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문학선생님이 감수성 따윈 별나라에 두고 온 남고 아이들을 앞에 두고도 꽤 재미나게 문학 관련된 얘기들을 해주시던 분이셨다. (생각난 김에 찾아보니 오, 수필집도 내신 듯!)
무슨 얘기들을 해주셨는지 사실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건 별로 없지만, 한가지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메밀꽃 필 무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선생님 본인께서 그곳에 갔었던 얘기였다. (하나가 더 생각이 났는데, 이건 다른 문학선생님일지도.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강릉인가 암튼 동해쪽을 갔는데, 비행기 바퀴가 안내려와서 동체 착륙을 했다고. 그런데 서울로 돌아갈 때 보니 그 비행기를 고쳐서 다시 태우더라는 얘기. 이거 진짜 실화인지? ㅋㅋ)
아무튼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온 달밤의 메밀꽃밭 묘사가 정말 그대로라고, 숨막히게 아름다우니 우리더러도 꼭 가보라고.
그리하여 선생님 말씀 들은지 20년도 넘어 실행에 옮겼다.
그리 오래 가봐야지 하면서 안가본 것도 사실 신기한데, 그 꽃 피는 때가 길지가 않기 때문이란 게 핑계다.
몇년 전부터는 꽤 구체적으로 알아보다가도, 1년에 한두번 그 철 주말에 짬이 안나면 해를 넘기길 몇해 째.
올해는 마침 우연히 알게 된 봉평 근처 호텔이 가격도 안비싸고 시설도 새거라 더 좋은 기회였다.
방 2개짜리 방도 그리 안비싸서 부모님과 함께 다녀왔다.
체크인 우선 하고 봉평으로.
몇 년전부터 꽃피는 때에 맞춰 지역 축제를 한다는 건 알았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꽤 커진 모양.
그것도 20년이나 된 축제라고 한다.
축제 장소에서 꽤 떨어진 학교 운동장에 차를 겨우 세웠다.
장터나 음식점 등이 모여 있는 곳이 있고, 이 다리를 건너 이효석 문학관, 메밀꽃밭 등이 있다.
여기가 소설에서 허생원과 동이가 건너던 개울이렸다?
다리 건너에는 해바라기밭도 있다.
해바라기밭도 한창때 한번 가봐야 하는데...
이효석 문학관은 의외로 꽤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걸어 올라가다 보이는 풍경.
저 가운데 길이 나있는 푸른 밭이 메밀꽃밭이다.
꽤 피어있지만서도, 메밀꽃이란 게 워낙 화사한 꽃은 아니다보니 그냥 보통 농작물을 기르는 밭 같이 보이기도 한다.
지나가면서 누가 농담처럼 하던 얘기였던가, 누가 메밀꽃을 모밀꽃이라 하더라고. ㅋㅋㅋ
모밀꽃이라니 확 깨는 이름이다.
꽤 높은 곳에 위치한 이효석 문학관.
입장료가 싸다고는 할 수 없는데, 사실 문학관이란 것이 그리 보여줄 게 있는 곳은 아니니까.
그곳에서 그의 생애를 살펴보니 참 짧고도 불행이 많았다.
불과 서른다섯의 나이에 병으로 죽었는데, 죽기 2년전에 젊은 부인과 어린 차녀까지 잃었다.
사실 봉평을 유명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고, 지금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니, 그를 기려 꽤 좋은 터에 기념관도 지어놓고 하였지만, 찾아보니 그의 묘는 파주에 있다고 한다. 98년까지 봉평에 그의 묘가 있었으나, 지자체의 무신경함으로 그의 묘 근방이 훼손되는 등 유족과 갈등 끝에 유족들이 그의 묘를 이장하였다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유족들과는 아직도 관계 회복이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9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여서 그런지 90년대를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착각을 하곤 하는데, 가끔 90년대에 일어난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들을 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시절이었구나 하고 종종 느낀다.
주요 등장 동물인 나귀도 저렇게 트로이의 목마 마냥 서있다.
다시 아까의 개울, 차가 다니는 큰 다리에서 본 풍경.
날씨가 좋다.
저녁으로 근처의 정육식당에서 고기를 먹었다.
상당히 큰 규모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저녁을 먹고 부모님은 먼저 호텔로 들어가셨다. 어머니는 주말 드라마 보시러. ㅋㅋ
꽤 규모있는 축제답게 이런 공연 겸 공개방송도 했다.
사실 이렇게 커진 축제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으나, 한가지 축제 덕에 기대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풍등 날리기.
몇년 전까지만 해도 주말마다 풍등 날리기를 했었는데, 올해는 이미 지난주말에 한번만 일정에 나와 있었다.
오기 전에 행사 주최측에 전화로 물어보니 이 공개방송이 끝나고 있다고 하였었는데..
그래서 혹시 나눠준다는 풍등 못받을까봐 인터넷에서 따로 5개짜리 구매도 해갔는데...
막상 가서 물어보니 민원 때문에 지난 주말 한번으로 끝이라고. -_-;;;
농가에 떨어져서 비닐하우스 뚫리고 민원이 많았다고 한다. ㅠㅠ
풍등 날리기도 나름 로망 중에 하나라, 지난번에 서초구 행사에도 한다고 해서 갔더니 풍선으로 대체하질 않나..
금번에 못보면 다음에 또 와야 하나, 아니면 다른 풍등 날리는 축제를 알아봐야 하나 했는데...
며칠전 저유소 화재로 이제 다 사라질듯. -_-;;;
집에 사둔 풍등은 영영 쓸 일이 없으려나... 불나면 안되긴 하지만 아쉽긴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밤의 메밀꽃을 놓칠 순 없다.
20년도 넘게 기대했던 게 바로 이 풍경이다.
사실 낮에는 별로 볼 것도 없는 메밀 꽃밭이지만, 밤이 되면 꽤 분위기 있다.
게다가 사람들도 다들 공연장 쪽에 몰려 있어 조용하고 좋다.
이렇게 생긴.
이것저것 꾸며둔 것들이 아주 좋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많이 깨는 물레방아 조명을 빼면 저런 조각들은 거슬리지 않았다.
비록 진짜 달빛에 보는 것만은 못할지언정, 지금은 달도 안뜨는 때라 이런 조명이라도 없으면 아무것도 안보였을 듯.
문학 선생님께서 묘사한 소설 속 분위기까지는 못내도, 여전히 한번쯤 볼만한 풍경이기는 하다.
이런 곳도 낮이라면 좀 촌스럽지 않았을까.
밤에는 나름 예쁘다.
낮에 갔던 이효석 문학관이 닫은 시간이나 불은 켜져있고 들어갈 수 있다.
거의 사람이 없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유리로 속이 들여다보이는 어느 건물 안쪽에 앉아 살롱 같은 분위기를 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대학생같아 보이는 몇몇이 사진 찍으며 내려오고 있었고.
위에 뭐가 있나 가보았더니 달인가본데, 이미 불은 꺼져 있고.
조용하니 분위기는 있다.
낮과는 전혀 다른 느낌.
메밀꽃밭은 역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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