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entiments/reading

The Age of Aging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

by edino 2011. 8. 8.
아마도 서른 조금 전부터, 세상이 나와 같이 늙어간다고 느꼈었다.
학교를 떠나 사회에 나올때, 이미 그때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은 우리와는 달랐었다.
아주 흔하디 흔한 얘기. 물론 그게 다는 아니었다.

우리는 앞선 세대만큼 청년기에 사회에 짓눌리지 않았고, 우리 앞선 세대가 사회에 진출할 때만큼 기회가 풍족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장 평탄했던 유년기/청소년기/청년기를 보낼 수 있던, 어쩌먼 처음이자 마지막 세대인지도 모른다. 우리 다음의 아이들은 이미 숫자로도 우리보다 적었고, 자신들 앞의 험난한 미래를 예감이라도 한 듯 의사, 변호사, 공무원이 지상목표였다.

내가 세상이 나와 같이 늙어간다고 말했을 때, 그건 확신할 수 있는 생각이라기보다는 느낌이고 비유였다.
온 천체가 내 주위를 돈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그런 느낌이 실제의 현상에 기인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꽤 오래 지나서였다.
이는 꽤나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개개인이 늙어가는 모습은 주변에서 수도 없이 보지만, 사회가 늙어간다는 것은 적어도 현세대의 인류에겐 그다지 낯익은 풍경이 아니었으니까.


이런 관심에 의해 회사에서 빌려서 읽다가, 대여 기간을 넘기고도 다 못읽어 결국 구입한 책이다.
많은 매체들이 고령화에 대해 얘기하지만, 반드시 오고야 말 미래임에도, 자신의 자식들만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겪어야 할 그리 멀지 않은 미래임에도,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낙관주의로 크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30년 전에도 30년이었던 석유의 가채연수가 지금은 오히려 늘었듯이, 어떻게든 잘 될거라고 볼 수 있을까? 자원의 가채연수는 기술이 늘렸지만, 사회는 기술보다 우리가 훨씬 통제하기 어려운 시스템 아니던가. 더군다나 자본주의와 선거민주주의라면.

영미계 학자가 쓴 책이라 한국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지만, 언급되는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한국은 매우 놀라운 수치를 보여준다. 가장 낮은 수준의 출산율, 가장 낮은 수준의 연금의 소득 대체율, 가장 압도적으로 빨리 청장년층이 줄어들 나라, 2050년 가장 압도적인 부양비가 예상되는 나라.

다들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고령화 문제가 매우 심각하긴 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만만치는 않다. 특히 사망률 증가와 기대 수명 단축으로 이미 인구 감소가 현실화된 러시아나, 고령화로 노동인구 감소가 시작된 일본, 생산 가능 인구 정점이 코앞인 중국 등도 우리보다 좋다고 할 상황만은 아니다. 그나마 미국은 이민 등으로 인구 측면에서는 조금 여유가 있지만, 최근의 경제 상황을 보건데 미국의 밝은 앞날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88만원 세대'와 같은 이야기는 이미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선진국의 많은 젊은이들도 높아진 등록금과, 높아진 집값에 사회 생활 전부터 빚에 허덕이는 것이 우리네와 똑같다. 너무나 비슷한 얘기들이 책에 나와 놀랄 정도. 이번 런던 시위/폭동도 이런 젊은이들의 암울한 상황이 배경으로 얘기가 되고 있듯이.

향후 수십년간 인구구조가 경제에 이득이 되는 구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는 인도와 중동,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이다. 하지만 이들 나라들이 착실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갖춰져야 할 선결 조건들이 매우 많다. 이들 나라들이 착실한 성장을 한다면 자본의 세계화로 인해 고령화 사회들도 간접적인 도움을 받겠지만, 이미 포화라고 할만한 지구의 감당 능력은 어찌할 수 있을까. 멜서스 이래로, 인구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다 이렇게 암울한 전망 밖에 나오지 않는걸까.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에조차도.

이 책에서는 고령화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회 현상과, 그 부작용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 어떤 주장도 강하게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될 수도, 저렇게 될 수도 있으며, 이런 저런 방법들이 있지만 그것들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식이다. 예를 들어 이민은 고령화에 대한 답이 되기는 쉽지 않고, 여러가지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런던 시위/폭동 참여자의 상당수가 이민자의 2세인 것도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이민의 여러 문제점들이 표출된 예시이다.

기업들의 수익은 정체되고, 자산가치는 폭락하고, 젊은이들은 높은 세금과 연금과 의료비를 부담하고, 노년층은 줄어든 연금과 대비 못한 길어진 수명에 쪼들린 삶을 이어가고. 이 모든 것이 예상되지만, 꼭 그렇게 안될 수도 있다. 어쩌면 자본주의는 고령화한 인구구조에서는 불가능한 체제 아닐까? 지금까지처럼 또 어떻게든 살아남는 유연함을 보여줄 것인가?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될 것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관심은 사회에 대한 걱정이라기보단 개인으로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은 사람이고, 더군다나 사회가 개인에게 아무런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이런 사회에서라면 더더욱 쉽게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답이 주어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걱정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라는 사실이 좀 위안이 될까? 의사들이 읽으면 그래도 향후 몇십년간 먹고 사는데 지장 없겠거니 안심이 되려나.

그래도 알고 맞는 매가 낫지 않겠는가.
엉덩이를 회초리 속도에 맞춰 빼면서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테니.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