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만약 기소를 당해 법정에서 상당히 법률적으로 숙련된 검사를 만나서 몇년 동안 재판을 받고 결국 대법원에 가서 무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인생이 절단난다. 판사가 마지막에 무죄를 선고해서 여러분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다. 여러분은 법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형사법에 엄청나게 숙련된 검사와 법정에서 마주쳐야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앙이다. 검찰의 기소라는 게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기소하지 않고, 기소해야 될 사안을 봐주지 않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S_twTRDA74
'윤'이 후보시절 어디서 대학생들과 질의응답 같은 걸 하는 와중에 나온 그의 말인데, 동영상으로 찍어 아직도 올려져 있다. 이걸 본지는 한참 전이지만, 지금 보니 이준석과 같이 친한 척 화기애애한걸 보니 까마득한 옛날같네.
위에 인용한 대목(1시간 28분 부터) 때문에 약간 화제(?)가 되었었는데, 한겨레에 기사로도 올려져 있어 굳이 옮겨적진 않고, 기사에서 따왔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1388.html)
질문은 아주 멀쩡하다.
검찰의 중립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떠한 제도나 정책을 도입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질문.
'윤'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정말 중요하다면서 말문을 열더니 뜬금없이 위의 저 얘길 한다. 그리고 나서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결국 '검찰 인사의 공정성이 확보되는게 중요하다'면서 마친다.
당연히 '윤'이 검찰권의 무서움을 모를리 없고, 그는 검찰을 위해 그 칼을 썼다. 그런데 나는 그가 검찰이 매우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할 일을 할 뿐이고 판결은 법원에서 내리는 거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저런 솔직한 얘기를 했다. 법원 판결은 중요하지 않고, 자신들이 자신들의 판단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절단낼지 결정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봐주는 것 또한 본인들이 결정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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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을 위해 촛불을 들었던 이들은 대부분 검찰 혼자 수사와 기소를 독점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본 것이고, 그 개혁을 추진하는 선출 권력에 저항하여 검찰이 기소권을 남용하는 것 또한 부당하다고 한 것이다. 검찰은 대체로 지난 권력을 향해 칼을 휘둘러왔으나, 지난 정권에선 검찰 권력을 지키고자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있었다. 이제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정치적으로 한 배를 타기로 작심한 것 같다. 아마 다음 정권에서라도 이번 정권의 과오를 수사하는 일은 최소화될 것 같다.
절대로 자신들의 과오에는 향하지 않고, 자신들의 '적'에게는 마구 휘둘러지는 위험한 칼인데, 단지 '공정한 인사가 중요하다'라니. 중립성이 중요하다면서, 그 판단 주체가 한 정당으로 들어가 정치인이 된 자신인데도 공정한 것인가? 질문은 제도와 정책인데, '윤'은 결국 검찰은 지금 자신들 그대로 놔두기만 하면 된다는 말 밖엔 하지 않은 것이다. 저 질문을 했던 학생은 지금 정권과 검찰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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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향하던 간에 저 칼은 일단 지나치게 날카롭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저 날카로운 날을 두고 무딘 뒷면으로만 베는 척을 해서 또 문제이지만.
세상에는 법이 다 미리 해석해두지 않은 수많은 일들이 있고, 책임있는 사람이 무슨 일인가를 할 때에는 규정되지 않은 일을 결정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수사와 기소가 그 자체로 형벌과도 같은 것(=절단,재앙)이라면 선출된 권력이 한 일에 대한 판단은 그것이 명백한 본인의 개인적 이익(혹은 본인 부인의 이익이나 본인 아들의 이익 등)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함부로 검찰이 나설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자체가 정치적인 판단이 개입할 수 밖에 없으니, 검찰의 중립성이 중요하다면 필요한 것은 검찰에 대한 견제와 권한 분산이다.
'김학의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 사건'이 대표적일텐데, 검사가 한 일이 이런 정도로 기소된다고?
검찰의 부실수사, 과잉수사를 이정도 잣대로 스스로 단도리 해왔다면 검찰개혁 이야기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김학의 수사는 이전까지 어느 정도로까지 봐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검사에 대한 수사였다.
검찰은 특히 자신들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조금도 중립적이지 않고, 정치적으로 명백히 기울어진 지금은 특히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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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선거에서 내가 본 것은 '편없는 사람들의 무서움'이었다.
어쩌면 다행히도(?) 우리나라 선거는 '편없는 사람들'이 결정한다.
다만 '편없는 사람들'은 어느 쪽이든 단두대로 끌고 가면 환호하는 것 같다. 편이 없으니 누가 매달아지던 크게 상관도 없고.
나는 편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편없는 사람들의 속편함이 부러워서, 편없는 편에 서보기로 한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원래 나는 어느 쪽의 안티로 편을 정한 거였지.
그럼 더 썩은 쪽을 잘 잡아 넣는 쪽이 우리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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