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무난한 조식을 먹고, 호텔에서 가까운 석굴분묘부터 가보았다.
아마시아에서 꼭 방문할 3곳은 1) 석굴분묘 2) 아마시아 성채 3) 알리 카야 레스토랑으로 정했다.
사실 부지런히 다니면 하루에 3곳을 다 갈 수도 있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돌아다녀도 이틀이면 아마시아의 주요 볼거리들은 충분히 볼 수 있고, 나처럼 3일 이상 묵으면 좀더 깊숙히 들어가 보는 것이고.
일단 날씨가 아주 맑지는 않아서, 내일은 더 화창하리란 기대로 오늘은 그중 가장 기대가 덜한 석굴분묘만 가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이날 날씨가 가장 좋았다. ㅠㅠ)
평일 아침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계단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기존엔 돌계단이 전부였던 듯.
이 바위들은 카파도키아의 바위들과는 다르게 속까지 단단해 보이지만, 이렇게 통로까지 만들어져 있다.
기원전 폰투스 왕들의 무덤이라고도 하고, 한땐 감옥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이 산에 무덤 유적이 20여개라는데, 너댓 개가 두드러지게 크고 아래에서도 잘 보인다.
사진으로는 크기 가늠이 잘 안되지만, 상당히 크다.
왕은 죽어서도 굽어보고 싶었겠는데, 죄수들을 이곳에 가둔 건 좀 이해가 안된다.
자유로운 세상을 보면서 더 괴로우라는건가? 리버스-판옵티콘도 아니고.. ㅋㅋ
여기서 보이는 성채 모습도 웅장하다.
사실 이 험준한 자연 요새에 살짝 패인 부분만 막았을 뿐인데, 그게 방어에 획기적으로 더 도움이 되니까 만든 것이겠지?
사람이 별로 없지만, 그래서 여기도 어김없이 커플이 있다. ㅋㅋ
그렇지만 작더라도 온 마을에서 다 보인다.
성채에 오르면 더 멀리까지 보이겠지만, 여기서 보는 뷰도 상당하다.
보고 있노라면 이런 장난이 치고 싶어진다. ㅋㅋ
내가 타고 온 기차는 이렇게 터널을 지나 Samsun까지 간다.
석굴무덤으로 올라오는 길은 저 기차길 바로 아래를 통과해서 올라온다.
석굴분묘에서 내려와 다시 강가를 따라 걷는다.
하늘이 파라니 느낌이 새롭다.
이 동상의 주인공이 아마시아 출신 지리학자 스트라본이다.
아마시아에서도 예외 없이 크고 작은 자미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규모도 큰 Sultan II. Beyazit Mosque. 자미만 덜렁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 대학도 같이 있고, 작은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안에도 들어가보려 했었는데, 이때가 마침 예배시간이라 다음에 들어가 보기로.
점심을 먹기 전에 아마시아 고고학 박물관을 먼저 찾아가는 길.
왠 아이들이 날 보더니 신기한 걸 발견한 듯한 표정으로 영어로 말을 건다.
어디서 왔냐, 이름이 뭐냐, 혼자 다니냐, 쿨~
뭐래? ㅋㅋㅋ
사진 찍어줄까? 했더니 신나라 하면서 둘이 활짝 웃으며 포즈 취한다.
터키인들은 대체로 사진 찍히기 좋아하고, 같이 사진 찍자고도 곧잘 한다. 이스탄불 갈라타 탑 위에서도 한번 그네들 셀카봉으로 여럿이 같이 찍었었다. 하지만 아마시아에서는 동양인이 좀 드문 편이기까지 하니, 그런 일이 더 자주 있다. 블로그 등에 봐도 즉석해서 초대 받아 현지인들 집에 가는 경우도 많고. ㅋㅋ 성격상 그런 것까지는 좀 부담스럽지만, 환하고 반갑게 말걸어 주는거야 고맙지. 현지인 한 사람의 표정과 대응에 여행자들은 그 도시의 인상이 바뀌곤 한다. 이스탄불 등의 관광지에서 말을 걸던 이들은 대부분 상인이나 삐끼였지만, 아마시아에서는 다르다.
고고학 박물관은 크고 화려하진 않으나 입장료도 싸고(5tl) 들러볼 만 하다.
역시 다양한 문명의 흔적들이라 유물들만 보고는 대략적인 연대조차 짐작이 쉽지 않다.
미이라들을 모아놓은 방이 있는데, 역시 박물관에 사람이 없어서 으스스.
유물 뿐 아니라 민속박물관 형태로 과거를 재현해놓은 곳도 있다.
박물관에서 나와 Gökmedrese Camii를 거쳐 Burmali Minare Camii로. 다들 도보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사실 이스탄불을 떠난 이후로 자미에 들어간 적이 별로 없는데, 아마시아에서 몇개 자미를 들어가보니 자미마다 다른 특색을 발견하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멧 자미를 보면 게임 끝 아닌가 하여 작은 자미들에 별 관심이 가지 않았던 것인데, 작은 자미들에는 그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Gökmedrese Camii 내부는 이제껏 봐온 자미 중 가장 초라한 편에 속했는데, 겉의 푸른 타일 장식과, 내부에 석관 같은 것이 몇 기 놓여 있는 것이 독특했다. Burmali Minare Camii는 위와 같은 나선형 첨탑이 특이하다고 하는데, 사실 크게 눈길을 끄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부는 그리 크지는 않아도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을 잡아 끈다.
관광객들로 어수선함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스탄불의 대형 자미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
예배 시간이 아니어도 대부분의 자미에는 몇명이라도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미들은 일단 입장료도 없고, 사진 찍어도 괜찮을까 싶어도 여행자보다 더 사진 찍기에 열심인 현지인들이 있어 큰 부담이 없지만, 그래도 행여라도 기도하는 이들에게 방해될까 하여 가급적 눈에 안띄는 곳에서 다른 소음이 날 때만 조심스럽게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조용한 자미 분위기를 깨는 다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터키인이 나한테 성큼성큼 다가오며 큰 소리로 포토 어쩌고 저쩌고 한다.
에공, 여기선 사진 찍으면 안되나보다 민망하려는 찰나, 이 친구 나더러 같이 사진 찍자고 한다. ㅋㅋㅋ
무슨 외계인이라도 본 양 멀리서부터 나를 향해 와서 큰 소리로 사진 찍자고, 아오 민망민망. ㅋㅋㅋㅋ
그러나 현지인이 그러자 했으니 자미 안에서 다정히 셀카를 찍고, 내 카메라로도 하나 같이 찍자고 해서 같이 찍었다.
그러고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조금 더 구경하다 밖으로 나가니 이 친구 안가고 서있다.
이번엔 자기 친구들까지 불러서 같이 대기하고 있다가 단체로 같이 찍잰다. ㅋㅋㅋㅋ
것 참, 내가 어디 가서 이런 대접(?) 받아보나 싶다.
자미를 나와, 근처의 아무 식당에나 들어갔다.
어제 점심 2.5tl이 은연중에 Anchoring이 되어, 오늘도 현지인들 먹는 식당에서 시켰으니 끽해야 10tl을 넘진 않겠지? 하였으나, 무려(?) 16tl이 나왔다. 뭐 고기 양도 더 실하긴 했지만, 아마도 밥 메뉴를 시키면 빵 메뉴보다 가격이 확 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오전에 꽤 많이 돌아다녀 방에 돌아가 잠시 쉬다 나왔다.
아마시아는 작고, 내 숙소는 그중에서도 중심부이고, 시간도 많은 편이니 부담이 없다.
오후에는 오전보다 날씨가 나빠져서, 아마시아의 하이라이트 2,3번은 내일로 미루었다.
오늘은 나머지 아마시아에서 가볼만한 곳들을 다 가볼 참이다.
이번엔 아마시아의 동쪽으로 가본다.
다소 번잡한 중심가에서 벗어나니 한적한 사람 사는 동네가 나온다.
학교 앞도 지나게 되었다.
아이들은, 신기하면 대놓고 쳐다보니 나도 그들과 눈마주치는 것이 부담없고 재미있다.
여기서도 몇몇 아이들이 신나게 말을 걸었다. ㅎㅎ
이쪽 동네는 그냥 정처 없이 간 것만은 아니고, Yakup Paşa Camii가 있는 곳이어서 왔다.
유명한 관광 명소는 아닌데,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현지인이 추천해준 곳이라 하여 나도 찾아와 본 곳이다.
겉보기에 대단한 건 없지만 내부가 독특하다 하여 찾아왔는데, 아쉽게도 공사중인지 폐쇄된 상태였다.
조금 더 '아무 것도 없는' 곳들을 향해 걸었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심지어 어린 시절도 아파트에서 보냈으니, 이런 동네를 보고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게 오히려 이상할 수 있지만, 주말이면 자주 갔던 명륜동의 할아버지댁이 생각난다. 좁은 골목길이 인상적이던 그 동네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튼, 이곳은 더 과거 같은 느낌의 동네. 그렇더라도 여전히 이곳은 아마시아, 성채가 내려다보는 곳이다.
작은 자미를 하나 더 구경하고, 육교를 건넜다.
아마시아에도 참 많은 자미가 있다. 이곳은 Bayezid Paşa Camii.
규모는 작지만 역시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하얀 벽과 아치의 문양도 독특하다.
의자들로 구분된 유럽의 성당들에 비하면 자미의 기도하는 공간은 개방된 온돌방 같은 느낌이 들어 더 친근한 면도 있다.
이곳은 Buyuka Ağa Kur'an Kursu. 꾸란을 공부하는 신학교 같은 곳이다. 위에서 보면 8각형 형태.
공식적으로 개방되는 공간은 아니기에, 주변에서 안을 흘끔흘끔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근처에 있던 이곳의 학생들 몇 명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안에 들어와서 보라고 안내해준다. 사진도 찍어도 좋다고 안내해준다.
이렇게 터키에서 마주하는 이슬람의 모습은 폐쇄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세속화된 형태의 이슬람 국가라서 그런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IS 같은 정 반대 극단에 있는 단체와 터키의 관계도 그리 나쁘지 않다. 내가 터키에 간다고 하였을 때 많은 이들이 IS 테러 우려는 없냐고 했지만, 오히려 몇몇 멍청이들이 터키를 통해 IS로 합류한다는 사실 자체가 터키와 IS의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예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나는 역사상 패권 국가 중 미국은 (강국이 아닌 입장에서) 가장 괜찮은 편에 속하는 패권국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나와바리인 라틴아메리카에서 보기엔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영토나 식민지 야욕을 보이던 이전 패권국들에 비하면 미국은 상당히 나이스한 편이다. 반면 미국의 이스라엘 편향은 중동지역 등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를 키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IS의 폭력이든 과거 십자군의 폭력이든 그것은 종교의 본질과는 별 상관없는, 국제 정치의 결과들로 보인다. 아무튼, 터키에서 느끼는 이슬람교는 큰 이질감이 없다.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 중심가로 돌아온다.
강가에서 멀지 않은 식당 한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오늘은 혹시 조명이 멀쩡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다시 강변을 걸었으나, 조명은 어제와 같이 계속 엽기적으로 변했다. ㅋㅋ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