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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reading

파리를 떠난 마카롱

by edino 2010. 11. 8.

원래는 가볍게 트렌드를 다룬 책이려니 하고 집었는데, 그렇게 가벼운 접근은 아니다.

책 표지나 카피, 목차도 트렌드에 관한 가벼운 얘기인 척 하고 있지만, 참고 문헌에 나오는 이름들만 나열해봐도 그렇게 트렌디한 책은 아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 페르낭 브로델, 조지프 슘페터, 대니얼 벨, 페르디낭 드 소쉬르, 장 보드리야르, 막스 베버, 소스타인 베블런, 피에르 부르디외, 롤랑 바르트, 게오르그 짐멜, 르네 지라르 등. 뭐 그나마 최근의 트렌디한 책으로 참고된 건 '링크'나 '티핑 포인트' 정도.

사실은 뭐 트렌드에 대한 얘길 하면서 이렇게 거창한 사람들을 들먹이나 싶었다.
그런데 가만 읽다 보면 어차피 사회과학이라는 게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학문이고,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굳이 '트렌드'라고 부르진 않더라도 그 비슷한 것들이 사실은 꽤 오랜 연구대상들이었다. 대중이라던가, 계급이라던가, 언어/기호학, 경제학까지 '트렌드'라 할만한 것과 상관이 없는 것은 또 별로 없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트렌드'의 양상이나 그에 대한 분석방법도 달라질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다만 이 책은 '트렌드'에 관한 독자적인 관점을 크게 펼치기보단, 지금까지 있어왔던 트렌드 분석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는 데 더 많은 페이지들을 할애한다. 그러면서 지금 시점에서 봤을 때 그 담론들(참으로 old-fashioned 느낌이 물씬 나는 단어다)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서 얘기하는 정도.

결국 저자는 결정론에 가까운 그간의 주장들보다는 개인의 주체성과 선택 가능성에 좀더 많은 비중을 두고 트렌드란 것을 바라본다.

집단적 행동을 설명할 때 그것이 외부에 의해 강요되었다는 것보다 더 손쉬운 설명이 있을까? 유행이 주체가 없는 가운데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할 때에도 사람들은 잘 믿지 못한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다 보니 사람들은 단순한 이론이 갖는 매력에 쉽사리 빠져들게 된다.

저자가 보기에 트렌드는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복잡다단한 사회, 집단, 개인들의 상호작용의 산물일 뿐이다. 그것이 트렌드에 대해 저자가 하고자 하는 얘기다. 그래서 꽤나 심심한 책이다. 모든 것을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을지언정, 큰 경향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하는 태도야말로 손쉬운 포기 아닌가 싶다. 내가 보기에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리석은 존재들인지라, 그렇게 복잡한 설명들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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