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번 여행 중 가장 많은 곳을 들러가는 일정이다.
Split에서 숙박이 정해져 있고, 가는 길에 있는 Šibenik, Primošten, Trogir를 거쳐 갈 예정이었다.
Split까지는 그냥 가면 2시간도 안걸리는 거리니, Zadar에서 2박 후 다음으로 그나마 큰 도시인 Split에서 2박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인데, 중간에 가보고는 싶은데 숙박까지는 좀 애매한 중소도시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이런 일정이 나왔다.
갈 길이 바쁘니 숙소에서 빵을 사다 아침을 먹고 10시쯤 출발을 하려는데, 어제 주차할 때 차 옆에 낮은 구조물이 있던 걸 깜박했다. -_-; 뭔가 찌그러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차를 세우고 보니 옆이 좀 긁히고 찌그러졌다. 차에 사면에 다 센서가 있어서 평소엔 주변에 뭐가 가까워지면 삐삐거리는 소리가 잘만 났는데, 하필 그때는 아무 소리도 안났다.
비싼 돈 주고 넉넉한 보험에 들어 놓았기에 수리비 걱정은 안되는데, 보험처리를 할래도 police report가 필요한 걸로 알고 있어서, 골치 아프게 되었다. 사고라고 하기도 애매한 사건이지만, 렌트 중 사고는 처음이다. 일단 구글맵에서 경찰서 같은 데를 찾아서 가보았는데, 하필 휴일이라 그런지 아예 닫았다. 파출소 같은 데는 찾기가 어려워서, 검색으로 Croatia의 비상전화번호를 찾아 걸었다. 다행히 영어가 잘 통해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사고난 곳으로 경찰을 보내준다고 한다. 연락을 하고 우리는 다시 주차했던 곳으로 돌아가 경찰을 기다렸다. 렌트 업체에도 전화를 하였는데, 비상시 전화받는 곳은 차를 견인해야 할 경우에만 연락이 필요한 곳이었다. 우리가 차를 빌린 공항 지점은 휴일이라 그런지 통화가 안되었고, Zadar 근처 지점이 통화가 되어서 설명하니 OK라고 자기가 전달하겠으나 나중에 다시 차를 빌린 지점과 통화하라고 한다. 혹시 몰라 통화들은 다 녹음해두었다.
조금 있으니 경찰이 온다. 190cm도 넘어 보이는 거구의 경찰 아저씨가 와서 쓱 보더니 우리에게 police report를 받으려면 1000 HRK를 내야 한다고 얘기한다. 헐, 이거 우리를 등쳐먹으려는 거 아닐까 하는 느낌이 온다. 이거 보험없다 치고 보상금으로 내도 1000 HRK면 될 거 같은 생각이 든다. 100 HRK면 모르는 척 줄 수도 있는데, 1000 HRK라니 깍자고 들어도 최소 300 HRK 이상 내야 할 거 같아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경찰보다야 차라리 보험회사랑 싸우는 게 나을 거 같고.
시간만 한시간 가량 허비하고, 찝찝한 기분을 다 떨치지는 못하고, 어쨌든 첫번째 목적지였던 Šibenik으로 출발하였다.
오늘 갈 곳이 많기는 하나, 시간이 없으면 한두군데 안가거나 대충만 둘러본다고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다.
Šibenik까지는 1시간 정도로 Split까지 가는 길의 절반이 넘는다. Zadar도 Šibenik도 해안가 도시이고 해안도로가 있는데도, 구글은 약간 내륙으로 올라가야 나오는 고속도로를 알려준다. 예상시간도 차이가 좀 나서, 고속도로로 돌아서 갔다.
도착하여 주차를 하려니, 주차기계가 동전만 가능하다. 생길 때마다 써버려서 동전이 없어, yeon이 주변 가게에서 빵을 사고 동전을 바꿔왔다.
Šibenik은 Croatia의 다른 도시들처럼 구시가와 신시가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것 같았다.
성 야고보 성당을 찍고 가다 보면 별다른 성벽 같은 경계 없이 어느덧 중세풍 골목에 들어서 있다.
Croatia의 많은 구시가들 중에 가장 옛스런 모습이 남아있는 것 같다.
골목들이 경사진 길로 이어지면서 구불구불 구조도 매우 복잡하여 여기저기 붙어 있는 표지판을 보고도 헷갈릴 정도다.
표지판을 따라 가다 보면 갑자기 성 야고보 성당이 보인다.
건물들 사이로 나와, 저 담 사이 문을 지나 왼쪽은 지붕 위쪽으로 난 계단이고, 오른쪽으로 계단을 내려가면
성당과 작은 광장이 나온다.
성당안에 들어가본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아마 입장료가 있었던 것 같다.
Croatia에서는 성당에서도 입장료를 내라는 경우가 꽤 많다. 그것도 매년 오르는 가격으로.
거기까지 가서 꼭 봐야할 것이라면 큰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겠지만, 하고 많은 성당들을 보는데 굳이 봐야할 곳인지 모르고 갔으니 굳이 돈내고는 안들어갔다.
사실 나는 성당보다 그 맞은편의 이 건물이 좋았다.
뭔가 유서깊은 건물일 것 같았는데, 지도에도 그냥 식당으로만 나온다.
하지만 저 멋들어진 큰 창과, 주변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집들, 양 옆으로 이어지는 계단들까지, 이 풍경만 보고도 Šibenik에는 와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정의 초반이긴 하지만 벌써 뭔가 지쳐보이는 Kiwi의 눈치를 보며 아이스크림을 진상했다.
이제는 동반 어린이의 컨디션을 살핀다기보다는, 기분을 살피며 다니는 신세다. -_-;;
무슨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 같은데, 그 앞에서 Croatia에 온 이후로 세번째 한글 발견.
첫번째는 Zagreb에서 Rastoke 가는 도중 길가에 숙소가 크게 한글로 써있었고, 두번째로는 Rastoke에서 한글로 된 안내 책자, 세번째가 여기.
Šibenik의 위쪽으로는 딱히 구시가 경계가 없지만, 바닷가쪽으로는 경계가 있다.
벽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건물들이 이어진 것 같은 형상인데, 그 사이로 작은 문도 있고, 아무튼 신기한 구조다.
그래서 성 야고보 대성당에서 골목길을 몇개 지나쳤을 뿐인데, 작은 문으로 나오면 갑자기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구시가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지만, 불과 몇 미터만 걸어 작은 문을 통과하면 마치 시간여행이라도 한 것처럼, 해변가는 또 완전히 현대식 길과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구시가의 여러 집들은 과연 다 사람들이 사는 곳일까?
저 위층의 빨랫줄은 그래도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말해준다.
Šibenik에는 사실 높은 곳에 몇몇 요새들이 있다. 하루에 몇군데나 도시를 들르는 오늘의 일정상 요새들은 따로 일정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출발이 늦어지고 갈 길은 먼 것을 고려해 Šibenik 돌아보기는 짧게 끝냈다. 다음 목적지인 Primošten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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