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nodd가 추천했던가 암튼 누군가의 추천으로 습지생태보고서를 봤었는데 참 재미있게 봤었다.
그러다 얼마전에 또 어딘가에서 같은 최규석 작가의 대한민국원주민 추천의 글을 보고서는 회사에 있길래 냅다 빌려 봤다.
오홋~ 재밌다.
그리고 그림도 좋다.
본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한 습지생태보고서도 다시 보았다.
최규석은 참 흔치않은 작가임에 분명하다.
나이는 나보다 한두살 어린 듯 한데, 그의 경험은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서나 들을 법한 내용에 가깝다.
가난과 궁상이 이제는 작가로서의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물론 그런 경험만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될 순 없다.
하지만 그가 그려온 작품세계는 그가 자란 환경과는 결코 뗄 수 없다.
대한민국원주민은 습지생태보고서처럼 웃음으로 쉽사리 마무리하는 것도 없어서 약간 불편하기도 하다.
자전적인 만화, 별로 본 기억이 없는데, 사실적인 묘사의 그림까지 함께 자신의 가족들을 묘사하니 더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그 불편함은 아래와 같은 작가의 직접적인 글에서 절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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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없지만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 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란 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아버지는 화려하거나 부유하지 않아도 가끔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나름 예술가요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섞여 있어
그 아이는 그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라 놀림받지도 않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제 부모나 집을 들킬까봐 숨죽일 일도 없을 것이고
부모는 학교 선생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것이며
어쩌면 그 교사는 제 아비의 만화를 인상 깊게 본 기억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간혹 아버지를 선생님 혹은 작가님 드물게는 화백님이라 부르는 번듯하게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들 것이고
이런저런 행사에 엄마아빠 손을 잡고 참가하기도 하리라.
집에는 책도 있고 차도 있고 저만을 위한 방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고함을 치지도 술에 절어 살지도 않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서
아이는 아버지의 귀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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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때문에 내가 그의 만화를 즐기는 것이 불편한 점도 있다. 자꾸 뭔가 변명을 해야 할 것만 같은. 하지만 그보다도 그가 겪고 있는, 겪어야 할 자기분열적 상황이 참으로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왠만한 중산층보다 돈을 더 잘 벌 수 있을 것이나, 가난을 벗어나 안정적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 만큼만의 상업적 작품 활동을 한다고 했다.
어디선가 그는 소유해본 적이 없어서 욕망하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자전적 작품속 그의 모습들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 결국 그는 성공할수록 끊임없이 자신을 회의해야 하고, 남을 비웃는 만큼 자신을 비웃어야 하고, 더욱 두렵게도 자신의 아이에게까지 괴리감을 느껴야 한다.
습지생태보고서의 한 에피소드에서도 나왔지만, 이상하게 고생 더 해본 놈이 목소리 클 권리라도 가진 것 같기에, 내가 이 작가에 대해 말하는 것도 참 뭐라 말하기 어려운 요상한 느낌이다. 내 친구나 후배도 아닌데 말이지..
아무튼 이 작가 자의식 짱이다.
그덕에 이런 재미있는 만화도 보지만.
특히 멀끔히 잘생긴 것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한 듯.
두 책 모두에서 본인 캐릭터만 잘생겼다.
사진도 무심한듯 엄청 신경써서 찍고.
게다가 대한민국원주민에 나오는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은 너무너무 귀엽게 그려놨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오바가 좀 심해서 그냥 그랬지만, 이후의 이 2권은 강추다.
기회가 되는대로 더 최근작들도 찾아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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