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T(Modern Monetary Theory)라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으나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다가, 이런 책이 있어서 집어들었다.
'현대통화이론'이라는 어감에서 느껴지는 선입견과는 조금 다른 내용의 주장인데, 경제이론이라기보다는 케인즈'주의'처럼 어떤 경제정책에 대한 주장에 가깝게 느껴진다. 물론 경제학에서의 주장들은 그렇게 해야 결국 경제가 잘(?) 동작한다는 이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실 예전에 읽은 '긴축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가 이와 비슷한 얘기였을지도 모르겠는데, MMT가 주목받기 시작한 게 대략 2019년 정도부터이니 2016년에 나온 그 책은 MMT 정도로의 과격(?)한 결론까진 못갔던 것 같다.
아무튼 '현대-'가 접두사로 붙어서 뭔가 난해해지는 다른 분야들과 달리, MMT는 생각보다 매우 단순명료하다. 그래서인지 정말 그럴까 의구심도 들고, 또 수많은 가정과 반문을 해보게 된다. 핵심은 독자적인 발권력을 가진 정부는 재정적자를 걱정할 필요 없이, 오로지 인플레이션만을 기준으로 재정정책을 펴면 된다는 것이다.
MMT에 따르면 실제로 세금을 걷어서 국가가 그 돈으로 예산을 지출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세금은 단지 정부가 발행하는 통화의 필요성을 강제하고, 민간의 수요를 줄여 인플레이션을 제한하며, 부의 재분배를 위해서 필요하다.
(지방정부는 세금이 꼭 필요하나 중앙은행을 가진 중앙정부는 지출을 위해 세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EU국가는 EU라는 연방의 지방정부에 불과한 셈이라 이러한 재정정책을 펼 수 없어서 그리스 등에 위기가 왔다.)
또 현재의 정부들은 국채 발행 방식으로만 재정 적자를 발생시키나,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고 MMT는 주장한다. 국채는 이자율을 결정하는 수단이었고 이를 통해 경기를 조절했다. 이자율을 통해 다른 자산 가격도 통제할 수 있다.
연준이 예전에는 국채를 발행해 팔아 지급준비금을 적정 규모로 만들어 단기이자율을 조정했으나, 현재는 양적완화로 장기금리를 조절하고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주는 방식으로 단기금리를 직접 조절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재정적자로 지급준비금이 늘어나도 단기이자율이 0에 가까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더이상 국채를 통해 이자율을 조정하지 않으므로 국채가 없어도 된다고 하나, 있어도 그것은 단지 과거 재정적자(경제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달러공급자로서의 정부)의 기록에 불과하다. 국채='이자 지급형 달러'이고, 이를 가진 사람에게 이자를 지급할 것이냐의 문제이지 갚아야 할 빚의 문제가 아니다.
무역흑자국은 재정적자에 덜 기대도 된다. 그러나 기축통화국은 무역흑자를 지속해선 안된다. 우려와 달리 중국이 미국채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미국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미국의 금리 인상은 달러를 다시 미국으로 향하게 해 달러가 필요한 저개발국에 위기를 가져온다. IMF는 그런 국가들의 통화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긴축 재정과 긴축적 통화정책을 주문하지만 그 대가는 여지껏 보아 왔듯이 참혹하다.
수식 하나 없이 단순하지만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 있고, 또 아직 이를 근간으로 본격적인 재정정책이 이뤄진 바가 없다 보니 수많은 의문부호가 생긴다.
1) 정부가 부채의 형식을 띄지 않고 지출하는 것을 스스로 막는 것은 선심성 공약 남발을 막기 위해서인가? 과연 세금을 걷지 않아도 정부가 예산을 집행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정부가 필요에 의해 세율을 올리는 경우 조세저항은 더 심해지지 않을까? 인플레이션이라는 후행지표가 재정정책의 한계라고는 해도, 정부가 '돈이 없다'는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을 때, 선거로 선출되는 정부가 과도한 선심성 공약을 내고 이행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2) 부채의 형식을 띈 정부 지출은(민간이 국채를 사서 자금이 묶이므로) 인플레이션을 이연시키는 효과가 있고, 직접 그냥 발권하여 지출을 하면 인플레이션에 더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가?
부채의 형식을 띄지 않아도 적자의 양을 관리할 방법이 있을까?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고 그냥 찍어내서 집행된 돈은 장기적으로 어떤 재정/통화정책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정치적 합의만 있으면 국채는 이자율 조절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인가? 이자율 조절 역할을 위한 정부 부채의 양은 시장이 정하는가 정부가 정할 수 있는가? 국채가 지나치게 많아지는 것은 미래에 약속된 정부 지출(이자)을 늘이는 것이므로, 예정된 인플레이션 압력이 되므로 MMT에 따르더라도 부담이 되는 것인가?
3) 인플레이션만으로 예산을 들쭉날쭉 조정하기에는 인플레이션이 너무 후행지표 아닐까? 민간이 활성화되어 그 자체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정부는 역할을 줄이거나 이자율을 올려 민간을 냉각시켜야 한다. (기대)인플레이션에 따라 민감하게 정부 지출을 조절할 수 있나? 그렇게 하면 공공의 역할에 연속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연속성이 필요한 공공의 역할은 발권력이 없는 지방 정부로 넘기고, 그 이상의 재정 지출은 연방정부가 책임지면 될까?
4) 중국이 미국 달러를 빼가는 것은 위협이 아니지만, 그 달러로 미국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여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면 연방정부의 발권력과 재정정책 독립성은 위협 받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미국 기업과 개인은 호황일테니 그때는 연방정부가 긴축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강요받는 것 아닌가?
5) 모든 MMT주의자들이 필연적으로 지지해야 할 이유는 없겠으나 저자가 주장하는 일자리보장제도는 민간과 경쟁 이슈가 있다. 최소한 책임감 있는 사람이 어디에서도 돈을 벌수 없어 빈곤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겠으나, 공공에 필요하면서도 각자에게 맞는 일자리를 만들고 관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고, 특히 공공이기 때문에 비효율은 상당하지 않을까? 인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이내로 관리하는 한에서 실업률을 최대한 낮추어 최대한의 잠재 경제성장을 이끌어낸다는 목표는 좋으나, 한계 인플레이션을 넘으면 일자리 보장을 더이상 하지 않아야 하나?
그리고 MMT가 반드시 진보적인 목적으로 작동할 이유는 없다고 하나(예를 들어 군비 확충), 더 큰 정부를 요구하는 것만은 사실이므로 그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채택할 수 있는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6) MMT에 따른다면 연방정부의 채무가 무제한으로 늘어날텐데, 국채 이자 지급만으로도 많은 돈이 풀린다면 점점 인플레이션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단은 약해지는 것 아닌가. 국채는 민간 이자율 조절을 위한 최소한의 양만 발행하고 나머지는 직접 재정지출로 한다면 그 최소한의 양은 얼마인가? 국채가 없어지거나 줄어들면 국채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므로 다른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않을까?
MMT는 플랫폼 경제, 기본 소득 등의 논의가 나오는 이 시대가 요청한 이론인 듯하다. 어쩌면 COVID19를 핑계로 테스트해 본 후, 금본위제도 폐지 50년만에 달러의 족쇄를 또 한번 푸는 계기가 될 것인가? 혹은 달러 패권이 저무는 신호가 될 것인가?
MMT까지 가지 않아도 지금도 이미 돈이 넘쳐나는 시대인데, 이로 인해 혁신기업들이 나타나고 그들이 가격파괴를 일으켜서 인플레이션을 막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나? 결국 '혁신'기업들이 인플레이션을 막는다면 그건 가계소득을 줄이는 방향일 뿐이므로 MMT와 기본소득이 필요해질 것인가? 아니면 자본 과잉으로 좀비기업이 늘고 구조조정이 지연되어 결국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것인가? 혁신이든 좀비든 어쨌든 풀린 돈이 인플레이션을 막는 역설이 실현될 것인가?
앞으로의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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