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칠순을 맞이하여, 본격 여행은 작년에 미리 다녀왔고, 올해는 1박 일정으로 다 같이 그다지 멀지 않은 원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원주는 어딘가를 지나가느라 들러본 적이나 있으려나, 원주 자체를 목적지로 온 것은 처음인듯?
원주를 목적지로 삼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곳, 뮤지엄 산의 소개를 어디선가 보았기 때문이다.
이곳의 유명세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전시 그 자체보다 널찍하게 자리잡은 정원을 포함하는 안도 다다오 설계의 뮤지엄 건물과 그 주변 덕택.
제법 비싼 입장료이지만, 하늘과 물이 만나는 이런 공간을 구경할 기회는 흔치 않다.
뮤지엄 산의 시그니쳐 같은 풍경.
모두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미술관 내부의 전시는 제법 다양하다.
공간을 나누어 여러 주제의 전시들이 있다.
그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은 한글과 관련된 설치작품이다. 천장 위에서 프로젝터로 빛을 쏘고 있는데, 종이를 가져다 대면 거기에 한글 글자가 하나 와서 종이에 씌여지듯 생긴다. 그 종이를 천천히 옮겨서 역시 프로젝터로 뭔가 흐르고 있는 듯한 효과를 내고 있는 곳으로 가져가면, 종이 위에 씌여졌던 종이가 마치 먹이 물에 씻겨가듯이 떠내려가는 효과를 내며 사라진다. 직접 참여도 해볼 수 있고 재미있다.
미술관 입장권은 두 종류인데, 제임스 터렐 전시를 함께 보면 훨씬 비싸진다.
도대체 어떤 전시이길래 이렇게 제한된 숫자의 사람들만 시간을 정해 전시를 볼 수 있게 하는 걸까.
제임스 터렐 전은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봐선 짐작이 잘 안갔으나, 자주 오게 될 곳도 아닌지라 온 김에 같이 보기로 했다.
제임스 터렐 전시는 저 돌로 된 정원 끝에서 시작한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가면 2~30명 남짓의 사람들을 2개 조로 나누어 관람을 한다.
관람이라기보단 체험에 가깝달까.
눈의 암적응을 위해 어두운 곳을 벽을 짚으며 들어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흰 벽과 경계를 알 수 없는 빛, 공간의 배치.
마치 안개가 잔뜩 낀 듯한 공간에 직접 들어가보기도 한다.
빛만 차 있는 공간인데, 경계가 흐려짐으로 해서 우리의 공간 감각은 길을 잃는다.
조금 더 밝은 하늘이 뚫려 있는 공간을 활용한 전시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하늘을 향해 나가는 듯한... 밖으로 나서면 펼쳐지는 풍경까지 이 전시의 일부인 셈.
아무데나 만들 수 있는 전시관 스케일이 아니다.
특정 요일 밤 시간대에만 하는 특별 전시도 있는데, 시간이 맞으면 그 또한 흥미로울 듯.
식사나 차를 마실 수 있는 또 다른 사진 spot.
건너편으로 아무런 인공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이런 공간이라니.
참 멋진 곳에 자리한 뮤지엄이 아닐 수 없다.
원주는 그다지 보고 즐길만한 꺼리가 많은 동네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뮤지엄이 전부라면 1박 여행으로는 좀 아닌 것 아닌가 싶을 텐데, 아이와 함께인 가족이라면 알차게 즐길 거리가 꽤 있다. 우리가 묵었던 오크밸리에서는 밤에 간이 천문대에서 별 관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생각보다 주변 광해도 있고, 습기가 많은 날씨라 그다지 별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별 보는 것에 조금 관심을 가지던 중이라 천체망원경으로 관측하는 토성과 목성은 즐거운 구경거리였다. 열악하지만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핸드폰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오크밸리의 방도 리모델링 한 것으로 잡아 깔끔하고, 주말이 아니어서 그런지 인터넷에서 그냥 예약해도 부담스런 가격은 아니다. 게다가 2인 수영장 표도 포함.
이튿날 오전, 부모님은 물놀이를 즐기는 분들이 아니라 조각공원 등을 산책하시는 동안, 우리는 수영. 큰 워터파크는 아니어도 실내와 실외가 다 있고 Kiwi가 즐길만한 미끄럼틀도 있다.
오크밸리는 원주에서도 서울에서 가까운쪽 끄트머리에 있다.
그래서 그나마 원주의 볼거리들은 죄다 집에서 멀어지는 방향.
그래도 그냥 집으로 가긴 좀 아쉬운 시간, 어머니 의견에 따라 박경리 문학공원에 가보았다.
토지를 읽지 않아 큰 감흥이 있는 것은 아니나, 둘러볼만하다.
근처에서 보쌈과 해산물을 푸짐하게 내주는 맛집을 찾아 맛나게 먹고 귀가.
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오르자 비가 내리기 시작.
날씨 운도 괜찮았고, 금토로 다녀오니 차도 덜 막히고 역시 평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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