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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reading

건강의 배신

by edino 2020. 4. 18.

맞닿아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건강보다는 나이든 저자의 죽음에 관한 성찰에 더 눈길이 가던 책.

 

우리는 비통한 심정으로든 체념하는 마음으로든 죽음을 삶의 비극적 중단이라 여기면서, 이를 늦추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아니면 좀 더 현실적으로, 삶이란 영원한 비존재 상태의 일시적 중단일 뿐이며, 우리를 둘러싼 경이롭고 살아 있는 세상을 관찰하고 그것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짧은 기회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p.17)

 

나는 의료화된 죽음 이라는 고문에 반대할 뿐 아니라 '의료화된 삶'을 받아들이는 것도 거부한다. 나의 결심은 나이가 들수록 더 단호해진다.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듦에 따라 매월 매일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창문 없는 대기실이나 삭막한 검사실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죽기에 충분한 나이가 됐다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성취이며, 그것이 가져다주는 자유는 축하할 가치가 있다. (p.32)

 

죽음에 직면한 보통의 사람들은 종종 더 많은 경험을 한다거나 어떤 영구적인 형태로 자신을 기리도록 만들기 위해 애쓴다. 그들은 모험이나 특별한 여행지에 관한 버킷리스트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노력할 수도 있고, 마음속에 간직한 소중한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분투할 수도 있다. 부유하거나 유명한 사람이라면, 마치 황제가 자신의 무덤을 구상하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자신의 마지막 시간 동안 자선 재단 같은 '유산'을 만드는 일에 헌신할지도 모른다. (p.246)

 

그리하여 자아는 우리가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성공적 노화'라고 부르는 일에 장애물이 된다. 나는 성공한 사람들이 마지막 몇 년을 이떻게 허비하는지 지켜봐 왔다. 그들은 마지막 승진을 비롯해 공로에 대한 인정을 받기 위해 다투거나, 비판자나 잠재적 비판자로부터 자신의 명성을 미친 듯이 방어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것이 현대 세계를 사는 우리가 배운 방식이다. 자신을 드러내거나 방어하려고 애쓰다가 고통스러운 신경증에 걸리면, 우리는 흔히 자신에게 더 깊이 파고들라고 요구하는 형태의 치료에 기대게 된다. 정신분석가 애먼슨은 이렇게 말한다. "심리치료 환자들은 진실을 찾고자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렇다고 보편적으로 타당하거나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절대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진실하라' '자신을 사랑하라' '자기 자신을 돌보라' 같은 개인주의적 신조에 대한 애착이 강화되고 증대된 채 되돌아간다."

 

다가오는 자기 소멸에 대한 불안을 달래 줄 오래된 위안거리가 있다. 그것은 자기보다 더 큰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넘어서 있는 상위 존재를 마음속에 그리곤 했다. 종교적 순교자는 신을 위해 죽고, 군인은 국가를 위해 죽는다. (p.247)

 

그리고 아래 나온 환각작용을 하는 버섯 얘기는 다른 곳에서도 많이 보았는데, 매우 흥미롭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에서 저자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이 새로운 연구는 과학 작가 마이클 폴란Michael Poliam이 2015년 뉴요커지에 게재한 글에 훌륭하게 요약되어 있다. 일반적인 실험에서 환자-보통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는 '마법의 버섯matic ratistions'에 들어 있는 유효 성분인 실로사이빈psilocybin 1회분을 투여받고,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분위기를 갖춘 방에 누워 의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몇 시간 동안 '여행'을 한다.('마법의 버섯'은 환각성 물질인 실로사이빈이 다량 함유된 버섯의 총칭이다.) 약의 효과가 사라지면, 환자는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후에도 여러 번의 후속 인터뷰에 응하게 된다. 폴란은 연구에 참여한 뉴욕대학 정신과 의사가 밝힌 예비 결과를 인용했다.

 

분명 죽음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에게서 공포가 사라졌다. 단 한 번 투여된 약물이 그토록 오랫동안(6개월까지) 그러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전래없는 발견이다. 정신의학 분야에서 그와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환자들의 주관적 설명에 뇌 활동을 스캔해 추적한 결과를 더해 보니, 약물이 '자아' 감각과 관련된 뇌 부위인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멍한 상태이거나 몽상에 빠졌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을 말하며, 이 영역에서 자아 감각을 만들 뿐 아니라 자아를 과거나 미래로 투사해 후회나 불안, 두려움 같은 감정을 일으킨다고 한다.) 뇌에서 이 기능이 더 철저하게 억제될수록, 환자가 보고한 내용은 자연발생적인 신비 경험과 유사해졌다. 이때 환자는 자기 소멸 내지 자아의 죽음 같은 것을 경험하며 -겁이 날 수도 있다- 우주와 하나가 되는 심오한 느낌이 뒤따른다. 그리고 이와 함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다. 또한 환각 여행 혹은 신비 경험이 강렬할수록 환자의 불안감이나 우울감이 더 뚜렷하게 사라진다. 말기 암에 걸린 54세의 TV 뉴스 보도국장은 의학적으로 관리된 실로사이빈 여행 동안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오 세상에나, 이제 모든 것이 이해됩니다. 너무나 단순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덧붙였다. 세균조차도 아름다웠어요. 우리 세상과 우주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말이에요." 17개월 후 그는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사망했다. 살아 있는 우주에 관한 이러한 느낌은, 실로사이빈 경험을 한 영국 심리학자의 주관적 설명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실험 연구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건강했다.

 

어느 시점에 당신은 엄청난 생기를 띠는, 통상적인 인식으로는 해아릴 수 없는 현실로 옮겨 간다. 갑작스레 정신이 더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눈이 닿는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이 뿜어 나올 수 있다.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며 유동적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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