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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watching

Limitless, Inside Job

by edino 2011. 6. 9.
어렸을 적 아동 혹은 청소년 대상의 흥미 위주 과학책들 중에는 적어도 지금에는 정확하지 않은 사실로 밝혀진 것들이 불변의 진리인양 적혀있던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뇌세포는 태어나서부터 죽기만 할 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은 뇌의 10%밖에 활용을 못한다는 등의 얘기.

영화 Limitless는 이런 가정을 깔고, 나머지 뇌의 기능들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약이 발명되었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설정상 두뇌의 기능이 100% 발휘되면 순식간에 어릴때 봤던 쿵푸영화속 동작까지 학습이 된다는 식인데, 이 약으로 인해 좋아지는 두뇌는 좀 이상하다. 주식시장과 관련된 매우 복잡한(척하는) 변수들과 인간들의 심리까지 다 이해하는 천재가 되었는데, 이상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판단은 일반인보다도 떨어진다. 게다가 그 좋아진 머리로 제일 먼저 한 일이 이 약의 부작용을 없애는 일이 아닌 이유는 뭘까?

결국은 재미를 위해서 설정의 정교함을 많이 희생한 영화다. 나름 흥미롭게 볼만은 하지만 과학적이지도, 진지하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 더 어울린다. 쓰고나니 까는 얘기 같지만, 꽤 재미있는 영화다.


좀 재미있었던 건 이 똑똑해진 양반은 원래 꿈이 작가였는데, 머리가 좋아진 뒤로는 달랑 책 한권 휙 써내고는 그 머리로 돈버는 일에만 열중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정치를 하려 한다. 잠깐 생각해보니 나도 그런 약이 있으면 비슷할 듯 하다. 일단 평생 먹고 살 만큼 후딱 벌어놓고, 좋아진 머리로 놀면서 여행에 필요한 외국어나 배울까 잠깐 생각했다가, 그래도 할 수 있다면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그래도 정치가 제일 힘이 세겠지.

근데, 똑똑한 머리가 매우 필요한 것이 금융이라는 설정이 좀 웃겼다고나 할까.
물론 특히 미국이라면 똑똑한 애들이 몰리는 곳이 월스트리트겠지만, 영화에서처럼 회사 2개에 대한 정보만 보고 둘의 M&A 의도를 간파해내는 둥 어쩌고 하는 설정을 보면 작가가 금융쪽은 잘 모르는게 아닌가 싶단 거지. 물론 나도 금융 전문가는 아니지만, 거 왜 영화들에서 천재 해커랍시고 나와서 해킹하는 장면들 보면서 느끼는 오글거림 비슷한게 느껴진단 말이지. 얼마전에 본 영화 Social Network에서만 봐도 주커버그에 대한 묘사는 그 수준에서 별로 더 나가지 못했다. (심지어 비행기에서 더빙판으로 봐서 훨씬 더 오글거렸다. ㅋㅋ)


이번엔 2007~2008년의 금융위기 당시의 월스트리트를 다룬 다큐인 Inside Job.
하도 많이 얘기들을 해서 거의 들어본 얘기들이지만 사태가 아주 명료하게 정리되지는 않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꽤 친절한 핵심요약을 겸하고 있다. 다만 차분히 현상을 설명한다기 보다는 Michael Moore의 다큐처럼 뚜렷한 목적의식과 '적'을 놓고 만들어진 다큐라, 사태를 단순화시키는 감도 없잖이 있다.

그리고 상당한 거물급 interviewee들이 놀라운 다큐다. 이 영화의 '주적'들은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해서 괜히 멋모르고 인터뷰에 응한 '깃털'들(주로 교수 등)이 좀 불쌍해 보이기도 하지만, 뭐 그 주적들에 빌붙어먹은 '깃털'들의 재산도 어마어마하다.

사실은 상당한 악당이면서도 갈수록 행적이 기묘해서 왠지 밉지만은 않은 George Soros도 인터뷰를 했는데, 단지 "CDS(Credit Default Swap)가 뭔지 난 몰라요. 좀 구식이라서"라고만 말을 해도 포스가 남다르다. ㅋㅋ 그래놓고는 Reagan 시절부터 지속되온 금융 규제 완화에 대한 비유 또한 참으로 적절하다. "커다란 유조선은 탱크 안에 실은 기름이 요동쳐서 배가 침몰하는 것을 막기 위해 탱크들 사이에 칸막이를 해넣는다. 금융 규제 완화는 한마디로 이 칸막이들을 없앤 것이다."

Alan Greenspan이나 Ben Bernanke가 이러한 과정들에서 한 역할들을 보니, 그들에 대한 인상도 훨씬 안좋게 변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 다큐에 최고 악당은 Goldman Sachs다. 전직 고급매춘 알선책은 인터뷰에서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 고객의 40~50%가 월스트리트 고객이고, 모건 스탠리는 좀 적고, 골드만 삭스는 아주 아주 많다고. 그들은 그 비용 또한 회사 비용으로 처리한다고. 아 정말이지, 우리가 동경하는(?) 선진국 시스템이란 건 다 허상인 듯. 일본 원전 사태를 봐도, 금융위기때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이라는 작자들이 한 짓을 봐도 그렇고.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오는 엔론사태도 무려 2000년대에 일어난 일이다.

아무튼 최고 악당답게 나쁘게 묘사하는 것은 좋은데, 사실은 그들이 모두 다 알고 있었으면서 그걸 이용해서 자기들은 돈을 벌기만 했다는 식으로 몰고가는 것은 약간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리먼 브라더스는 전혀 몰랐고, 골드만 삭스는 모두 알고 있어서 운명이 갈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적어도 위기가 표면화되기 직전에 그들이 자기만 살겠다고 직업윤리를 져버린 혐의는 지우기 어렵다. 게다가 자신들이 파산지경까지 가도록 일조했으면서도 미국 정부돈을 들이 퍼부은 AIG에서도 한푼 손해 안보고 고스란히 자기들 찾을 건 찾아먹고, 그걸로 또 신나게 성과급 잔치 하고. 그리 해준 공로로 미국 정부 경제수장들은 퇴임후 또 엄청난 연봉으로 금융기관에 취직할 것이고. 거품이 터져도, 투자자들이 망해도, 납세자들이 낸 세금이 엉뚱한 데로 줄줄 새어나가는 데도, 그들은 절대로 손해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남의 돈을 굴리는 것이지.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이런건 우리나라도 IMF때 겪었다. 미국을 상대로도 이러는 놈들이 하물며 우리나라 같은 상대야 얼마나 좋은 먹잇감이었겠나.

결국 미국은 변한 것이 없다.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고, 아무도 자기재산을 내놓아 배상하지 않았으며, 오바마 정권이 들어섰어도 경제의 수뇌들은 이전의 탈규제의 주역들 그대로이다. 2차 양적완화가 마무리 되어 간다는데, 여전히 퍼부을 돈은 찍어내면 그만인 건가?

이 다큐는 적어도 확실한 교훈은 하나 심어준다.
번지르르한 그 xx들 절대로 믿지 말자. 내 돈을 불려주는 일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은 놈들이고, 자기 이익 챙기는 데에는 생각보다 훨씬 사악한 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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