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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reading

당신은 당신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

by edino 2020. 6. 3.

릴케의 싯구는 여기저기서 종종 접하지만, 그의 시집이나 다른 글을 책으로 본 적은 없다.

그러다 이 책이 회사 도서관에 있길래 빌려 보았다.

 

150페이지도 되지 않은 작고 얇은 분량이지만 읽어내기 만만치 않은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우선 번역하기 힘들었을 릴케의 만연체 문장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하나는 이 글의 구성 자체가 저자가 릴케의 문장들을 여기저기서 가져와 재배열하여 몇개의 주제로 편집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온 글들의 출처는 릴케의 편지가 많다. 차례로 주욱 읽어도 이해가 쉽지 않을 문장들을 아무리 유기적으로 엮어도 이해가 쉬울리 없다.

 

제가 젊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드리고 싶은 주제는 언제나 오직 하나뿐입니다(그리고 이것은 제가 지금까지의 삶으로부터 확실히 알게 된 거의 유일한 깨달음입니다). 바로 우리가 언제나 어려움과 함께 해야만 한다는 것 말입니다. 이것이 삶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자 우리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삶 속으로 충분히 들어섬으로써, 삶이 짐이 되어 우리 어깨 위에 놓일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p.96)

 

이런 정도면 (물론 삶에 대한 경험이나 관점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바는 크게 다르겠지만) 문장의 이해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옮긴이가 고생했겠다 싶은(즉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실제로 옮긴이는 이 책의 번역을 시도하다 포기하고 허수경 시인에게 번역을 부탁하였었다. 기다리던 원고가 아닌 뜻밖의 허수경 시인의 부고를 듣고, 옮긴이는 다시 번역을 맡아 끝낼 수 밖에 없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과정 또한 릴케가 이 책에서 삶에 대해 얘기하는 바와 닿아 있었다.

 

끝 부분에 엮은이 울리히 베어의 목소리를 통하면 이 책의 주제는 한결 선명해진다.

 

"그렇지만 이것이 바로 삶이 아닐까요? 여러 보잘것없는, 불안한, 작디작은, 그리고 부끄러운 하나하나가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의 커다란 전체로 거듭나는 것 말입니다. 삶이란 아마 우리가 이해하거나 의도할 수 있는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가능성과 실패가 한데 뒤섞여 만들어 내는 무언가일 것입니다."

...삶이란 언제나 계속해서 우리로부터 멀어지게 마련이고, 또한 이따금 우리가 삶을 이해했다고 착각할 때마다, 삶은 오히려 그 거리를 더욱 벌리는 것입니다. 저마다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던 모든 것이 별안간 멈추고 틀어지는 바로 그때, 우리는 삶 속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들어섰다는 것을, 이질적인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됩니다. 릴케가 이해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삶의 이중성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삶은 우리 앞에 완전히 열린 채 주어져 있으며, 그저 그것을 살아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완전한 열림 속에서, 삶은 도리어 매 순간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각각의 순간 속에서 삶이 제공하는 완전히 새롭고 생경한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 때에 따라서는 우리가 이제까지 붙들고 있었던 허망한 이해를 과감히 던져 버릴 수 있게 됨을 의미하는 셈입니다.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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