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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watching

Whatever Works

by edino 2009. 11. 17.
우디 앨런은 늘상 비슷한 것 같은 영화들을 찍어대지만 질리지 않고 계속 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수다스럽고, cynical 하면서도 아주 가끔은 귀엽게 보이는 신경쇠약+애정결핍적인 구석도 있고.

돌이켜보니 내가 우디 앨런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영화를 통해서가 아니었다.
Leisure Suit Larry.
이걸 들어본 사람이라면 소시적에 컴퓨터 게임좀 했던 사람이다.
Larry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쯤, 그러니까 CPU는 10MHz에 램은 512KBytes, Hercules 그래픽 카드를 쓴 모노 12인치 모니터의 XT 컴퓨터로 즐겼던(?) 게임이다. 이미 그때에도 성인용 게임이란 게 있어서 혈기왕성한 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는 했는데, 스트립 포커 등의 단순한 게임들보다 훨씬 도전적이었던 것이 바로 이 Larry 시리즈, 특히 3편이 기억에 남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게임은 '여자 꼬시기 게임'의 시조 격이다.
쟝르는 어드벤쳐.
대사도 영어고 명령어도 영어로 입력해야 한다.
I am a boy 배우던 시절에 상당히 도전적인 게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배웠던 몇몇 단어들은 평생 간다.
이래서 조기학습이 중요한가보다.
거기서 배웠다고 확실하게 기억나는 숙어 중에 하나가 'make love'다.
(게임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쉬운 다른 명령어들로는 절대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 ㅋㅋ)

아무튼, 이 게임은 시작하는 것부터가 도전적이다. 다른 게임들이 비밀번호 표나 copy lock 등으로 저작권을 보호하는 수준이었던데 반해, 이 게임은 성인인증 절차가 하나 더 있었다. 성인인증 방법은 바로 어른들이라면 다 알만한 문제를 내서 맞춰야 게임이 시작되는 것. -_-; 게다가 더 큰 난관은 '미국 성인들'이 알법한 문제라는 것. 여러 문제들이 나오는데 그 문제들을 맞춘 갯수에 따라서 게임의 수위가 조절된다. -_-;

우디 앨런의 이름은 그 문제들 중에 처음 봤다.
사전 찾아가며 우디 앨런이 영화감독이란 건 알겠는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영화 제목들 중에 고르라니 인터넷도 없던 시대에 얼마나 난감했는지. 아무튼 그때부터 우디 앨런의 이름은 내게 '어른들의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으로 머리속에 자리잡았다.


우디 영감 소개가 길었는데 영화에 대해서 길게 얘기할 참은 아니다.
영감이 직접 나오진 않고, 저 사진속의 영감이 딱 그같은 역할로 나와서 수다를 떤다.
혼자 실컷 독설들을 내뱉지만 저 영감 주변 사람들은 성격이 좋아서 다 그냥 받아준다.
Everyone says I love you만큼 로맨틱하진 않아도 꽤 해피한 엔딩.

내친 김에 우디 앨런 영화를 몇편이나 보았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열댓편 가까이 본 듯.
그런데 최근 것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1935년생 이 영감 영화들은 전혀 늙지를 않는다.
뭐 워낙에 예전부터 다 산 것 같은 영화들을 찍어왔으니 그런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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