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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s

우면산, 그리고 동네 한바퀴

by edino 2012. 11. 22.

상당히 애매한 시점에 회사에서 조직이동을 하게 될 것이 확실한 상황이 되었다.(우리 조직만)

다만 정확한 이동 시점은 알 수가 없어서 11월 말에 계획하던 여행계획은 아직까지도 불투명한 상황.

어쨌거나 요상한 시점에 이동을 하면 새로운 조직에서 어떤 상황이 될지 예측할 수 없으므로, 일단 남은 휴가를 최대한 써버려야 했다. yeon은 한참 바쁜 시즌이라 혼자놀기를 해야했다.


지난 금요일의 오전 반차는 전날 술마시고 늦잠자고 일어나서 아이랑 조금 놀다가 출근하였고, 월요일은 하루 휴가인데 아이는 어린이집 가므로 혼자 무얼 할까 하다가, 일단 차 엔진오일 교환과 정비를 하였다. 가다가 우면산을 보니 전부터 남부순환도로 지나면서 본 기묘한 풍경이 궁금하여 오랫만에 등산을 해보기로 했다.




멀리서 보아도 참으로 황당하게 해놓았는데, 이게 평소에 어지간한 비가 와도 보기 좋을 만큼 물이 차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폭우가 왔을 때 물들을 순식간에 내려보내기 위해 직선으로 쭉 거대한 배수로를 몇개 파놓은 것이다. 게다가 이런 흉물스런 배수로를 잘 안보이게 해놓은 것도 아니고 주변을 시원하게 터놓아서 좀 기괴하다. 미적 감각 하고는 한심스럽다. 이정도 기간과 비용을 들였으면 효과적이면서도 보기좋게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암튼 이런 배수로가 한개도 아니고 여러개 있다.

이 근처는 눈 쌓이면 스키장 슬로프 같을 듯.

여기서 뒤를 돌아보면 군부대가 태권브이라도 숨겨놓은 듯한 요새 분위기를 내고 있다.


원래 오르막길 매우 안좋아하는데, 방배역에서 산 입구까지 가는데도 헥헥이다.

예전 기억보다 우면산이 숨찼는데, 게다가 오른길이 저 배수로 따라 완전히 직선으로 되어 있어 더 그랬던 듯.

한참 올라가다보니 옆으로 능선을 따라 조금 걷고, 마지막 150m는 계단으로 또다시 직선이다.



정상의 view는 그래도 제법이다.

탁 트인 만큼 바람도 꽤 거세다.



왔던 길로 돌아가는 건 재미없어 반대쪽으로 길을 잡으니 예술의 전당 쪽으로 내려온다.

예술의 전당 위쪽에 무슨 절이 하나 있고, 그 바로 아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이 생겼던데, 건물이 산악 지형을 끼고 파고 들어가 있는 형태라 위에서 내려오면서 보니 무슨 거대한 배수시설쯤 되는줄 알았다.


그런데 내려오면서 창을 통해 들여다본 모습은 예상과 전혀 다른 풍경.

발레 연습을 하고 있는 언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실제로 본 건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 그 시각적인 임팩트가 상당히 컸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서 왜 제니퍼 코넬리가 발레연습하는 장면을 넣었는지, 실제로 보니 바로 이해가 되었댈까.


왜 실제 무대위의 발레는 지루해 하는 편인데 발레 연습하는 모습은 이런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일까.

가만 생각해보니 발레 뿐만이 아니다.

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서의 연주보다도 그전에 연습하고 조율하는 소리가 더 설레고, 완성된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 보다도 작업중인 작업실이 더 설렌다.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패션쇼 보다도 패션쇼 뒤편의 탈의실 및 분장실 풍경이 더 설렌다.(아 이건 좀 다른가? ㅋㅋ) 연극이나 뮤지컬도 마찬가지, 영화도 마찬가지다.


골똘히 생각해본 건 아니고, 대충 왜그럴까 생각해보니 지금 때려맞추기 좋은 생각은 그게 인간적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무대위의 최종 작품은 그 인간성을 최대한 배제한다. 연주든 대사든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고, 있어도 마치 없었던 듯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 준비과정에는 인간적인 모습들이 가감없이 드러난다. 극적인 대비. 대부분의 관람객들에게 준비과정이 오히려 낯선 모습이기에 그 반대의 대비되는 모습은 묘한 설렘을 준다.



예술의 전당의 지하로 건너려다 보니 여기 풍경이 또 신선하다.

그렇게까지 놀라운 풍경은 아닌데, 규모도 작지만 의외로 제법 세련된 공간이랄까.

월요일 오후인데도 까페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내가 세상을 못쫓아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마저 얼핏 들었다.


발로 걸으니 참 많은 것들이 달리 보인다.

이 동네에 몇년을 살았어도 잘 안보이던 것들.

예술의 전당에 와도 차를 가지고 오면 이 아래엔 내려올 일이 없다.

얼마전에 탑골공원에서도 노인들 많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본 느낌도 나름 충격이었다.


그래서 방배역까지 버스를 타려던 생각도 접고 그냥 주욱 걸었다.

30년을 훨씬 넘게 산 서울도 참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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