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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reading

가장 인간적인 인간

by edino 2012. 11. 25.

원제 The Most Human Human.

 

기계에 지능이 있다고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컴퓨터공학사의 전설인 Alan Turing이 주장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Turing Test로 널리 알려진 이 방법은 인간과 컴퓨터를 서로 보지 못한 채 문자로 대화를 하게 하여 사람인지 기계인지 판별하게 하여, 인간이 상대방을 인간인지 아닌지 자신있게 판별할 수 없다면 그 기계는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튜링은 2000년대쯤에 5분간의 대화로 컴퓨터인지 인간인지 정확히 판별할 확률이 70%를 넘지 못하는 컴퓨터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 이 테스트를 매년 자신의 돈으로 개최하는 휴 뢰브너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2008년 이 대회에서 '가장 인간적인 컴퓨터'로 선정된 대화로봇 엘봇은 12명의 인간 심시위원 가운데 3명을 속일 수 있었고, 1명만 더 속였더라면 30% 합격점을 넘을 수 있을 뻔했다.

 

이 책의 저자는 2009년 이 대회에 컴퓨터와 '인간적임'을 겨루는 측에 서서 심사위원들로부터 '가장 인간적인 인간'으로 뽑혔다고 한다. 저자 스스로도 밝히고 있지만, "당신은 아주 인간적인 인간이다"라고 했을 때 우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이런 대회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간'상을 받았다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무슨 얘길 하겠다고 책까지 쓴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가는 책이나 기사를 쓰는 사람이니 책을 쓰기 위해 이 대회에 참가했을 것이고, 이 사람에게 특별히 '인간적인' 구석이 많아서 '가장 인간적인 인간'으로 뽑힌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아닌) 인간으로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여 이 대회를 준비했고,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인간'으로 뽑힌 사람이다. 저자는 컴퓨터과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시(詩)로 석사를 받은 사람이기에 아마도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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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간단하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책은 '인간적임'에 대해 산만하고 다양한 소재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래도 포커스를 하는 것은 '컴퓨터와 비교해서'이다.

예를 들면 일관된 정체성이란 것도 컴퓨터로는 구현하기 쉽지 않은 '인간적인' 면이다.

대화가 길면 길수록 컴퓨터는 사람인척 하기 힘들다.

이 대화에 대화로봇을 만들어 참가한 어떤 프로그래머들은 '봇을 만드는 일은 프로그램을 쓴다기보다 소설을 쓰는 것이 가깝다'라고 하였다. 로봇에게 '인간적인'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어제 본 영화 토탈 리콜에서와 같이) 한 사람을 창작해내는 것과 같은 일이 필요한 것이다.

 

반면 말싸움과 같은 대화는 '상태 독립적'이어서, 비교적 기계로 구현하기가 쉽다.

인간의 말싸움 대부분이 그렇듯이, 바로 이전 얘기에 꼬투리만 잡아서 이어가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9년에 어떤 사람은 한 '공격적인' 대화로봇과 (상대가 로봇이란 걸 모르고) 네트워크를 통해 1시간 반동안이나 말싸움을 주고받았다. 비록 그 사람이 대화 시작 20분경에 '너는 모든 걸 재수없이 되풀이하는 로봇 같아'라고 하였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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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으로도 흥미로운 몇몇 사실들이 등장하는데, 현재 대세가 된 구글식의 기계 번역 기법은 널리 알려저있다시피 기존의 번역들을 DB화 시켜서, 기계에게 그 언어, 문법을 '이해'시키지 않고도 다른 언어로 옮길 수 있게 한 것인데, 이때 사용된 양질의 번역문은 대부분 UN 회의록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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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이야기할 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인 뇌에 대한 부분도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좌뇌와 우뇌는 상당히 독립적이지만, 양뇌는 뇌량이라는 축색돌기 다발로 연결되어 있는데, 발작 등의 이유로 이것이 외과적 수술로 제거된 환자들이 있다고 한다. 이 환자들은 일상 생활에서는 특별히 자신이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양 눈에 서로 다른 이미지를 보고 방금 본 것을 그려보라고 하였을 때, 본 것을 말하는 것은 좌뇌가 본 것을 말하지만, 실제로 그리는 것은 우뇌가 본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좌뇌는 왜 본 것을 그리지 않고 다른 것을 그렸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또다른 한 환자는 수술 중에 뇌의 특정부위에 자극을 받자 발작적인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환자는 이유없이 웃는 자신에게 당황하기는 커녕, 마치 주변의 누군가가 자신을 웃긴 것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선생님들 정말 웃기시네요!"

 

좌뇌는 이렇듯 '나'를 자칭하는 동시에 내 주변의 모든 것을 해석하려고 드는 해석자이다.

더구나 언어를 지배함으로써 오른뇌를 영원히 침묵속에 가두고 있다.

 

반대로 뇌의 정서적인 부분을 손상당한 어떤 환자는, 조사에 대한 선물로 지갑과 만년필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였을 때 심각하게 며칠 동안 고민을 하고 결정 번복을 반복할 정도로 우유부단함에 빠졌다고 한다. (인간이 기계보다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이른바 heuristic은 우뇌의 영역에 가깝다는 증거인 셈)

 

이것이 흥미로운 점은, 동물과 비교하였을 때에는 가장 '인간적인' 특징인 고도로 발달된 인간의 좌뇌가, 컴퓨터로서는 가장 흉내내기 쉬운 영역이라는 점이다. 저자가 보기에 애석한 점은, 인간 사회는 아직까지도(어쩌면 점점 더) 언어와 수학 등 좌뇌의 영역을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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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하여 최근에 흥미로운 TED 강연을 보았는데, 아래 링크에 동영상이 있다.

 

http://www.nabeeya.net/nabee/view.html?cat1=52&cat2=67&cidx=2271&page=8&sidx=&type=review

 

이분은 본인이 신경학자인데, 좌뇌에 특이한 뇌졸중을 경험하였다.

좌뇌가 On되었다 Off되었다 하는 몇시간 동안의 기억을 그녀는 이야기하고 있다.

좌뇌만 정지된 상태의 느낌을 그녀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Nirvan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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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의 한 농장 노동자는 나쁜 것을 더 많이 생산해내는

부주의한 노동자가 좋은 것을 더 적게 생산해내는

주의 깊은 숙련공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투덜거린다.

전자는 국민총생산의 협력자인 반면에

후자는 국민총생산을 위협하는 미치광이다.

이런 사람은 빨리 처벌할수록 좋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주의 깊게 일하겠는가?

교만은 정말로 패망의 선봉에 있었다.

-스터즈 터켈

 

위의 내용은 저자가 책에 인용한 글인데, 재미있어서 나도 옮겨봤다.

특히 프로그래밍 하던 시절이 생각나는데, 빠른 속도로 코드를 생산해내고, 그보다 더 많은 버그를 심어놓고, 그것을 또 잡느라고 열심히 일하고, 하는 식으로 여러 모로 일을 열심히/잘 하는 것으로 높이 평가받던 사람도 있었다. ㅎㅎ

 

암튼 그 장에서 공감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직업 가수인 그녀는 흔들림없이 노래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공연 때마다 미세하게 감지되는 그 날만의 독특함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 자신이 터득한 기술에 균열이 생기면서 자신을 빠져들게 만드는 뜻밖의 순간들, 그래서 사물을 새롭게 보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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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의 딥 블루는 1997년 체스 세계챔피언 카스파로프와의 재대결에서 5번째 게임까지 동률을 기록하다 6번째 게임에서 손쉽게 카스파로프를 꺾었다. 여기까지는 매우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체스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나는, 체스의 수가 매우 단조로와서 바둑에 비하면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기 매우 쉬운 게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1997년에 세계챔피언을 꺾었으니 지금의 컴퓨터라면 인간이 한 게임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다.

체스의 초반과 후반은 매우 정형화되어 있어서 컴퓨터 뿐 아니라 체스 플레이어들도 이에 대한 DB를 외워 플레이를 한다. 이미 1863년 체스 챔피언 대회에서 총 40판 중 21판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게임이었고, 나머지 19게임도 똑같은 행마로 시작하여 40판 모두 무승부로 끝났다고 한다. 이에 초반을 다양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제한들이 도입되어 실제 대회에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컴퓨터가 가장 강력한 부분은 이 처음과 끝부분이다. 심지어 말이 7개 남은 종반전에 말을 517번 움직여 이길 수 있는 법을 찾아내기도 한다.(대부분의 게임은 40수 이전에 승부가 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처음과 끝부분은 사실상 어느 컴퓨터나 DB화 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컴퓨터간의 체스 실력이 가려지는 부분은 DB에 없는 중간 부분이다. 이 부분은 아직도 인간이 해볼만한 영역이고, 실제로 비교적 최근의 대결에서도 컴퓨터들은 인간을 완전히 압도하지는 못한다. 초반을 '강제로' 다양하게 만드는 몇몇 변형 룰에서는 더더욱 인간이 유리하다.

 

딥블루와의 마지막 게임에 대해서 카스파로프는 본인의 패배는 인정하지만 딥블루의 승리는 인정하지 못한다고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마지막 6번째 게임에서 그는 초반에 명백한 실수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 딥블루는 DB에 있는 초반의 영역안에서 게임을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스파로프는 패배후 다음 해에 재대결을 요구했지만, IBM은 이미 소기의 홍보 목적을 달성하였고 다시 뒤집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대결을 거부하고 딥블루에 대한 연구를 축소, 해체시켰다.

 

체스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였지만, 저자가 바둑에 조예가 있었더라면 이 장은 훨씬 더 풍부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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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에 칩을 삽입한 케빈 워윅이란 교수는 '세계 최초의 사이보그'란 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가 얼핏 기사 등을 통해 읽기로, 그가 칩을 몸에 심었다고는 하나 몸 밖에서도 되는 것을 단지 몸 안에 넣어서 작동하는 것밖에 차이가 없어보여서 별로 흥미를 갖지 않았었다.

 

그의 뇌에서 나오는 신경 신호를 받아 그의 팔과 똑같이 움직이는 로봇팔은 시시하다.

그의 모자에 장치된 음파탐지기가 워윅의 팔에 신호를 보내는 장치에 비하면.

처음에 음파탐지기가 물건이 가까이 올때마다 신호를 보내자 워윅은 검지가 따끔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곧 그의 뇌는 스스로 새로운 데이터에 익숙해 졌으며, 손가락이 따끔거리는 느낌도 사라졌다. 그리고 물체가 다가오면 쉽게 형언할 수 없는 물체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맙소사.

박쥐나 돌고래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초음파를 통해 동굴속이나 물속을 느낄까 하는 의문은 물론 나만 가졌던 것이 아니다. (이미 1980년대에 '박쥐가 되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논문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을 만한 인간이 이미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니, 한명이 아니다. 그의 아내도 팔에 회로가 삽입되어 있어서, 둘은 시각이나 음성에 의지하지 않고도 초보적인 단계의 '통신'을 할 수 있다. 그의 아내가 팔로 어떤 자세를 취하면 그의 팔이 따끔거리는 식이지만, 뇌가 여기에 적응하게 된다면?

나아가 훨씬 다양한 상황에 적응하게 된다면? 우리는 기계의 도움으로 텔레파시를 현실화 시킬 수도 있을 것이고, 기계가 주는 감각에 적응한 뇌는 점점 인간이란 무엇인지 답하기 어렵게 할 것이다. 거기에 서로 다른 뇌를 연결해주는 대역폭이 점점 늘어난다면?

 

스스로의 뇌에 대한 이해도 아직 한참 모자란데, 이런 상황은 아직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진화는 아닌 것 같다.

끔찍한 주제이지만 흥미롭기는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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