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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inerary/96 : Europe

Siena

by edino 2009. 8. 13.
나의 첫 배낭여행은 참으로 준비가 부족한 것이었어서, 이틀뒤에 내가 어디에 있을지 예상하기도 쉽지 않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애초에 올때부터 London In - Paris Out 외에는 정해진 것이 없었고, 그래서 가이드북에 의지하여 그날의 숙소, 갈 곳, 다음 기차 시간 등을 보고 다음 행선지를 정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어쩌다보니 북유럽을 돌게 되어 유럽의 남쪽은 펑크가 나버렸다.

빠듯한 일정 와중에도 이태리의 한 도시만큼은 꼭 가보고 싶었으니, 그곳은 Siena였다.
특별히 그 도시에 사전지식이 있던 것도 아닌데, 당연히 가이드북에도 두장 정도로 짧게 넘어가는 곳인데, 로마나 베니스도 마다하고 이태리에서 오로지 그곳에 꽂힌 이유는 아마 브레송의 사진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곳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시간은 참으로 촉박했다.
겨우 만든 이태리에서의 시간은 단 하루.
그것도 전날 오스트리아에서 밤기차로 아침에 떨어져서, 그날 밤 다시 밤기차로 나와 다음날 스위스에서 눈을 뜨는 스케쥴.
정말 그때는 젊었다 싶다.

어쨌뜬 이때 피렌체는 Siena를 가기 위해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잠시 들른 곳이었고, 피렌체의 두오모는 잠깐의 나들이 동안 눈에 띈 희한한 건축물이었을 뿐이다.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가 나오기 훨씬 전이다.)
그렇게 무리해서 찾아간 Siena에서 무얼 보았을까?


특정한 무언가를 보러 찾아간 것이 아니라. 무얼 보았다라고 말할 만한 것이 없다.
사실은 나는 Siena에서 잘못된 곳을 헤매다 그냥 돌아왔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 작은 도시에는 그래도 시에나 대성당이나 궁전, 탑, 광장 등의 훌륭한 볼거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녀와서 안 사실이고, 내가 헤맨 곳은 전혀 엉뚱한 방향이었던 것 같다.
반나절 정도로 촉박한 시간에, 때마침 그날은 돌풍에 비까지 내렸다.
우산은 썼어도 옷은 젖고, 거리는 꼬불꼬불, 군데군데 곳곳에 폐허들.
관광객들은 커녕 바깥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자체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극도로 피곤한 가운데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짜증도 내지 않고 다녔고, 이상하리만치 강렬한 느낌으로 남은 곳이 Siena다.
빗속에서도 별 볼일 없는 곳을 향해 끊임없이 사진기를(그땐 필카) 들이대게 하던 Siena의 매력은 뭐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젠 저 사진처럼 기억도 빛이 바랬지만, 자꾸 돌아보게 만들던 이 골목들, 지금도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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