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hitchat

법-2

by edino 2023. 3. 22.

“여러분이 만약 기소를 당해 법정에서 상당히 법률적으로 숙련된 검사를 만나서 몇년 동안 재판을 받고 결국 대법원에 가서 무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인생이 절단난다. 판사가 마지막에 무죄를 선고해서 여러분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다. 여러분은 법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형사법에 엄청나게 숙련된 검사와 법정에서 마주쳐야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앙이다. 검찰의 기소라는 게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기소하지 않고, 기소해야 될 사안을 봐주지 않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S_twTRDA74 

'윤'이 후보시절 어디서 대학생들과 질의응답 같은 걸 하는 와중에 나온 그의 말인데, 동영상으로 찍어 아직도 올려져 있다. 이걸 본지는 한참 전이지만, 지금 보니 이준석과 같이 친한 척 화기애애한걸 보니 까마득한 옛날같네.

위에 인용한 대목(1시간 28분 부터) 때문에 약간 화제(?)가 되었었는데, 한겨레에 기사로도 올려져 있어 굳이 옮겨적진 않고, 기사에서 따왔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1388.html)

 

질문은 아주 멀쩡하다.

검찰의 중립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떠한 제도나 정책을 도입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질문.

'윤'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정말 중요하다면서 말문을 열더니 뜬금없이 위의 저 얘길 한다. 그리고 나서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결국 '검찰 인사의 공정성이 확보되는게 중요하다'면서 마친다.

 

당연히 '윤'이 검찰권의 무서움을 모를리 없고, 그는 검찰을 위해 그 칼을 썼다. 그런데 나는 그가 검찰이 매우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할 일을 할 뿐이고 판결은 법원에서 내리는 거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저런 솔직한 얘기를 했다. 법원 판결은 중요하지 않고, 자신들이 자신들의 판단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절단낼지 결정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봐주는 것 또한 본인들이 결정하는 것이고.

 

--------------------------

 

검찰개혁을 위해 촛불을 들었던 이들은 대부분 검찰 혼자 수사와 기소를 독점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본 것이고, 그 개혁을 추진하는 선출 권력에 저항하여 검찰이 기소권을 남용하는 것 또한 부당하다고 한 것이다. 검찰은 대체로 지난 권력을 향해 칼을 휘둘러왔으나, 지난 정권에선 검찰 권력을 지키고자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있었다. 이제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정치적으로 한 배를 타기로 작심한 것 같다. 아마 다음 정권에서라도 이번 정권의 과오를 수사하는 일은 최소화될 것 같다.

 

절대로 자신들의 과오에는 향하지 않고, 자신들의 '적'에게는 마구 휘둘러지는 위험한 칼인데, 단지 '공정한 인사가 중요하다'라니. 중립성이 중요하다면서, 그 판단 주체가 한 정당으로 들어가 정치인이 된 자신인데도 공정한 것인가? 질문은 제도와 정책인데, '윤'은 결국 검찰은 지금 자신들 그대로 놔두기만 하면 된다는 말 밖엔 하지 않은 것이다. 저 질문을 했던 학생은 지금 정권과 검찰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

 

누구를 향하던 간에 저 칼은 일단 지나치게 날카롭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저 날카로운 날을 두고 무딘 뒷면으로만 베는 척을 해서 또 문제이지만.

 

세상에는 법이 다 미리 해석해두지 않은 수많은 일들이 있고, 책임있는 사람이 무슨 일인가를 할 때에는 규정되지 않은 일을 결정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수사와 기소가 그 자체로 형벌과도 같은 것(=절단,재앙)이라면 선출된 권력이 한 일에 대한 판단은 그것이 명백한 본인의 개인적 이익(혹은 본인 부인의 이익이나 본인 아들의 이익 등)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함부로 검찰이 나설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자체가 정치적인 판단이 개입할 수 밖에 없으니, 검찰의 중립성이 중요하다면 필요한 것은 검찰에 대한 견제와 권한 분산이다.

 

'김학의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 사건'이 대표적일텐데, 검사가 한 일이 이런 정도로 기소된다고?

검찰의 부실수사, 과잉수사를 이정도 잣대로 스스로 단도리 해왔다면 검찰개혁 이야기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김학의 수사는 이전까지 어느 정도로까지 봐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검사에 대한 수사였다.

검찰은 특히 자신들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조금도 중립적이지 않고, 정치적으로 명백히 기울어진 지금은 특히 위험하다.

 

--------------------------

 

지난 선거에서 내가 본 것은 '편없는 사람들의 무서움'이었다.

어쩌면 다행히도(?) 우리나라 선거는 '편없는 사람들'이 결정한다.

다만 '편없는 사람들'은 어느 쪽이든 단두대로 끌고 가면 환호하는 것 같다. 편이 없으니 누가 매달아지던 크게 상관도 없고.

 

나는 편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편없는 사람들의 속편함이 부러워서, 편없는 편에 서보기로 한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원래 나는 어느 쪽의 안티로 편을 정한 거였지.

그럼 더 썩은 쪽을 잘 잡아 넣는 쪽이 우리편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