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hitchat

by edino 2009. 3. 2.

'꿈'이라는 우리말과 'dream'이라는 영어 단어에 두가지 의미가 똑같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편의상 수면 중 일어나는 정신현상으로서의 꿈을 '프로이트의 꿈'이라고 하고, 희망이나 이상으로서의 꿈을 '거위의 꿈'이라고 칭하자. 어쩌먼 거위의 꿈으로서의 꿈은 dream이란 말이 번역되면서부터 우리도 그런 뜻으로 쓰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자어 夢은 프로이트의 꿈의 뜻으로는 쓰여도 거위의 꿈의 뜻으로는 거의 안쓰이지 않나?

아무튼.
그 거위의 꿈으로서의 꿈은 가끔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구석이 있다.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둥, 꿈을 제대로 꿔보기나 했느냐는 둥, 광고건 드라마건 노래건 책이건 강박적으로 꿈을 얘기한다.
몇년 전에, 그러니까 병역특례도 마치고 나서 계속 밥벌이를 하고 살아가던 어느 날, "내 꿈은 뭐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한 6, 7년 전쯤만 해도 내게도 거위의 꿈 비슷한 꿈이 있었을지 모른다. 광고나 드라마나 노래나 책에서 떠드는 대로라면 나는 꿈을 위해 노력도 안해보고 포기한채 살고 있는 소시민이다.

맞다. 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예전에 원했던 다른 길을 갔다 한들 평범한 소시민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종류의 밥벌이를 하고 있을 것이고, 어느 쪽이 더 행복했을지는 안가봐서 몰라도,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결국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예전에 하고 싶었던 몇가지 것들을 밥벌이로 하고 살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예전에 그런 것들을 꿈꾸던 것과 현실의 차이도 안다.

광고나 드라마나 노래나 책에서 말하는 거위의 꿈은 대체로 너무나 거창해서, 나로서는 한번도 생각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것들만 꿈인양 느껴진다. 광고나 드라마나 노래나 책에서도 뽀대가 날만한 꿈을 이룬 사람들이란 적어도 김연아나 박지성쯤 되거나, 오바마쯤 되야 할 것만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간절히 원하는 것들은 꿈이라기엔 왜소하다. 바라던 의대에 합격해서 의사가 됐다거나, 사법고시에 붙어서 뛸듯이 기뻐도, 원하던 회사에 취직을 하더라도, 꿈에도 그리던 여성과 행복한 결혼을 하더라도, 자기가 평생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교수가 되더라도, '너는 네 꿈을 이뤘구나' 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왜소해 보인다. 일단은 사람들이 많이 봐주는 일을 해서 갈채나 부러움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니면 꿈도 아닌 것 같이, 꿈이 이미지화 된다.

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다지만, 이런 괴리는 너무 심하지 않나?
우리가 어릴적 늘상 듣던 '넌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에는 거창할수록 모범답안이었지만, 우리 삶은 그런 게 아니지 않나?
되려 어린 아이들이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공무원'이라는 류의 답을 한다는 세상이 되어가는데.

꿈을 이루지 못하거나 별다른 꿈이 없다 한들,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는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한들, 그저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되는게 아닐까. 그렇게 큰 꿈을 꾸라고 하고 싶다면 개인의 영광보다는 차라리 김구 선생이나 마틴 루터 킹 급으로 좀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을 꾸라고 하면 안될까? 대통령이 꿈인 자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라꼴도 한번 보지 않았나?

<오리의 꿈>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