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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reading

불황의 경제학 (The return of depression economics and the crisis of 2008)

by edino 2010. 5. 20.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에 이어 최근에 읽게 된 크루그먼의 책.
역시 이번에도 빌린 책임에도 정독에 가깝게 읽게 되었다.

2008년의 경제위기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미네르바 사건 등으로 인해 대중의 경제학에 대한 관심들이 상당히 높아졌는데, 나도 그런 부류중의 하나이다. 거기에 더해 작년부터 일도 R&D와는 거리가 먼쪽으로 오게 되어서 작년에는 재무교육도 받았었는데, 자본주의에 대한 어느 정도는 '의도적이었던' 무지가 오히려 위기가 닥치니 적극적인 관심으로 바뀐 경우랄까.

사실은 2008년의 위기 때 나는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주식 시장을 빠져나와 금전적 손실을 피했지만, 솔직히 그건 순전히 운이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이런 저런 것들을 주워 듣긴 했어도 잘 생각해보면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해서 나는 전체적인 조망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거슬러 IMF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정확히 위기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누가 어떤 잘못을 하였는지, 왜 그렇게 파괴적이었는지, IMF의 처방은 올바른 것이었는지 등등.

다행인지 불행인지 위기의 정확한 이유와 올바른 대처방법을 확실히 모르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경제학자들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일어난 사태의 조망은 훨씬 뛰어나지만 말이다.

폴 크루그먼의 글들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오히려 그가 확신을 덜하기 때문인 듯하다.
책의 뒤 표지에는 "공황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황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라고 크게 써놓았지만, 실제 본문에서 크루그먼은 이런 정도의 톤으로 얘기한다.

우리는 아직 공황에 들어와 있지 않으며,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공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황경제학의 범위에는 충분히 들어와 있다... 현재의 위기 규모가 크긴 하지만 세계 경제는 십중팔구(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공황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사실 위기때 조명을 받았던 많은 공황 예견자들이 여전히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누구 말마따나 경제가 정상적일 때에도 초지일관 폭락을 예언하면 언젠가는 그가 귀신같은 예언가로 언론의 조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가 그동안 놓친 50% 상승장은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다고.

이번 위기를 통해 보니, 그리고 또한 노벨상까지 받은 잘나가는 경제학자의 책을 읽어보니 더더욱, 경제에 관해 확신에 찬 예언을 하는 자들, 음모론을 말하는 자들은 별로 믿을 수가 없다.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불안정성을 키우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불안정성은 자본주의의 속성 그 자체이므로... 예언이란 점을 보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고, 음모론은 자본주의의 속성을 부정하는 얘기일 뿐이다.

규제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 우기는 사이비들에게는 한없이 당찬 이 경제학자에게는 그래도 신중하고 조심스런 태도가 남아 있기 때문에 설명의 명쾌함은 떨어지지만, 덜 명쾌한 것이 더 현실적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공황이 우리 할아버지들에게 분명히 가르쳐준 교훈들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기본적 원칙은 분명하다. 금융 메커니즘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일어났을 때 구제의 대상이 되는 무언가는 위기가 없을 때엔 반드시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 이데올로기적인 동질감으로 인해 더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내게는 꽤 유익했던 책이었다. 더불어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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