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에도 융프라우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다녀온 사람들이 올려둔 사진을 봐도, 그 비싼 가격을 생각해도, 게다가 돌로미티가 아직도 눈앞에 어른대는데.
그래서 가기 전엔 여차하면 융프라우에 가야겠다는 일념이 강하신 어머니와 동생만 보내고, 아님 나만이라도 남아서 다른 걸 하고 놀까도 생각했는데, 주변에 딱히 놀 꺼리가 없다. 번지점프나 패러글라이딩 따위를 할 것도 아니고. 결국 어머니 바램대로 다 같이 가기로.
30분 정도마다 있는 기차 시간에 맞춰 기차역으로 걸어나갔다. 우리가 탄 곳은 정확히는 Grindelwald Grund역. 그런데 기차 종류가 여러가지다. 단체손님들 전용 기차도 있는 것 같고.
우리가 탄 열차는 딱 봐도 좀더 오래된 스타일. 기관실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날씨가 영 좋지 않다. 돌로미티도 날씨 운이 중요하지만, 융프라우는 더 높기도 하고 딱 하루 뿐이니 날씨 운이 더 중요한데, 시작이 영....
중간에 열차를 갈아타는 Kleine Scheidegg역. 해발 2,061m라고. 진한 안개와 비까지. -_-;;;
구경좀 하면서 기차 출발 시간에 맞춰 타려니 생각외로 상당히 붐빈다.
추적추적 비까지 와 정신없는 와중에 인파에 휩쓸리다 보니 단체 열차라고 다른 쪽으로 가라고 한다. 그쪽으로 가보니 엄청나게 긴 줄. 결국 우리는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 했다. 밖은 추워서 좁은 대기실 같은 곳에서 30분을 기다렸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차창 밖 풍경이 볼만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여기서부터는 대부분 터널 구간이다.
산악열차라는 특이함을 빼면 비싸기만 하고 케이블카보다 좋을 것이 없다.
중간에 잠시 멈추는 역도 터널 내부이다.
해발 3,454m의 산 아래 지어진 융프라우요흐역은 그 구조도를 보면 더욱 대단하다 싶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도대체 왜 이곳까지 이런 어마어마한 구조물을 지은걸까 싶다. 단지 관광용으로 100년도 전에 이런 걸 만든걸까? 비쌀만 하다는 건 수긍이 되나, 굳이 그 비싼 돈을 주고 와서 볼만한 곳인가 하는 데에는 다녀온 지금도 의문.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계속 오고 있으니 절묘한 pricing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그 돈을 주고 올라왔는데 날씨가 이래. -_-;;;
흰 벽 앞에서 찍은 게 아니라, 아래쪽 그림과 대응하는 풍경이 보여야 할 곳.
스핑크스 전망대는 해발 3,571m.
날씨가 조금이라도 개기를 기대하며, 일단 실내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보러 다닌다.
식당 중에 발리우드라는 이름을 가진 레스토랑도 있어서 뜬금없다 싶었는데, 인도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인도와 중국 인구를 합치면 전세계 인구의 37% 정도겠지만, 융프라우요흐의 중국/인도 관광객을 합치면 70%를 넘어보인다. 그 나머지가 일본/한국과 유럽인 등. 유럽 한복판에 백인 비율이 이렇게 낮은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아무튼 시간도 은근히 많이 지나서 식사도 하였다.
역시 악명대로 비싸고, 맛도 별로다. 이 또한 돌로미티랑 비교된다. 할인쿠폰으로 기차표 구입할때 같이 받은 식당 할인 쿠폰이 없었더라면 더 아까왔을 듯. 컵라면은 어제도 먹은지라 패스. 해외여행 갈 때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 라면을 더 많이 먹게 되는 듯.
다행히 식사를 거의 마쳐갈 때부터 창밖으로 파란 하늘이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다 먹고 나가보니 구름은 좀 있어도 알레취 빙하까지 시원하게 시야가 확보되었다. 다행이다.
여기도 바로 앞까지만 갈 수 있도록 줄로 막아두었었는데, 이제 열어주어 멀리까지 나가볼 수 있다.
여기보다 약간 더 높은 Aiguille du midi에서 별것 아니네 하고 조금 뛰었다가 머리속이 노래지는 경험을 한지라, 나는 찬찬히 다녔는데, Kiwi는 좀 뛰어서 그런지 의자에 누워버렸다. 적당히 구경도 마쳤고 내려가기로.
Kleine Scheidegg역에서, 기왕이면 올라갈 때와 다른 곳으로 내려가기 위해 Lauterbrunnen행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
다만 차가 Grindelwald의 숙소 근처에 있기 때문에 동생은 Grindelwad로 가서 Lauterbrunnen에서 만나기로.
날씨가 개어서인지 모르겠지만 Lauterbrunnen으로 내려갈 때 차창 밖 풍경이 더 좋았다. 내려갈 땐 열차 안에 사람도 적고, 파노라마 열차라 시야에 막힘이 별로 없다.
Lauterbrunnen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Staubbach 폭포.
근처 주차장에서 동생을 다시 만나서 폭포 바로 앞까지 이동.
20년전 왔던 스위스에서 이 폭포가 그나마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 이 앞에서 찍은 셀카가 남아 있기 때문. 내 기억에는 이 근방에서 저런 가파른 절벽으로 이어진 케이블카의 중간에서 그냥 땅위로 번지점프를 했었는데, 바로 근처에 케이블카는 보이지 않았다.
20년전에는 몰랐는데, 폭포 아래에서 폭포 뒤쪽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오르는 중간에 이런 동굴도 있고.
갈 수 있는 가장 높이까지 갔는데, 오히려 폭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고, 꼭 동굴 밖으로 비가 계속 오고 있는 것 같은 풍경이다.
마을 구경을 마치고 다시 차로 Grindelwald로.
웅장한 아이거북벽을 바라보는 놀이터가 있어서 Kiwi는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
어제 늦게 도착하여 아직 제대로 구경 못한 Grindelwald 마을도 한바퀴 돌아보고.
어머니와 동생이 퐁뒤를 먹어본 적이 없다 하여 근처 식당에 가서 퐁뒤를 먹어볼까 했는데, 그닥 끌리는 곳이 없어서 오늘도 숙소에서 해먹기로. 물론 와인과 함께. 여기도 마트는 Coop. 퐁뒤는 돌아와서 한국에서 내가 직접 만들어 가족들을 먹였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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