서 시작되는 보른 거리.
오늘은 짐을 빼서 발렌시아로 이동하는 날인데, Renfe 예약 시간은 오후 4시경이다.
시에스타의 나라라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호텔도 체크아웃이 12시인 경우도 많다는 점. 우리 호텔도 12시까지 체크아웃이라 오전에 짐을 안맡기고 나온 상태인데, 벌써 11시가 되어 가는 시간이라 돌아가는 것도 택시를 타기로.
시간이 되면 근처의 시우타데야 공원과 개선문도 들르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다시 올 시간은 없을 것 같아 택시타고 지나가며 본걸로 봤다 치기로.
호텔에 돌아가 짐을 싸 체크아웃 후 맡겨두고, 까사 밀라 입장권을 인터넷으로 구매 후 걸어서 까사 밀라로 향했다.
입장료가 까사 비센스보다 조금 더 비싸지만 볼거리는 까사 밀라가 훨씬 많아 만족도는 더 높았던 편.
규모가 상당하다. 건축주인 밀라 부부가 2층에 살고 나머지는 공동주택인데, 아직도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모든 층을 다 가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들어서면 안쪽에 바로 하늘이 뚫린 공간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그래도 직선들이 많다.
예전 살던 모습들을 보전 혹은 재연해놓은 곳인데, 이곳은 딱 봐도 남자의 방. 골프채, 자전거, 라켓, 술(?)
옥상 바로 아래층은 박물관처럼 꾸며 놓았다.
여기쯤 와서 Kiwi는 컨디션 급 저하로 다시 놓고 다녔다.
옥상은 나가자마자 별천지다.
까사 밀라는 마지막에 건축주와 건축가 사이가 틀어진 것 같은데, 이렇게 돈을 비싸게 받고 사람들에게 구경을 시켜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당연히 못했을테니, 건축비를 많이 부담해야 하는 건축주 입장에서는 화가 날 법도 했을 듯. 가우디는 여기가 거주민들의 쉼터가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보러 온 관광객들이 점령한 것을 알게 된다면 기쁠까? 묘할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렌트비는 얼마나 할지 또한 궁금하다. ㅎㅎ
찍을 땐 몰랐는데, 멀리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찍혀있었네.
Kiwi 등쌀에 까사 밀라도 후다닥 보고 나왔다.
근처에서 2박이나 묵었는데 야경을 못본 것은 좀 아쉽.
더이상 Kiwi를 끌고 다니긴 힘들어 일단 점심 먹을 곳을 찾았다. (중2 모시기가 부모님 모시기보다 힘들 듯.)
다음 목적지 까사 바트요 쪽으로 가려면 넓다란 그라시아 거리를 따라 걸으면 되는데, 쇼핑하기 좋은 가게들은 많지만 음식점은 대로변에는 별로 없다. 구글맵에 음식점들이 좀 모여있는 곳이 있어 까사 바트요를 약간 지나쳐 찾아 갔는데, 먼저 눈에 띈 것이 Five Guys. 원래 여행가서는 한중일식당이나 프랜차이즈는 잘 안가는데, Five Guys는 한국서 줄서서 먹는다 하니+Kiwi도 햄버거라면 좋아하니 한번 가볼까 싶었다. (예전에 이스탄불 갔을 때 Shake Shack도 프랜차이즈라고 걸렀다가 한국에 가보니 막 들어와 줄서 먹는단 얘기에 가볼껄 그랬나 싶었던 생각도 남)
들여다보니 사람이 많기는 한데 자리는 있어서 냉큼 앉았다. 다만 주문하고도 음식을 받는데는 좀 걸렸다. 정신없이 주문 받고, 정신없이 패티 굽고, 연기에, 음식 기다리는 사람들에,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아니다. 기다리는 동안 땅콩은 맘대로 가져와 먹을 수 있는 것이 특이. 시스템을 정확히 모르겠는데 버거와 프라이만 먼저 나왔고, 쉐이크는 따로 기별이 없어 yeon이 주문받는 분을 닥달하여 받아왔다.
좀 덜 인스턴트스럽게 만들기는 하고, 맛도 괜찮기는 하지만... 셋이 46유로 정도 나온 걸 생각하면 그 돈이면 먹을 수 있는 괜찮은 버거들도 많으니, 별로 안기다리고 먹어봤다는 데 의의를 두자.
점심 먹고 다시 왔던 길을 거슬러가니 까사 아마트예르가 먼저 나온다.
까사 바트요 덕분에 조금 더 유명해졌을까, 아니면 빛에 가린 게 더 클까. 덕분에 조금 더 유명해졌더라도, 건축가는 가우디 바로 옆에 있는 게 탐탁치는 않을 것 같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까사 바트요.
까사 밀라도 그렇고 부자 양반들이 이런식으로 자기들이 살면서 일부를 임대줬다는 게 신기한데,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자신들만의 집으로 지었다면 이런 규모는 아니었을 테고, 임대만으로 지었다면 또 이렇게 멋지게 지을 일도 없었을테니, 어쨌든 이만한 건축물이 남은 것도 당시 생활상의 산물이겠다.
조금 서두르면 내부 구경도 할만한 시간이 있었지만, 여전히 상태 별로인 Kiwi 데리고 더 다니기는 무리.
바깥에서 구경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호텔 로비로 철수하여 더위를 식히면서, Kiwi에게는 최고의 보양식 WiFi를 먹였다.
호텔 로비에서 30분 정도 쉬다가, 다시 지하철로 바르셀로나 Sants역으로 향했다.
운전 부담도 없고, 쾌적하고, 빠르고, 고속철은 장점이 많지만, 비싸고, 짐을 챙겨야 하고,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이번에 발렌시아까지 고속철로 편도 이동 하기로 하면서 렌트 기간을 이틀 줄이고, 운전 부담도 좀 덜었다.
예전에도 이랬었나 잘 기억이 안나는데, 공항만큼은 아니지만 보안 검색이 꽤 철저하다. 그러고보니 장거리 기차도 '15년 이후 처음인 듯.
좀 오버스럽긴 했지만 캐리어도 자전거 묶는 걸로 묶어뒀다.
3시간 정도면 가는데, 발렌시아 전에 두번 정차한다.
기차가 제 시간에 출발하고, 구글맵을 보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구글맵에 나온 바르셀로나-발렌시아 Euromed 구간은 거의 해안선을 따라 똑바로 가는 길인데, 기차가 북쪽으로 간다?
처음엔 자기 센서 이상인가 싶어 보정을 해봤는데, 방향은 그렇다 쳐도 위치가 분명히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방향으로만 보면 스페인 북부 빌바오 쪽으로 가는 것 같기도 하고...
기차를 잘못 탄걸까? 플랫폼은 제대로 내려온 것 같고, 시간도 정시에 출발했는데... 이 기차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거지? 최소 한시간은 북쪽으로 가면 우리가 오늘 안에 발렌시아로 갈 수는 있을까? 하지만 다른 기차라면 정확히 우리 자리와 같은 번호만 세자리가 비어있을리는 없지 않을까? 잘못 탔으면 벌금도 내고 발렌시아행 표도 다시 끊어야 하나? 호텔은 그냥 날리는 건가? 일정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
머리속으로 5만가지 상황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일단 먼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생각하는 동안, 기차는 서서히 남서쪽으로 크게 돌기 시작했다. 휴....
yeon과 Kiwi는 모르고 다행히 내 머리속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놈의 구글맵, 바르셀로나 근처에서는 영 별로다.
그리고 구글맵에서 철로는 바다를 끼다시피 하고 갔는데, 실제로 가는 내내 바다는 거의 보질 못했다.
올리브 밭이나 가끔 보이고, 볼 거리는 거의 없는 기차길이다. (졸았을 때 절경이 지나갔을지는 모르겠다.)
식당칸도 있다길래 구경가봤다.
메뉴는 매우 빈약해서 뭘 먹진 않았다.
그래도 3시간 동안 편안하게 이동하여 발렌시아에 도착.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여기 사람들도 도착 한참 전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짐 챙기고 내릴 준비 하고 있었던 게 좀 웃겼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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