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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reading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by edino 2011. 9. 14.

왠만해선 두꺼운 책, 여러권 짜리 책은 손에 잘 안잡는 편이다. 이 책 한권을 읽을 시간에 다른 책 두권을 읽을 수 있는데, 과연 이 책이 그만한 값어치가 있을까? 라는 질문에 쉽사리 그렇다고 판단되어지는 책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엇비슷하다고 판단되어지는 경우라면 나는 다른 책 두권을 읽는 편을 택한다. 더 다양하고 덜 지루하니까.

리처드 도킨스라면 몇몇 유명작들이 있지만, 나는 아직 그의 다른 책을 읽은 적은 없다. 이 책도 그 두께에 질려 별로 볼 생각이 들지는 않았었다. 어쩌다 이 600페이지짜리 두꺼운 책을 손에 잡게 되었을까? 아버지 서재에 꼽혀 있는 책들을 살펴보다 이 책의 목차가 너무나 선정적(?)이라 손에 잡을 수 밖에 없었다. "대단히 종교적인 불신자, 신 가설,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유, 종교의 뿌리, 도덕의 뿌리:우리는 왜 선한가, 내가 종교에 적대적인 이유, 신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 이런 소제목들은 너무나 직설적이어서 도대체 이 스타 과학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호기심이 크게 일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누구나 미리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그의 7단계 구분에 의한 신의 존재 확률 스펙트럼에 굳이 대입해보자면 나는 3번, "기술적으로는 불가지론자지만 유신론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신이 있다고 믿고 싶다"와 4번, "신의 존재와 비존재는 확률상 같다"의 중간 어디쯤에 있을 것 같고, 순전히 논리적인 면에서만 보자면 PAP(Permanent Agnosticism in Principle)와 TAP(Temporary Agnosticism in Practice)의 중간 정도 입장이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불가지론이다.

도킨스는 스스로를 7번(나는 신이 없다는 것을 안다)에 기울어진 6번(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0은 아님. 사실상 무신론자)으로 분류하며, 그 입장에서 모든 종교 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범신론, 불가지론까지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이 책이 두꺼운 이유다. 그가 공격해야 할 대상은 너무나도 많다. 개신교, 가톨릭, 이슬람교는 물론이요 각종 원시 종교까지도 그냥 넘기지 않는다. 불가지론과의 적당한 연대도 할 법 하건만, 그의 칼날은 거침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전선은 넓어지고, 책은 두꺼워진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아주 샅샅이 읽을 필요는 없었다. 이를테면 기독교 교리의 비논리성을 논하는 챕터들을 내가 상세히 읽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 토요일에 같이 하교하던 친구 둘이 내일 소풍 어쩌고 하는 말을 듣고, 내일은 일요일인데 무슨 소풍이냐 했다가, 둘이 교회에서 소풍을 간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다음날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교회에 다니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벽하게 자발적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케이스다. 많은 아이들의 계기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부활절 달걀이었듯이, 나의 경우에는 소풍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도 친한 친구들이 교회를 많이 다녀서 함께 우르르 여러 교회들을 전전했었다. 게중에는 좀 이상한-기도 및 찬송하면서 울고 난리치는-교회도 있었지만 나로써는 그런 경지에는 절대 이르지 못하였고, 머리가 크면서 내 질문에 대한 목사/전도사들의 대답이 신뢰가 가지 않게 되면서 중고등학교때는 잘 다니지 않았지만, 고3 때 잠깐 예쁜 여자애가 다니는 교회를 다닌 적은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적극적인 종교활동이라면 논산 훈련소에서의 가톨릭 세례를 받은 일이다. 뭐랄까, 교도소에 있는 동안 자격증이라도 따는 기분이랄까. ㅎㅎ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여러 종교들의 모순에 대해 논리적으로 공격하는 부분은 그다지 흥미로운 부분이 아니었다. 종교는 논리로 보자면 굳이 도킨스의 공격이 아니어도 너무나 허약하기 그지 없다. 논리뿐 아니라 오늘날 여러 종교들의 행태에 대한 그의 분노도 사실 비신도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공감가는 내용들이지만, 역시 내가 굳이 이 책에서 읽고 싶었던 내용은 아니었다. 재미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소위 '개독'이라 조롱받는 개신교도들의 행태가 단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란 것. 미국에도 못지 않은 꼴통들이 많았다. 어찌나 비슷한지 한국의 주류라 칭하는 기독교가 왜그리 미국을 좋아하는지 알만 하다. 이슬람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지금 내가 서있는 입장에 대한 공격은, 비록 도킨스 자신은 충분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나로서는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내가 더 받아들이게 된 그의 입장이라면, 진화론이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자신있게 지적설계론을 반박하고 있다는 것 정도. (다윈은 도킨스의 신이다. ㅎㅎ) 하지만 내가 신을 어렴풋이라도 생각하는 건 진화론이 못미더워서는 아니다. 이를 의식하여 도킨스도 우주론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지만, 생물학자인 그의 한계, 그리고 현대물리학의 한계도 도킨스의 진화론만큼 자신만만하진 않은 것 같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무신론자 동무는 러셀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직설적이기까지 하니 도킨스가 여러번 그를 언급할 수밖에.

버트란드 러셀은 자신이 죽어서 신 앞에 섰을 때 신이 왜 자신을 믿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 "신이여, 증거가 불충분했습니다. 증거가요." 신은 비겁하게 내기로 양다리를 걸친 파스칼보다 용기 있는 회의주의를 내세운 러셀(그가 제1차 세계대전 때 용기 있게 평화주의를 주장했다가 투옥된 것은 제쳐두더라도)을 훨씬 더 존중하지 않을까?

그의 책이 논쟁적인 이유는 종교에 대한 그의 증오에 가까운 공격이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만악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은 그도 인정하지만, 너무나 많은 전쟁/살인/증오/무지의 원인이 종교라고 그는 보고 있다. 그가 그렇게까지 종교를 배척하는 것은 단지 그 이유가 다일까 싶을 정도로 그는 종교를 증오한다.

그런데 정말 종교가 가장 큰 원인일까? 종교가 무지의 원인에 가까울까 무지가 종교의 원인에 가까울까? 종교가 없는 세상을, 도킨스나 존 레논은 매우 아름답게 상상을 하지만, 나로서는 쉽사리 상상이 가지 않는다. 종교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이 몇천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독립할 수 있었을까? 이스라엘과 중동, 미국의 반목이 없었을까? 걸프전, 이라크 전쟁, 9.11 테러,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없었을까? 전쟁들에서 종교는 단지 구실에 불과하진 않았을까? 구실이 없었다면 일어나기도 어려웠을까? 종교를 대신할 다른 무언가가 그자리를 차지하진 않았을까? 나는 이런 질문들에 쉽게 답하기가 어렵다.

종교에 대한 그의 증오는 특히 아래의 부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널리 알려진 아일랜드 가톨릭 사제들의 성적 학대 사건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나는 성적 학대가 끔찍한 것은 분명하나 아이를 가톨릭 세계에서 키움으로써 빚어지는 장기간의 심리적 피해에 비하면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즉석에서 한 말이었는데, 그곳에 모인 아일랜드 청중으로부터 열광적인 박수가 터져 나오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물론 청중은 더블린의 지식인들이 대부분으로 그 나라 국민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 어쩌면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더하여 그는 종교와 관련된 일체의 문화 상대주의조차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각 민족 특유의 별스러운 종교 풍습들을 찬미하고 그들의 잔혹한 행위들을 정당화하는 경향은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고통과 잔혹함을 참지 못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문화를 자기 문화에 못지 않게 존중하라는 가르침을 받은 포스트모더니스트이자 상대론자인 우리 자유주의자들의 마음속에 갈등을 빚어낸다.

사실 종교가 사회/문화와 구분되지 않는 많은 나라들은 주로 이슬람/힌두교/원시종교 등 저개발 사회이기 때문에 그의 이런 태도 역시 논쟁적이다. 까놓고 말하자면, 미개한 놈들을 왜 미개하다고 하지 못하고 다르다고 하는게냐! 라는 호통이기 때문에.

아무튼 도킨스는 그런 생각이고, 내 결론을 내려보자면, 나는 종교가 없다고 세상과 삶이 더 아름다워지리라고 쉽사리 생각이 들진 않는다. 종교의 가면을 쓰고 행해지는 온갖 패악들에 대해서는 나 또한 굉장히 분노하지만, 그것은 인간 본성의 포장일 뿐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다.

그리고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종교는 어떠했나 보아도 나에게 종교는 그렇게 폭력적이지도, 억압적이지도 않았다. 도킨스는 어린 시절에 비신자 친구들이 지옥에 간다는 얘기를 듣고 밤에 잠도 못잔 여성의 사례를 종교의 엄청난 폭력인 듯 얘기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 밤에 잠도 못자도록 두렵던 건 죽음(나보다도 부모님의 죽음)이었다. 천국은 어린 나에겐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어릴때 크리스마스에 성가대에서 합창하고, 유치원에서 연극했던 기억은 유년의 추억을 풍부하게 해주는 문화이기도 하였다. 크리스마스가 없는 12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하고 싶다.
두분은 원래 종교가 없으셨지만, 일찍 돌아가셔서 내 기억에 없는 큰고모는 천주교 신자셨다. 불의의 사고로 아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큰고모 때문에, 할머니는 천주교에 귀의하셨다. 부모의 마음은 그럴 것이다. 그것을 머리로 믿고 안믿는 것보다, 그저 먼저 간 자식과 같이 되고 싶다는 믿음.

고 박완서씨도 천주교에 귀의했지만 돌아가시기 전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 세상이) 아무것도 없는 허무라해도 내 남편이나 내 엄마, 아들이 가 있는 데라면 나도 그 허무속에 쑥 빨려들어간다고 생각해도 굉장히 평화를 느낍니다."

그리고 아주 최근에야 아버지께 들은 얘기, 오래 편찮으셨던 할머니보다 급작스레 병으로 먼저 돌아가셨던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달리 평생을 무교로 사셨던 할아버지께서 마지막을 직감하셨는지, 병원에 입원하시고 돌아가시기 며칠 전쯤 아버지께 '나도 세례를 받을까?'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퇴원하시고 생각해보자고 하셨다지만, 할아버지는 끝내 퇴원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오래간만에 기도를 하였다.
할아버지께선 세례를 받으신 것과 다름 없다고, 그곳이 어디든 꼭 함께 계시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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