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는 별로 술을 즐기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의 나는 그래도 애주가에 속하지 않을까. 주말이면 의식처럼 yeon과 영화 한편 보며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게 큰 낙 중에 하나이다.
다행히도(?) 다음날의 숙취는 끔찍하게 싫고, 몸은 점점 술깨는 능력이 약해져, 예전에 비해 한번에 마시는 양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술이란 경계할 부분이 있다. 중독적인 부분에서 담배보다 위험한 구석도 있어보인다.
아래 인용들인데, 페이지를 적어두지 않았다.
건강한 관계를 이끌어 가기 위한 기술을 터득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행동을 책임을 지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두려움 없이 만나며, 끊임없이 불행의 고리를 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불행을 상대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 훈련할 시간도 필요하다.
한 번 의존증에 빠진 뇌 역시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지만 삶의 의미를 되찾고 기쁨을 느끼며 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머릿속에 넣는 것은 배워 나갈 수 있다. 삶의 의미는 살아가는 것, 이라고 헝가리 철학자 아그네스 헬러는 말한 적 있다. 바로 그것이다. 삶의 의미는 살아가는 것! 정말 대단한 모험 아닌가?
일에서 얼마나 행복을 느끼는지, 도전을 통해 얼마나 자신이 성장하는지 또 일을 통해 얼마나 자신이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이 삶에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잘 맞고,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으며, 스스로의 삶과 조화로움을 이룰 수 있고, 내면 깊숙한 곳의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보일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게 했다.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 자체가 완벽한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만족스러운 삶의 일부분이어야 한다. 일을 하는 동안 고뇌를 잊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넘어서는 중요한 것에 몰두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일이란 언제나 궁극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에 닿아 있어야 한다... 실패의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실패의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그것이 세상의 끝은 아니며 야망에 찬 목표를 내려놓음으로써 가벼워질 수 있다고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원하지 않는 일은 절대로 지속할 수 없는 존재다. 이건 야망이 있고 없고와는 상관없는 문제다.... 절대로 가보지 않은 길이 얼마나 힘든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만약 모든 목표가 이루어진다면 자신과 잘 어울리거나 잘 맞는 나만의 특별한 해법 같은 건 찾아낼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일도, 자신의 믿음에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생각해 볼 일도 없다. 그로 인해 미리 만들어진 동그라미 속을 평생 맴돌게 될 것이다.... 실패란 동시에 자유를 의미한다.
그날부터 내 인생에는 오로지 내리막길밖에 없으며 어둠과 비극의 순간이 점점 더 자주 찾아오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미래에는 어떤 좋은 일도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술을 마시는 한 나는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도 절대로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고, 그럴 기회조차 없었으며,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삶의 대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진지하게 술을 끊고 내 삶의 방향이 다른 쪽으로 향하도록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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