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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reading

안 그러면 아비규환

by edino 2013. 1. 11.

안 그러면 아비규환.

제목부터 화끈하다.

 

두께가 상당하여 주저하였으나, 화려한 필진의 20편에 달하는 단편이니 지루하거나 버겁진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이야기'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마음에 들어 손에 집었다. 이 책이 기획된 계기에 대하여 뒷부분에 나오는데, 소설에 있어 서사가 죽은 시대인 건 우리나라만의 얘긴 아닌 듯. 왜 우리나라 소설들은 이리 자폐적인가 짜증내면서 잘 안보기 시작한지 꽤 되었는데, 내가 그나마 최근에 읽은 영미 소설들이 대게 서사 중심이어서 그랬는지 잘 몰랐는데 말이다. (최근에 떠오르는 소설들만 해도 파이 이야기, 시간여행자의 아내, 빅 픽쳐 등 죄다 영화화 되었거나 진행중인, 서사 중심 소설들이다.)

 

사실 같은 분량이면 대체로는 단편들보다 장편 한편이 더 빨리 읽힌다.

단편들은 매 편마다 새로운 인물들, 설정 등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7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께를 감안해도 읽어낸 속도가 더 더딘 편이었는데, 회사에서 빌린 책이라 여러번 재대출을 해야 했다. 앞의 몇편 읽었다가, 대여 기간이 다 되어서 뒤에 두세명 있는 대기자들이 다 사라진 뒤에 다시 빌려 읽었다. 회사 도서관 대출 시스템은 반납일자가 다가오면 SMS로 알려주는데, 책 제목 덕에 그 내용이 재미있다.

 

"edino님이 대여하신 책의 반납기한이 xx월xx일 까지입니다. 정해진 기한 내에 반납해주시기 바랍니다. 안그러면 아비규환"

 

 

다채로운 쟝르와 이야기들의 향연인데, 당연히 취향마다 각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매우 갈릴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나 몇개 글들만 찾아보아도 재미있게 본 작품들의 리스트가 매우매우 다르다!

각 단편에 대한 간단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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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 / 안 그러면 아비규환

- 맨 앞에 위치하고 책 제목으로 뽑힌 이유가 있다. 닉 혼비가 이런 식으로도 글을 쓰는구나.

  예전에 즐겨 봤던 환상특급의 한 에피소드로 딱인 이야기다.

 

엘모어 레너드 / 카를로스 웹스터가 칼로 이름을 바꾸고 오클라호마의 유명 보안관이 된 저간의 사정

- 매우 훌륭하다. 웨스턴 하드보일드라는 쟝르가 있다면 이 소설이 그 쟝르의 전범이자 전형 아닐런지.

 

댄 숀 / 벌

- 환상과 실제의 구분이 모호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좀 끔찍하다.


닐 게이먼 / 폐점시간

- 액자식으로 이야기에 몰입도는 상당하고, 이야기속 이야기는 영화 Stand by Me를 떠올리는데, 바깥 이야기와의 연결이 역시 잘 이해가 안된다.


데이브 에거스 /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다

- 이 책에서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소재인데, 저자가 실제 킬리만자로 등반 경험이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셔먼 알렉시 / 고스트 댄스

- X-File의 한 에피소드를 관찰자가 아닌 초자연적 경험을 한 당사자 입장에서 쓴 것 같은 이야기.

 

스티븐 킹 / 그레이 딕 이야기

- 7부작 장편소설의 5부의 번외편에 해당하는 단편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잘 안들어온다. 다만 소설 속에 나오는 전설 이야기는 매우 매혹적이다.


캐럴 엠시월러 / 사령관

- 1인칭 이야기의 몰입도는 상당하나, 끝은 좀 허무하고 뭔가 덜된 느낌이다. 이 책의 이야기들 상당수가 그런 경향이 있다.


마이클 무어콕 / 나치 카나리아 사건; 명탐정 시턴 베스경 시리즈

- 잘 안들어와서 넘겨 읽었음.

 

마이클 크라이튼 / 핏물이 빠지지 않는다

- 마이클 크라이튼이 이런 소설도 쓰는구나.

 

글렌 데이비드 골드 / 스퀀크의 눈물 다음에 일어난 일

- 와우. 원래 서커스가 나오는 이야기는 매혹적인데, 추리소설 아닌척 하는 추리소설이랄까, 암튼 쟝르를 재치있게 비튼 듯한 이야기.

 

릭 무디 / 앨버틴 노트

- 꽤 긴데 잘 집중이 안되어서 넘어갔음.

 

크리스 오퍼트 / 척의 버킷

- 이 소설을 의뢰받고 진도를 못끝내 너무나 괴로워한 작가의 최후의 발악(?). ㅋㅋ 뭐 시도는 좋았는데, 역시 끝은 좀..

 

에이미 벤더 / 소금후추통 살인사건

- 제목처럼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실은 그저 삶의 아이러니를 얘기.

 

할란 엘리슨 / 다들 안녕이다

- 이 사람이 쓴 책들은 몇권 알지만, 작가의 이름은 이 책을 통해 각인. 좀 찾아보나 상당한 괴짜다. 재밌고 유쾌한 괴짜가 아나리 잘못 엮이면 무쟈게 괴로울 타입. 이 소설을 통해서는 사첼 페이지라는 옛날 야구선수를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해 찾아본 것이 더 재미있었다. 이 소설은 코드가 맞다면 끝에서 빵 터졌어야 할 것 같은데, 대부분의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어필이 안될 듯.

 

켈리 링크 / 고양이가죽

- 아주 재미있고 능수능란하게 쓴 매혹적인 어른 동화.

 

짐 셰퍼드 / 테드퍼드와 메갈로돈

- 이야기보다는 주인공이 메갈로돈을 찾으러 떠난 곳의 묘사가 참 인상적이다.

 

로리 킹 / 어둠을 잣다

- 이것도 이야기보다는 인물묘사가 흥미로운 편.

 

커렌 조이 파울러 / 개인 소유 무덤 9호

- 분위기라던지 다 좋았는데, 이것도 끝이 망.

 

마이클 셰이본 / 화성에서 온 요원; 행성 로맨스

- 이 책의 기획자이기도 한 소설가이고, 퓰리처상과 휴고상/네뷸러상을 동시에 받은 소설가라니 궁금해서라도 왠만하면 읽어보려 하였는데, 마지막에 "화성에서 온 요원 두번째 이야기, 맥스위니스 다음 호를 기대해 주세요" 라는 커다란 카피를 보니 도저히 읽을 생각이 안들어서 넘어갔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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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Best 4는,
카를로스 웹스터가 칼로 이름을 바꾸고 오오클라호마의 유명 보안관이 된 저간의 사정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다
스퀀크의 눈물 다음에 일어난 일
고양이 가죽

그러나 전체적으로 참으로 다채로운 형식과 소재, 배경 등이 매우 즐거웠다.
이에 비하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런 건 차라리 한 작가가 한 주제를 가지고 쓴 단편집에 가까울 듯.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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