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간단히 해먹고 다시 5km 떨어진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돌로미티에서의 두번째 일정을 시작.
날씨가 쨍하니 화창하여 좋은 예감.
오늘의 일정의 절반은 Alpe di Siusi.
트레킹하기 좋은 곳이나, 어제 뜻하지 않게 많이 걸어서 오늘은 리프트 위주의 일정으로 짰다.
먼저 Siusi-Alpe di Siusi 리프트를 타고 Comspatsch로 올라간다.
올라가면 어제 갔던 Seceda와는 또 다른 느낌의 풍경.
한참을 가파르게 올라온 것 같은데, 이 고지대 위에 또다시 평원이 펼쳐진다.
여기서 400미터쯤 얕은 경사의 길을 걸어내려가면 다시 Panorama 리프트를 탈 수 있다.
돌아올 때 약간 오르막이지만, 어머니가 걷기에도 큰 무리는 아니다.
가족끼리 걷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는 오늘은 무조건 편하게 이동.
저 멀리가 Sciliar산군.
Panorama 리프트의 끝은 더욱 탁 트인 평원.
평화로우면서도 가슴 탁 트이는 풍경에 일단 앉고 본다.
앉아서 싸온 과일 같은 것도 먹으며 시간을 보냈지만, 하루 종일 있어도 좋으련만, 또 가볼 곳이 많다.
가까워서 자주 올 수 있는 곳이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두 리프트를 차례로 타고 내려와 다시 Ortisei 마을로 간다.
이번에 탈 것은 Ortisei-Alpe di Siusi 리프트.
같은 Alpe di Siusi이고 같은 곳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셈인데도, 느낌은 참 다르다.
Comspatsch쪽에서는 바로 풀밭이 펼쳐져 있어 소풍나온 듯한 편한 느낌이 들고, 이쪽은 봉우리들의 모습이 더 가까워 웅장한 느낌이 더하다.
명칭들이 현지에서도 많이 익숙해지지 않아 돌아와서 복습하고 있다.
왼쪽이 Sasso Lungo, 오른쪽이 Sasso Piatto라고 한다.
Comspatsch 쪽에서는 풀밭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면 더 좋을 것 같고, Ortisei에서 올라온 Alpe di siusi에서는 바로 앞의 Ristorante Mont Seuc에서 먹으면 좋다. 뭐 이런 비현실적인 풍경을 병풍삼고서.
이 리프트는 여름에 일주일에 한번은 밤 11시까지 운행한다고 한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밤에 올라와보고 싶고, 산장에서 자보고도 싶다.
안쪽에 근사한 자리도 있지만, 이런 맑은 날엔 상쾌한 바람까지 불어주니 야외자리의 매력이 더 하다.
어제 Troier 산장에서 시켜본 결과 사람수대로 시키는 건 양이 많아서, 서너 접시만 시키고 각자 커피 등 음료도 시키고. 오른쪽에 보이는 무지막지하게 느끼해보이는 음식은 이 지방 전통 음식인지 메뉴에 여러 종류가 있어서 한번 시켜봤는데, 보기보다 느끼하진 않지만 많이 먹기 힘든 건 마찬가지고, 이름은 까먹었다. 식전빵 중 보통 종류의 빵은 괜찮았는데, 딱딱한 종류는 독특한 향신료가 있어 다들 많이 못먹었다.
무난하게 시킨 스테이크 종류는 괜찮았으나, 전체적으로 주문을 잘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뭐 메뉴 따위, 미슐랭 스타급 음식이 여기서 나온대도 이곳에서 먹었다면 풍경이 훨씬 강렬할 것이다. 게다가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다.
Kiwi는 물론 풍경보다도 아이스크림, 레스토랑 바로 앞에 있는 그네 따위가 훨씬 관심사.
오늘의 마지막 리프트는 Sasso Lungo, Sasso Piatto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Monte Pana - Mont de Sëura 구간.
여름이면 항상 그런지, 아니면 우리가 때마침 이곳에 온 것인지, 리프트에서 내리자마자 소떼들이 바글바글 풀을 뜯고 있다.
멀리서 보던 Sasso Lungo, Sasso Piatto가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조금 걸으면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갈 수도 있겠으나, 주변만 가볍게 돌았다.
하루 종일 날씨가 좋아 무척 다행이다.
돌로미티에 짧게 온 사람들 중엔 날씨가 안맞아 제대로 못봤다는 후기들도 제법 있었는데.
한쪽에서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무리도 있고.
이들이 날아오르는 걸 보고, 우리는 다시 리프트로 내려왔다.
날이 아직 밝아도 리프트는 일찍 끊기는 것들도 있으므로, 앞쪽에 리프트로 오르는 일정들을 몰아놓고 오후 늦게는 주로 차로 갈 수 있는 곳들을 가는 일정. 게다가 오늘부터 이틀 묵을 숙소를 향해 가는 길에 있는 곳들. 되돌아봐도 하루 전에 급하게 짠 일정들 치고 참 잘 짠 일정이다. 어제같은 돌발 상황도 없이, 거의 예정대로...
먼저 들른 곳은 Passo Sella. 앞으로 숱하게 지날 그 많은 고갯길 중 첫번째로 일부러 찾아간 곳.
돌로미티의 운전이 어렵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작년 이태리 남부 아말피 해안도 그렇고, 다닐만하다.
한참이나 계속되는 고갯길인데, 오토바이족들이야 그렇다 쳐도 자전거로 올라오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다.
Passo Sella에서 20분 좀 넘게 가면 나오는 Passo Pordoi.
사실 숙소로 가는 길에 Passo Pordoi는 약간 샜다 가야 하지만, 20~30분 정도 차이이기 때문에 들러갈만 하다 싶어 들렀다. 이 고갯길은 지금까지보다는 좀 더 심하게 구불구불.
여기서도 가파른 바위로 오르는 리프트가 있지만, 이미 운행은 멈춘 시간.
위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던 건 또 구글로 해결. 무척 황량하다.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는 Lake of Carezza.
이곳은 숙소를 지나쳐 20분 정도 더 가면 나오는데, 사실 돌로미티에서 스위스로 넘어갈 때 지나가는 길에 있어 그때 들렀어도 되었지만, 이때만 해도 이틀 뒤 어디서 묵을지가 정해지지 않았어서 굳이 먼저 들렀다. 내일은 반대 방향으로의 일정만 있다.
주차장이 있고, 주차비 이외에도 입장료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은데, 호수로 향하는 길로 표시된 곳에 문이 닫혀 있었다. 당황하였으나, 호수에 접근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차장에서 차도 밑 지하로 통하는 길이 있으나, 저녁때 그 문이 닫혀 있으면 그냥 찻길을 건너 넘어가도 호수로 갈 수 있다.
Lake of Carezza는 극찬을 보고 와서 기대가 컸는데, 생각보다는 실망이었다.
물론 사진에서 본 것과 똑같은 모습인데... 문제는 그게 전부다.
호수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다. 사진에 보이는 모습이 호수의 일부가 아니라 거의 전부다.
폭이 100미터 정도나 될까. 한바퀴 돌아보는 데에도 얼마 걸리지 않지만, 굳이 돌아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 호수는 뒷편의 산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주 평범할 뿐이어서, 호수에 닿자마자 보이는 정면 이외에서 보는 호수의 모습은 그다지 볼 것이 없었다. 그래도 기대를 많이 해서 그렇지, 사진 속의 모습이 사기는 아니니, 근처를 지난다면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려는데, 늦은 시간에 와서인지 숙소 앞 현관에 내이름이 써져 있는 종이 쪽지가 붙어 있다. 예약 사이트도 통하지 않고 직접 이메일로 예약한 것이라 확실히 된 것인지 약간 불안했는데, 혹시 내가 늦게 와서 방을 딴 사람 줘버렸다는 내용은 아닐까 싶어 덜컥 불안. 다행히 내가 늦어서 자기 먼저 퇴근한다고, 방 키는 꽂아뒀다는 얘기.
방에 가보니 기대만큼 깔끔하긴 했으나, 어제 숙소에 비해서는 좀 작아서 약간 실망. 사실 이정도 크기를 예상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으나, 어제와 비교된 것이 문제. 숙소가 바뀔 때는 점점 좋아지는 편이 좋다.
햇반 등 가져온 식량 소비가 너무 빠른 것 같아, 가급적 물가 비싸고 음식 맛없다는 스위스에서 주로 해먹고, 이태리에서는 가능하면 나가서 먹기로 하고 나섰는데, 우리 숙소가 있는 마을인 Vigo di Fassa에는 늦은 시간에 연 마트나 마땅한 식당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다시 차를 타고 지나쳐왔던 조금 큰 마을인 Canazei로 이동.
Canazei는 늦은 시간에도 제법 사람들이 많다. 와인바를 겸한 식당을 찾아 리조또와 돈까스같은 음식, 샐러드와 감자요리 등을 시켜 먹었다. 이탈리아 남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맛. 특히 이탈리아에서 먹는 리조또들은 대체로 약간 짜기는 해도 내 입맛에 잘 맞는다.
번화한 Canazei 거리를 조금 돌아보는데, 사진속 사람들 옷차림에서 보듯 꽤 쌀쌀하다.
큰 주차장 같은 곳 옆에 특이해보이는 전광판 같은 것이 있어 가보니, 그 지역 숙소를 예약할 수 있는 것이 있어, 숙소별로 객실이 남아있는지 여부가 초록불/빨간불로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 연 마트는 찾지 못해서 작은 가게에서 겨우 물만 사가지고 돌아왔다.
이날 마트를 얼마나 찾아헤맸던지, 이후 일정 동안 마트만 보이면 왠지 들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알차게 즐긴 돌로미티 이틀째 일정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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