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entiments/watching

Inland Empire, Eastern Promises

by edino 2009. 2. 20.

스포일러는 별로 없다고 생각됨.

과거 본인이 어둠의 자식(?)이던 시절, 탐닉하던 많은 어둠의 감독들이 있었으니 그중 대표적인 자들이
데이빗 린치, 데이빗 크로넨버그, 샘 레이미, 피터 잭슨 등이다.
모두들 제법 재능있는 시작들을 보여주었으나, 그들의 감성이나 위치나 모두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세월이 흐르니 그들은 이제 주류라 할만한 위치에서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Bad Taste나 Dead Alive로 영원한 B급 호러의 대부가 될 것만 같았던 피터 잭슨이나 Evil Dead의 샘 레이미는
이제 가장 잘나가는 블록버스터 감독들이고, 데이빗 린치와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여전한 취향을 과시하면서도
이제는 영화제 단골의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내가 세상이 나와 같은 나이를 먹는다고 한 것은 다 근거가 있는 소리란 얘기다.
한편으론 역시 미국의 힘이란 이런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 기반이라는 의견을 강하게 지지하는 근거들이 아닐까.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그시절 여러 비디오 가게들을 뒤져가며 열외인간, 비디오드롬, 스캐너스, 더 플라이, 데드 존,
데드 링거 등을 찾아보던 생각이 난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기 색깔이 강하긴 했어도 호러의 쟝르에 머물렀으나, 90년대
들어서 Naked Lunch와 Crash 등을 통해 쟝르에서는 점차 벗어나는 한편 여전한 색깔로 주목을 받으며 작가 대접을 받는다.
(영화건 소설이건 쟝르에 대한 푸대접은 기묘한 구석이 있다.)

Eastern Promises는 작년 MEFF 개막작이었으나 그때는 못보고 나중에 보게 되었는데, 흠... 이게 유럽영화였던가??
찾아보니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국적이 캐나다인데, 이 영화의 참여 자본과 배우, 배경 등에 유럽이 섞이기는 했지만
유렵엉화제 개막작으로는 딱히 어울리진 않는다.


(비고 모텐슨은 '폭력의 역사' 때와 비교해도 갑자기 늙어 보인다.)

여러 모로 '폭력의 역사'와 비교되지만, 굳이 엮어서 할 얘기가 많지는 않다.
다만 둘다 엮어볼 때 그의 영상 스타일은 realistic 해지면서, 영화들이 점점 친절해지는 느낌도 있다.
realistic한 폭력의 섬뜩함은 더해지지만.


그에 반해 또다른 데이빗씨, 데이빗 린치는 Mulholland Drive 까지는 점점 친절해지는 듯 싶더니, Inland Empire에
와서는 거의 부조리극+의식의 흐름을 영상화한 듯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린치의 경우에는 데뷔작이라 할만한 Eraserhead로 단번에 컬트의 대명사가 되더니 Elephant Man을 거치며 바로
주류의 한복판에 섰다. 다른 어둠의 감독들 중에서도 가장 빨리 '초특급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연출한 것.
바로 84년에 개봉된 5천만불짜리 '블록버스터급' 영화 Dune. 기억하기로는 그때까지 최고의 제작비를 기록한 작품일
것이다. 바로 전 해에 개봉된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이 시리즈 최고로 3250만불의 제작비였다고 하니..
더 놀라운 건 문제적 저예산 영화 두편의 경험이 전부인 이 감독에게 제다이의 귀환 감독 제의도 먼저 있었다고 한다.
만일 그때 린치가 스타워즈의 감독을 맡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스타워즈가 6편까지 만들어지지 못했거나, 혹은
잘 세팅된 시스템 안에서 흥행작을 만들어낸 후 흥행 영화 감독의 길을 걸었거나, 혹은 Dune이 다른 누군가의 연출로
예정대로 3부작까지 가는 성공 시리즈물이 되었거나 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어렵게 비디오 가게들을 뒤져서 찾아내 Dune을 보았으나 어찌나 퀄리티가 엉망이던지, 당시에도 '도대체
5천만불을 어디다 쓴거지?' 라고 어이없어하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Dune은 사연도 많고 실로 괴작이라 할만하지만,
린치는 그렇게 처참하게 말아먹고도 매장당하진 않았다. (Dune의 자세한 사연들은 아래 링크들 참조.)

http://pennyway.net/877
http://pennyway.net/878

린치의 작품을 그다지 꼭꼭 챙겨본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다작인 편이 아니라 그런지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그의 장편영화는 모두 보았다. 내가 최초로 구입한 CD 2장 중의 한장이 Twin Peaks의 OST일 정도로 오래 봐왔지만
Inland Empire 만큼 당혹스러운 작품도 처음인 것 같다.


영화의 시작은 꽤나 혼란스러운데, 위의 장면은 린치의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기이한 장면 중 하나로 꼽고 싶다.
상당히 으스스한 도입부.

그러다가 영화가 약간의 줄거리를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속 현실과 영화속 영화가 뒤섞이고, 뒤이어 그것에 더해 망상과 악몽이 뒤섞이고 시간마저 뒤틀린다.
그때부터는 무엇이 영화속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어진다.
더 지독한 건 구분할 수 없을 뿐더러 그 각각조차 이해하기 힘들어진다는 것.

179분 동안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건 너무 친절해서 뻔해 보일 정도일지도 모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