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선배가 자기 사서 다 읽었다고 보라고 안겨서 오랫만에 읽게 된 소설이다.
이 글을 보더라도 책을 읽는데 크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겠지만, 책의 내용이 조금 드러나는 것을 감안하길.
우선 표지에 나온 글을 옮겨보자.
누구나 인생의 비상을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가족이라는 덫에 더 깊이 파묻고 산다. 가볍게 여행하기를 꿈꾸면서도, 무거운 짐을 지고 한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만큼 많은 걸 축적하고 산다. 다른 사람 탓이 아니다. 순전히 자기 자신 탓이다. 누구나 탈출을 바라지만 의무를 져버리지 못한다.
흐음, 주인공이 다 배째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얘기일까? 이거, 위험한 책 아니야?
라고 호기심에 책을 집어 들었으나, 내용은 전혀 엉뚱하게 흘러간다.
책 표지 아랫부분에 씌여있는 '진정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던 한 남자 이야기!'라기엔 좀.... -_-;;
사실 이 남자 주인공 벤은 나랑 비슷한 면도 꽤 있다.
중산층의 흔해 빠진 취미들이겠으나, 벤도 "미션753 스피커, 아캄 델타 CD트랜스포트, 블랙박스 DAC, 사이러스3 앰프"로 괜찮은 오디오 시스템을 구축해 두었고, 자신의 잃어버린 사진가의 꿈을 달래기 위해 "오리지널 스피드그래픽, 라이카 M9, 라이카 플렉스, 하셀블러드 500CM" 등의 카메라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 와인을 좋아하는 것 또한 흔한 취미겠으나, 이렇게 죄다 관심사가 겹치는 사람 찾기는 또 그리 쉽지 않다. 내 취미가 이 세가지 뿐은 아니나, 이 세가지를 모두 좋아하는 사람도 주변에 찾아보려면 없다. 이런 주인공의 얘기가 초장부터 나오니 나는 일단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 아저씨는 연봉 30만달러가 넘는 월가의 변호사이기 때문에 취미에 쏟는 돈도 내 몇배에 달하나, 성격을 보아도 그렇고 내 이웃이었다면 상당히 죽이 잘맞는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ㅎㅎ
내가 전에 포스팅한 적도 있는 와인 Cloudy Bay Sauvignon Blanc도 소설에 매우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아내가 맛있다고 한 와인을 찾으러 들른 와인샵에서 주인이 클라우디 베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에 들어와 있긴 한데 특별주문을 해야 한답니다. 수요가 많고 공급이 딸려 개인에게는 일인당 두 상자까지만 팔 수 있다는군요. 도매상 말로는 세계 최고의 소비뇽 블랑이 될 거라던데요. 미리 계산을 해주시면 특별 주문해 놓겠습니다. 한 병에 $18.99입니다."
여기까지 읽고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은 생각할 것이다. 클라우디 베이가 2만원 조금 넘다니!! 매일 마셔줄테다!!!
그러나 연봉 30만달러가 넘는 우리의 주인공 벤이 이 말을 듣고 하는 생각.
아내가 돈 많은 와인 마니아였나?
우리나라에서 클라우디 베이는 샵에서 보통 5만원대고, 예전에 비쌀땐 7만원대에 마셔본 적도 있는데, 취미에 별로 돈 아끼지 않는 미국의 중상류층이 2만원이 넘는다고 비싸다고 하다니. 쩝쩝. ㅠㅠ
얘네는 유산을 신탁이란 걸로 해서, 평생 연금처럼 어느 정도의 돈이 나오게 하는 방식이 있나 보다.
두번째 주인공(?) 개리도 이런 신탁의 수혜자인데, 그 금액은 1년에 2만7천6백 달러다. 물려받은 번듯한 집이 있고, 원금을 손댈 수는 없지만 평생 매달 260만원 정도의 돈이 나온다? 결혼해서 중산층 가족을 이루고 살기엔 약간 빠듯하지만, 혼자라면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는 금액. 그러니 개리는 자신의 재능과 상관없이, 게다가 큰 절실함도 없이 사진가로 살아가고자 인생을 지속적으로 소비할 수 있었다. 벤의 부인 베스의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망치기에 딱 좋을 만큼 신탁 기금을 받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부럽다. ㅠㅠ
어려움에 처한 벤에게 그녀의 비서가 다음과 같은 위로를 한다.
"정말이지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도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어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아요.... 이런 일에 베테랑인 사람으로 감히 한 가지 말씀드릴게요. 자기 자신을 용서하세요.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는 마음을 품는 순간 모든 일이 더 쉬워져요.
자신을 용서하기로 했다던 SL양도 혹시 그녀의 충고를 들은 것인가? ㅎㅎ
나는 예전에 꿈속에서 사람을 죽여본 적이 두번쯤 있다. 다행히(?) 아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하필이면 그 꿈들은 지독하게 길고 또 지독하게 현실적이어서, 꿈을 깨고 나서도 기분이 아주 더러웠던 기분이 생생하다. 그런데 그건 꿈을 깨고 나서 기분이고, 꿈속에선 죄책감 이전에 나를 사로잡은 것은 생존본능이었다. 살인을 저지를 때에도 생존본능으로 저지른 것이었고, 그것을 은폐하고자 하는 것도 생존본능이었다. 꿈은 참 쓸데 없이 길어서 그 이후 증거인멸 및 도주까지 이어졌는데, 정말이지 잡힐 것에 대한 두려움이 주는 스트레스는 그 짧은 순간에도 상상을 초월했다. 예전엔 공소시효라는 제도가 이해가 안됐는데, 그 꿈 이후로는 그동안 도주만으로도 충분한 형벌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댈까. (물론 그런걸 못느낄 싸이코 패스에겐 예외다.)
그랬던 꿈의 기억을 떠올리니 주인공 벤의 이야기에 감정이입이 잘 된다.
다음과 같은 독백도.
문명과 야만 사이의 가느다란 선을 넘어가면 혹시 그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그 선을 정말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걸, 10억분의 1초에도 넘어갈 수 있다는 걸, 그저 손만 내밀면 그만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선을 겁낸다.
그 선을 넘은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의문이 떠오른다. 끔찍한 발각의 순간을 기다리며 평생을 낭비해야 할까?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제는 더 이상 어둠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어둠에 다다랐으니까. 끔찍한 해방이랄까.
근데 그러고보니 최근에 꾸었던 두어번의 꿈들이 모두 깨고 나서 꿈이라서 한참 안도했던, 그럼에도 기분 더러웠던 꿈들이네. 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_-;;
"...하지만 내가 그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 중에서 아이가 없는 사람은 그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어. 물론 '정말 안됐다' 같은 말은 했지. 하지만 아이가 있는 사람은 하나같이 몹시 슬퍼하며 눈물을 펑펑 쏟았지..."
벤은 다시는 자신의 아이들을 만나러 가선 안되었다.
모든 사실이 드러날 것에 대한 압박감과, 아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먹먹함과 함께하는 삶은, 아무리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쉬운 선택은 아닐 것이다.
중간중간 조금 억지스러운 설정이 거슬리긴 해도, 아무튼 몰입도는 매우 높은 소설이었다.
도발적인 책 표지의 이야기보다는 벤의 좋은 친구 빌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결국 이 책이 하고자 하는 얘기에 더 가까울지 모르겠다.
"내 말 잘 들어 친구. 인생은 지금 이대로가 전부야. 자네가 현재의 처지를 싫어하면, 결국 모든 걸 잃게 돼. 내가 장담하는데 자네가 지금 가진 걸 모두 잃게 된다면 아마도 필사적으로 되찾고 싶을 거야. 세상 일이란 게 늘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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