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 호아킨 소로야역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즈음이다. 아직도 해는 쨍하고 날은 덥다.
우리의 호텔은 구도심에 있는데, 걸어서도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걸을 계획은 아니었다.
택시를 잡으려 했으나, 엄청나게 긴 줄에 포기하고, 버스를 타러 갔다. 다행히 버스는 금방 왔고 현금으로도 버스 안에서 결제하기 쉬워서 세 정거장 이지만 잘 타고 갔다.
우리의 두번째 호텔은 부띠끄 호텔이라고는 되어 있으나 24시간 데스크가 없는 가족이 운영하는 숙박업소 정도랄까.
물론 호텔의 그러한 시스템을 포기하면 대신 방 크기라던가 다른 걸 얻게 된다.
이번에도 예약은 호텔 자체 홈페이지에서 했는데, 예약 때부터 우리의 체크인이 늦는다는 걸 알려둬서 출발전엔 메일로, 여기 와서는 WhatsApp으로 집주인과 연락을 하였다. 구글맵 따라 주소의 건물에 도착했는데, 일반적인 호텔이 아니다보니 입구를 찾기도 어려웠다. 건물 한바퀴를 돌고서야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호텔 주인은 퇴근(?)한 시간이라 digital로 방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는데, 알려준 앱을 깔면 블루투스를 통해 건물, 호텔, 방 3개의 문을 모두 앱으로 열 수 있다. 일단 방에 들어가면 카드키도 놓여 있어 이후엔 그걸 써도 된다.
건물 바깥은 좀 허름한데, 방은 깔끔하고 꽤 넓었고, 창틀이라던가 낡은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화장실은 완전 신축 수준이라 괜찮았다. 저 예쁜 벽색과, 벽에 꼭 맞게 짜인 책상을 yeon은 상당히 맘에 들어했다. 이 방에 붙여진 이름은 '붉은벽&책상집'.
그렇다고 한 채씩 덜렁 있는 아파트 형태는 아니고 나름 방도 여럿이고, 셀프로 계산하고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음료 정도는 비치해 두었다.
한 시간쯤 방에서 같이 쉬다가, 거의 밤 9시가 되었는데도 다들 덜 배고프다고 하여, 우선 혼자 둘러보러 나섰다.
버스에서 내려 호텔까지 오는 길만 해도 올드 타운 맞나 싶었는데, 골목길을 지나 200미터도 안가서 이런 성당이 나온다. 바로 근처의 La Lonja de la Seda, Mercado Central이 더 유명한데, 어쨌든 워낙 숙소에서 가까우니 자세히 보는 건 넘기고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녀 보았다.
오기 전에 호텔 주인이 소식을 하나 알려줬는데, 우리가 도착한 날이 축제 비스무레한 뭔가가 열린다는 얘기였다. Gran Nit de Juliol 라고 하는데, 여행책자에 실릴 만큼의 유서깊은 축제는 아닌 것 같지만, 딱히 맞추려 하지도 않았는데 시기가 맞았으니 좋다. 전에 아비뇽 갔을 때 우연히 아비뇽 연극제 시기였던 적이 있는데, 딱히 연극을 보지 않아도 분위기 느껴보는건 좋았으니. 더 좋은 건 바로 우리 호텔 근처의 Mercado Central 에서 불꽃놀이로 축제의 막을 내린다는 것! 호텔 주인이 알려준 링크로 들어가보니 그 외에도 박물관 등이 야심한 시간까지 오픈한다는 등의 내용이 있었다.
원래는 차가 다니는 길 같은데, La Lonja de la Seda 앞도 차들을 통제하고 뭔가 행사를 하고 있었다. TV 방송국에서도 와서 찍고, 방송 시작하자 그에 맞춰 학생들로 보이는 친구들이 행진 비슷하게 했다. 축제는 축제인지라 거리에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는데 행사 이름은 Pluja de paraules 인 듯. 나중에 찾아봐야지.
https://www.visitants.com/vl/pluja-de-paraules/
이번 여행 폴더 제목을 카탈루냐 여행으로 붙일까 하다, 발렌시아가 있어 그냥 스페인으로 묶었다. 발렌시아는 카탈루냐와 동질성이 크다고 하나 행정적으로도 분리되어 있고, 카탈루냐어와 비슷하긴 해도 발렌시아어라고 따로 얘기하고 있다.
사람들 많이 걷는 큰길 따라 걷다 보니 이런 거리도 나왔다.
여기도 여전히 old town 안쪽인데, 제법 현대적이고 번화한 거리들이 나온다.
처음 호텔로 갈 때 지저분한 낙서 가득한 길로 와서 발렌시아 첫인상이 별로였는데, 스페인 제3의 도시 답달까. 중세와 현대가 잘 어우러진 느낌이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이런 깔끔한 거리를 보지 못하였다. 멋들어진 거리와 가게들이 넘쳐났다.
대부분의 볼거리들이 올드 타운 가까운 데에 밀집해 있는 걸 알고 와서 이날은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걸었지만, 그래도 유명한 곳들을 많이 만났다.
건물 자체는 Palacio del Marques de Dos Aguas인데, 내부는 국립 도자기 박물관이 있다.
흔히 건물에 쓰는 자재가 아닌 것 같은데, 왠지 내구성은 떨어져 보이나 무척이나 화려하다.
마침 축제의 영향으로 박물관도 10시까지 연다. 보나마나 Kiwi는 오기 싫어할테니 혼자 구경하고 갈까 했는데, 그 시간에도 사람들의 줄이 너무 길었다. 들어가서 내부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만 스윽 보고 나왔다.
꼭 건물 표면에 펜으로 그려둔 것 같다.
어딘지도 모르고 갔고, 구글맵에 가보려고 표시해둔 곳도 아닌데 멋진 거리와 광장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발렌시아, 매력이 넘친다.
Santa Caterina 교회가 멀리 나타나고, 또 근처에 세계에서 두번째로 좁은 건물이라는 La Estrecha 하우스가 있다. 저 정도로 좁은 데가 따로 건물일 줄 예상 못했다. 처음엔 어디인지 못찾고 두리번거리다 공사중인 곳이 보여 거기인가 하고 엉뚱한 데를 사진 찍었다. 다시 잘 보니 저 작은 입구에 폭 107cm라고 써있다.
내부가 궁금해져 좀 찾아보니, 원래 어느 가족이 각 층을 하나씩의 방으로 하여 가족 집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옆 건물과 내부 벽을 터서, 내부는 사실상 옆 레스토랑의 일부라고. (실망이야.)
발렌시아 대성당과 미겔레테 탑. 이때는 여기가 어딘지도 몰랐다.
이렇게 멋진 발렌시아에도 한가지 문제 아닌 문제가 있었으니...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밤 10시인데도 너무 덥다.
한국 돌아와서 비교해보면 별 차이 없는 것 같긴 한데, 바깥을 오래 돌아다니다 보니 더울 수 밖에. 실내도 한국만큼 냉방이 철저하지 않은 곳이 많고. 끓는 지구 기후 때문에 더더욱, 이제 한여름에 남부 유럽 여행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여행이었다.
어쨌든 다시 호텔로 돌아가 같이 식사하러 나왔다. 어제는 아홉시반, 오늘은 열시, 아주 자연스럽다.
가려고 봐둔 곳은 설마했는데 그 시간까지 사람들이 줄 서 있어서 포기하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쾌적해 보이는 곳이 있어 그냥 들어갔다. 호텔에 딸린 식당 겸 Bar였는데, 빠에야와 비슷한 해산물 Fideua, 이베리코 구이, 닭고기 구이 3접시를 시켰는데 셋다 양도 제법 되고 모두 맛있었다. 음료와 와인/맥주 한잔씩 곁들였는데도 48유로 정도 나와서 새삼 바르셀로나와의 비싼 물가를 체감함과 동시에 발렌시아에 대한 애정이 더욱 피어올랐다. ㅋㅋ
중간에 먹다 보니 어느덧 11시가 다 되어갔다. 맞다 불꽃놀이! 중간에 먹다 계산도 안하고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계산하고 나왔다. 우리 호텔 쪽이면서 불꽃놀이 쏘아올리는 곳 쪽으로 가려 했으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결국 어느 정도 이동하다 사람들 사이에 멈춘 채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는데, 하필 저렇게 나무가 가린 곳에 멈췄다. -_-;; 대략 6~7분간 무지하게 쏘아댔는데, 크고 아름다운 불꽃이라기 보다는 요란한 물량 공세였다. 재즈 공연에서 드럼 파트가 솔로 연주라도 하는 것 같이 연발로 쏘아댔다.
성대하게 환영인사를 받으며, 발렌시아에서 첫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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