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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watching

Maradona by Kusturica, 아내가 결혼했다, Vicky Christina Barcelona

by edino 2009. 2. 20.

스포일러 함유!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이후로 한동안 소식을 듣기 어려웠던 에밀 쿠스트리차가 그동안 놀기만 한 건 아니었는지,
우연히 Maradona by Kustrica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제목 그대로, 쿠스트리차가 찍은 마라도나에 관한 다큐다.

쿠스트리차가 극영화에서 만한 재능을 다큐에서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마라도나에 관해서 잘 모르고 있던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았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접하는 마라도나에 대한 가십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던 것 일색이었다. 이 다큐를
보면 그의 다른 모습들도 볼 수 있고, 왜 외신들이 그의 부정적인 모습을 많이 비쳤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열두살 즈음의 일이지만, 마라도나가 두꺼운 가슴으로 볼을 트래핑하고 작은 키로 멀대같은 수비수들을 농락하던
장면들은 매우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마라도나가 8강에서 영국을 꺾은 86년 멕시코 월드컵은
아르헨티나에게는 전설 정도가 아니라 신화가 될만한 사정이 있었다. 바로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에게 무참히 패한
직후에 맞붙은 경기였던 것. 이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신의 손'을 사용한 첫번째 골과, 세기의 골이라 부를만한 두번째
골로 영국을 꺾고, 기어이 아르헨티나에 우승컵을 안겼다. 아르헨티나에 신이 하나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요즘의 그는 문제의 골을 신의 손이 넣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국인의 지갑을 훔친 기분이었다고 통쾌해한다.
심지어는 "그라운드에서 불멸의 왼손을 휘둘렀고~" 라고 노래도 부른다.

http://www.youtube.com/watch?v=3u1vRR1iWS8

다큐의 한 장면이자 그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앞부분에는 쿠스트리차가 마라도나의 부인 쿨라우디아에게 어떻게 마라도나가 (마약에서 빠져나와)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냐고 묻자, 클라우디아가 '아무도 나에게 내가 그 역경을 헤쳐냈는지 묻지 않는다'라고 한방 먹인 얘기도 나온다.

한편, 마라도나가 단지 아르헨티나의 신인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2005년, 그가 뛰었던 나폴리를 방문했을 때 그가 묶는 호텔 앞에 모여든 신도들의 모습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쿵쿵대며 응원가를 한 목소리로 불러대는지, 무시무시할 정도다.

'서구'가 이 축구신을 곱게 보지 않을 이유는 다음 사진들 몇장이면 설명이 될 듯하다.


그의 몸에는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모습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차베스와 다정한 포즈를 취하며 "아르헨티나의 존엄성으로 부시를 물리치자" 라고 말하고 있다.
(잠깐 나오지만 차베스의 대중연설 능력은 정말 대단한 듯 싶다.)
위 장면의 배경 설명은 아래에 좀 자세히 나와 있다.

http://news.pwc.or.kr/news/view.php?board=news&id=2863&page=4&category2=25

영화 '언더그라운드'를 둘러싸고 몇 차례 '서구'와 싸움을 벌인 감독의 전력 때문인지, 이 다큐에서 마라도나의 정치적인 모습이 많이 강조된 느낌도 나지만, 어쨌든 흥미로운 사실들이었다.


위 장면에서 이 남자들 앞에서는 두 여자가 스트립 댄스를 벌이고 있다.
이때 TV에서 마라도나의 골 모음 영상이 나오자 쿠스트리차의 고개는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한다.
옆에 앉은 이 클럽 주인은 이것 때문에 댄서들이 불만이라고, 다들 자기들에게 관심을 안준다고 투덜댄다나.





여기서 자연스럽게 아내가 결혼했다로 넘어간다.
덥치려다 말고 지단의 어시스트를 받은 까를로스가 골 넣는 장면에 정신이 팔려버린 두 사람.
아, 축구의 힘이란.

아무튼 이 영화는 사실 좀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뭐 술마시고 봐서 그런지 매우 유쾌했다.
손예진의 직업이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일줄이야.
이 설정에서 이미 현실감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면서 순수 환타지로서 즐길 수 있었던 걸지도. ㅋㅋ

기대한 것 중에 하나는 손예진의 애교연기였는데, 나쁘진 않아도 큰 기대에는 못 미쳤다.
yeon의 애교도 이 정도는 된다. ㅎㅎ
사실 덜 닭살이긴 하지만 받는 느낌의 강도는 그렇단 거다.


오히려 김주혁의 애교가 더 돋보인 느낌?
김주혁은 홍반장부터 관심있게 보기 시작했는데(심지어는 이 영화에서 엄정화도 좋아졌다), 이 역할에서 전체적으로 썩 잘한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뭐 이런 역할을 누가 잘 할 수 있겠나 싶기도. ㅎㅎ

그래도 최대한 개연성 있게 그려간다.
저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판타지를 인정까지 받으면서 실현하려는 무모한 여성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내꺼'라는 말에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면서 나는야 자유부인, 결혼은 못하겠다는 여성들은 제법 봐온 것도 같고.
연애의 무덤으로 이끌기 위해 결혼하면 바뀌겠지 하고 일단 결혼하는 남자들도 꽤 있고.
김주혁보다 더 이해 잘 안가는 캐릭터인 상대 남자도 있지만, 어찌 보면 세컨드로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고 있는 수많은 남녀들을 생각해보면 또 그런대로 있을 법도 하고.

손예진은 사랑이 나뉘는 게 아니라 두개가 되는 거라는데, 제3자로서 그 말은 인정할 수 있지만, 당사자들을 설득시키는 건 보통의 능력으로는 되지 않겠지. 진심으로 설득당하지 않고서야 stable하게 유지되기 힘들 관계인지라... 생물의 가장 강한 본능 중 하나를 억제할 수 있는 설득력이라... 축구라면 가능할지도? ㅋㅋㅋ

아래는 웃겨서 깔깔댔던 몇 장면들.

누구냐고 누구 누구 누구 누구

아무리 "안 살면 언 년놈들 좋으라고?" 모드라지만, 그래도 이 상황에 그런 애교가 나오나? -_-;


이 넉살은 어찌하면 좋을꼬?


너 가라 집에 으유 씨


그러고보니 또 얼마전에 본 Vicky Christina Barcelona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손예진이 광팬인 바르샤(FC 바르셀로나) 때문에도 넘어가려면 넘어가겠지만, 영화를 봤다면 바로 알 것이다.
뭐 약간 다른 버젼의 3인관계 얘기인데, 이쪽이 좀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싸이코 화가 커플 정도는 되야.... ㅎㅎ

이 장면도 대박 웃겼다. 우디 앨런 진짜 건재하다.
남1여2의 경우에는 친자 확인 문제도 없고 좀 더 평화로울 것 같지만 결국 끝은 요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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