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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tchat

돈키호테

by edino 2019. 10. 13.

테리 길리엄 옹께서 아직도 영화를 찍는단 말인가! 하고 이 영화가 나온 걸 보고 찾아 보았다.

이 영화를 찍기까지 꽤 사연이 많은 것 같은데, 영화 자체는 기대를 가지고 본 영화 중 평타 정도랄까.

사실 이 영화를 얘기하려고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고..

 

거의 읽기만 하지만 최근 내가 하고 있는 SNS라고 부를만한 것은 FB뿐이다. FB은 '동호회 전성시대'에 내가 바라던 SNS의 궁극적 구현에 가까운 SNS였다. 여러 현실세계의 모임들이 온라인에서 일부는 프리챌 등에, 일부는 제로보드 같은 툴을 써서 독립 사이트로 운영되고, 온라인상 자신만의 공간을 원했던 개인들은 싸이월드를 꾸미던 시대였다. 동호회나 싸이월드는 각각 폐쇄적이었고, 블로그는 너무 개방적이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예를 들어 글을 하나 써도 내 지인들에게 다 퍼지고, 댓글 같은 피드백은 개인 대 개인처럼 이어지는 체제였다. FB은 그런 희망에 가장 가까운 구현처럼 보였으나, 생각처럼 작동하지는 않았다. 일단 내가 나와 연결된 모든 지인에게 동일하게 하고 싶은 말이란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내 친구에게 한 말이 내가 모르는 친구의 친구에게 보여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FB은 내가 원했던 페이지 형식이 아니라, stream에 가까웠다. 검색 기능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형편없고, 동호회처럼 쓰기는 무척 불편하다. 그 형식에 맞게, 올라오는 글들도 지나가는 글들이고, 단지 사이사이에 광고를 끼워넣기 최적인 미디어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나에겐 한정된 몇몇 지인들의 개인적인 삶을 엿볼 수 있을 뿐, 이제 FB은 사람 사이를 연결시켜준다기 보다 주로 관심사를 f/up 하기 위한 미디어가 되었다.

 

최근 FB에서 몇몇 사람들이 어떤 사건들(예를 들면 조국 장관 관련 '사태')에 대해 보여준 글들을 보면서 이 돈키호테가 생각났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피드에 올라온 많은 의견들에 발끈하여 자신의 의견을 막 적는다. 내가 보는 건 그 사람의 글과 거기 달린 댓글들 뿐인데, 직접적인 댓글로 다투는 경우란 별로 없기 때문에(그럴 것 같으면 이미 서로 절연), 댓글들은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주로 달기 마련이다. 지인 집단도 비슷하게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 그가 자신의 '적'들과 싸우는 모습은 영락없는 돈키호테다. 본인은 거대한 거인 혹은 악마와 싸우는지 모르겠는데, 남들 눈에는 풍차랑 싸우는 거라.

 

단지 그의 적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 적들이란 결국 자신이 만든 것 아닌가. 어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만으로 주변을 채워 평안을 구가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구분해내게 해주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울 것이다. 어쨌든 자신에게 보여지는 것들은 자신의 선택의 결과다. FB은 단지 각자가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들을 들이밀 뿐이다. 거기다 평소 그 사람에 대해 알던 바와 다르게 그가 의외의 모습까지 보이며 격렬히 싸운다면, 그 비난 대상은 그의 '그림자'라는 의심도 강하게 든다.

 

이런 얘기는 그럼 FB에 써야하지 않겠나 싶기도 하지만, 결국 그런 돈키호테들을 주변에 둔 것도 다 나다. 이것도 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로 시작했지만, 결국 나 자신을 돌아볼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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