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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tchat/wine

Tignanello 2006

by edino 2013. 5. 19.

좀 비싼 와인 맛보기 프로젝트 2탄도 첫번째에 이어 이태리 와인이다.

이번엔 여러모로 좀더 검증된 Super Tuscan, Tignanello 2006이다.

85% Sangiovese, 10% Cabernet Sauvignon, 5% Cabernet Franc의 블렌딩.

WS 93점, RP 92점이라는데 사실 90점이라는 녀석들도 별 감흥 없던 적이 많아 점수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다.



먹고 마시느라 사진 한장 못찍어서 웹에서 가져왔다. -_-;


친구가 2시간 디캔터에 디캔팅을 해서 내놓았다.

사실은 이번에 한번도 안해봤지만 꼭 해보고 싶었던 간단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았다.


나는 내 감각을 과신하는 편은 아니다.

얼마전에 회사에서 누가 뭔지 안가르쳐주고 마시라고 해서 마신 생과일 쥬스를 마셔봤는데 무슨 과일인줄 모르겠더라.

처음 먹어보는 과일인가 했는데 그냥 청포도를 씨와 껍질까지 갈은 것이었다.

알고 먹었더라면 포도맛이네 했을텐데.


물론 나름은 와인의 맛과 향의 차이를 느끼면서 마신다고 생각하지만, '애호가란 사람들이 블라인드로 마시니 레드와 화이트 와인도 구분 못하더라'는 식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럴수도? 라고 생각은 한다. 그간 읽어온 인간의 인식과 심리에 관한 책들은 하나같이 뇌란 녀석이 별로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라 하고 있고.


그래서 좀 비싼 와인들을 마셔보자고 생각하면서 블라인드 테스트도 해보리라 생각했었다.

가격에 내 편견이 생김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도 있고, 정말 내가 제대로 구분을 못한다면 나는 앞으로 굳이 어느 정도 이상 비싼 와인을 마실 필요는 없을테니까.


구분이 비교적 확연하게 쉽지는 않도록 Sangiovese 품종 위주의 와인으로, 급 차이가 너무 비슷하거나 심하게 나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대략 1/3 가격의 Chianti Classico를 골랐다. 선택된 Tignanello의 파트너는 Verrazzano Chianti Classico 2010다만 급하게 구입하느라 디캔팅에서는 좀 차이가 났다. 2시간 디캔팅된 Tignanello에 비해 Verrazzano는 겨우 30분 정도.


서로 다른 잔에 담겨진 다른 와인을 앞에 두고, 어느 쪽이 어떤 와인인지 모른채로 우선 향을 맡아보았다.

호호 이런, 이건 너무 쉽잖아.

첫번째 것은 익숙한 산도 넘치는 Sangiovese의 향, 명백한 Chianti Classico다.

두번째 것은 익숙지 않은 블렌딩, 디캔팅의 차이도 있겠지만 고급 Cabernet Sauvignon의 특징같은 안정감이 느껴진다.


확인 사살을 위해 둘다 한모금씩 맛을 본다.

엇! 향에 비해 맛은 둘이 너무 유사하다! 갑자기 헷갈린다.

2시간 넘게 디캔팅한 녀석도 이렇게 산도가 강할 수 있나?

맛에 집중해서 차이를 느껴보려 할수록 헷갈림은 더했다.


결국 처음 향에서 확연한 차이대로 두번째 것이 Tignanello라 결론을 내렸고, 답은 맞았다.

하지만 블라인드로 맛에서 그만한 클래스의 차이를 못느꼈다보니 이후 Tignanello를 마시면서도 복합적인 맛의 재미를 느끼긴 힘들었다. 향으로 치자면 더할나위 없이 근사했고 아주 화려하기보단 말쑥하고 매력적인 정장의 신사같은 느낌. 하지만 이야기가 계속 마냥 흥미롭게 이어지진 않는 느낌. 복합적인 맛의 재미는 지난번의 파소피시아로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지난주 마트에서 파소피시아로가 그때 산 가격보다도 3~40%나 싸게 나와 있어서 지를까 하다가, 다음 프로젝트로 손색이 없는 명성의 녀석이 상당히 좋은 가격에 나와있어서 그걸 사느라 다음으로 미뤘다. 처음 프로젝트 구상보단 약간 낮은(?) 가격대에서 첫 와인을 시작했다보니 계속 그 가격대 근처에서 괜찮아 보이는 녀석들을 구해가고 있다. 대신 좀더 자주 접해볼 수 있을 것 같고.


대략 이정도 클래스의 수준은 알겠고, 사실 와인의 세계에 이들을 압도할 만한 엄청난 세계가 있으리란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잘 맞았을 때 기가 막힌 분위기를 내줄 와인은 있겠지만, 그것이 온전히 와인 혼자의 힘은 아닐 것이다.


와인은 분위기를 많이 타는 술이다.

둘다 상당히 훌륭한 녀석들이었는데, 과연 네가 어느 정도나 하나 보자, 네 값어치를 하나 보자, 하는 태도로 접하다 보니 정작 흥은 좀 놓친 듯한 기분이다. 이것저것 재는 맞선 자리도 아니고, 이 또한 즐겨야 할 과정이다.


다음부터는 와인으로 좀더 즐거운 자리가 될 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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