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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reading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by edino 2019. 5. 22.

요즘 관심사이자 독서의 키워드가 의식, 뇌, information, 자아, 진화, 유전자 뭐 이런 것들인데, 다양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생각지 못한 데서 이야기들이 자주 하나로 만난다. 그중에 가장 예상치 못하게 많이 나온 얘기 중 하나가 명상에 관한 것이다. 심지어는 유발 하라리의 책에서도 그가 명상의 열렬한 지지자라는 것을 한 챕터를 할애하여 얘기하고 있었다. 사람 안변하는 것 같아도, 나만 봐도 적어도 생각들은 많이 바뀐다.

 

이 책은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37세에 뇌졸중일 겪은 뇌과학자의 생생한 경험담이자 회복기.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그녀가 왼쪽 뇌에 stroke이 왔을 때(이유는 모르겠으나 왼쪽 뇌에 뇌졸중이 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그녀는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걸렸다. 좀 불편하긴 해도 아직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음에도 그랬다. 그 과정을 소상히 적어두었는데, 숫자와 언어와 논리를 장악한 좌뇌의 능력없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던 일들도 엄청나게 어려워지는 것이다.

 

놀라운 이야기들은 그 다음이다. 좌뇌가 피에 잠겨 정신을 잃어가는 동안, 멀쩡한 우뇌는 '우주와 하나인'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 느낌은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 같기도 하고, 명상에서 추구하는 정신상태를 묘사하는 것과 너무나 유사하다. 결국 그녀는 좌뇌를 잠시 침묵시키고 우뇌에 집중함으로써 그러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뇌졸중을 통해 배운 셈이다.

 

 

흔히 뇌에 손상을 입고 6개월내에 회복되지 못하면 더 이상은 좋아지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그녀는 틀린 이야기라고, 뇌의 가소성은 훨씬 강력하고 자신은 8년에 걸쳐 회복되었다고 얘기한다. (뇌 가소성에 대한 이야기는 노먼 도이지의 '스스로 치유하는 뇌'에서도 더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무조건적인 노력과 힘들어서 좌절의 반복으로 회복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저자에게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납득시키는 것이 매번 아주 큰 도전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좌뇌는 다시 아기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선택을 해가며 발전시키려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회복을 한 이후에도 우뇌만이 살아있던 때의 느낌을 잊지 않고자 하고, 좌뇌 우선인 개인과 사회의 불행을 피하고 싶어한다.

 

나는 책임감이란 "특정 순간 감각계로 들어오는 자극에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영어로 책임감을 뜻하는 responsibility는 반응response하는 능력ability이다).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변연계감정 프로그램도 있는데, 하나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었다가 완전히 멈추는 데 90초 정도가 걸린다. 가령 분노라는 감정은 자동으로 유발되도록 설계된 반응이다. 어떤 계기로 인해 뇌가 분비한 화학 물질이 몸에 차오르고, 우리는 생리적 반응을 겪게 된다. 최초의 자극이 있고 90초 안에 분노를 구성하는 화학 성분이 혈류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면, 우리의 자동 반응은 끝이 난다. 그런데 90초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화가 나 있다면 그것은 그 회로가 계속해서 돌도록 스스로 의식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우리는 신경 회로에 다시 접속할지 이니면 감정을 스쳐 지나가는 단순한 생리 현상으로 사라지게 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P149)

 

아래와 같은 내용들은 명상(특히 최근 서구에서 많이 주목받는 mindfulness, 마음챙김 명상)에서 하는 이야기들과 상당히 유사하다. 다른 점은 명상하는 사람들이 많은 수련으로 도달한 단계를, 그녀는 반대로 뇌졸중으로 단번에 도달하고, 대신 죽은 좌뇌를 되살리면서 그것을 잊지 않는 방법으로 해나갔다는 점이겠다.

 

물론 자신의 뇌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에 주목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많은 대학생들은 뇌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그저 관찰만 하는 것도 정신적으로 아주 피곤하다며 불평을 쏟아놓았다. 공평한 증인의 입장에서 뇌의 소리를 듣는 법을 배우려면 연습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이 기술을 터득하고 나면 이야기꾼이 만들어내는 귀찮은 극적 사건과 정신적 외상을 자유자재로 넘어설 수 있다. 뇌가 지금 어떤 인지적 회로를 가동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나면, 이제 이런 회로가 내 몸 안에 생리적으로 어떤 느낌을 주는지에 집중한다. 경계심이 드는가? 동공이 팽창했나? 숨이 깊거나 얕은가? 가슴이 답답한가? 머리가 멍한가? 속이 불편한가? 안절부절못하거나 불안한 기분인가? 다리에 힘이 풀렸나? 공포, 불안, 분노의 신경 회로를 가동시키는 자극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회로가 가동되면 일관된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므로 여러분은 이를 의식적으로 관찰하도록 스스로를 훈련시킬 수 있다. 뇌가 아주 단정적이거나 비생산적이거나 통제 불능으로 느껴지는 회로를 가동할 때면, 나는 정서적·생리적 반응이 사라질 때까지 90초를 기다린다. 이어 아이를 대하듯 뇌에게 차분하고 거짓 없이 말한다. '생각하고 느끼는 네 능력은 높이 사지만 나는 더 이상 이런 생각이나 감정에는 관심이 없어. 그러니 이런 것들을 끄집어내지 마.' 뇌에게 특정한 사고 패턴에 엮여 들어가는 것을 중단하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마다 이런 의도를 전달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의 진실 어린 목소리로 생각만 해서는 제 기능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이야기꾼에게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알아낸 바로는 여기에 적절한 감정을 덧붙여 진심인 것처럼 생각해야 이야기꾼이 더 귀를 기울인다. 그래도 뇌가 제대로 듣지 않으면, 손가락을 공중에서 흔드는 등의 몸짓을 메시지에 더한다. 잔소리하는 어머니처럼 우리가 메시지에 열정을 더하고 다차원적인 방법들을 동원하면 뜻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P155)

 

Right here, right now, 이 또한 명상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명상뿐이 아니다. 인류의 지혜는 여기에 다 담겨있는 것 같다.

 

마음의 평화를 경험하려면 우선 내가 더 큰 구조물, 즉 나와 하나로 이어진 에너지와 분자들의 영원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거대한 우주의 일부임을 알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지상의 삶이 천국처럼 다가온다. 내가 우주와 한몸인데 어떻게 두려울 수 있겠는가? 왼쪽 뇌는 내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연약한 개인이라고 생각한다. 오른쪽 뇌는 내 존재의 중심에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 이런 세포들이 죽고 3차원 세상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겠지만, 이것은 내 에너지가 고요한 희열의 바다로 다시 돌아가 흡수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자 내가 이곳에 머물며 내 삶을 구성하는 세포들을 건강하게 유지하느라 노력했던 시간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현재 순간에 머물려면 마음의 속도를 의식적으로 서서히 늦추어야 한다. 우선 급한 마음부터 버리자. 왼쪽 뇌는 서두르고 생각하고 계획하고 분석할지 모르지만 오른쪽 뇌는 대단히 차분하다...... 외부의 생각들을 인식하고 감사의 마음을 표한 뒤 잠시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라. 사라지라는 게 아니라 몇 분만 옆으로 치워두는 것이다. 어디로 가지 않으니 안심하라. 이야기꾼은 언제든 다시 불러내면 곧장 가동을 시작할 것이다. 인지적 사고에 접속하여 정신의 회로를 가동시키면, 엄밀히 말해 우리는 현재 순간에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일어났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고, 몸은 지금 여기 있어도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기도 한다. 현재 순간을 느끼려면 다른 것으로 주의를 돌리게 하는 인지 회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P165)

 

궁극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세포와 회로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서로 다른 회로가 몸 안에서 가동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파악하고 나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다. 공포와 불안이 내 몸 안에 불러일으키는 느낌은 정말 질색이다. 이런 감정이 나를 덮치면 소름 끼칠 만큼 불편하다...... 내 마음에 드는 공포의 정의는 진짜처럼 보이는 그릇된 예상이다. 모든 생각이 그저 스쳐가는 생리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면, 내 이야기꾼이 흥분하여 공포 회로를 가동할 때 덜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내가 우주와 하나임을 기억하면 공포는 힘을 잃는다... 앞서 말했듯이 신체의 고통은 우리 몸 어딘가에 조직이 손상되었음을 뇌에 알려줘서 경계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리 현상이다. 우리는 고통의 감정 회로에 접속하지 않고도 신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몹시 아플 때 얼마나 용감해지는지 잘 안다. 부모들은 고통과 공포라는 감정 회로에 시달리지만, 아이들은 부모 같은 부정적 감정을 겪지 않고도 꿋꿋하게 병에 적응한다. 고통을 몸으로 겪는 것은 선택이 아니겠지만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인지적 결정이기 때문이다. 아픈 아이들은 자신의 병을 견디는 것보다 부모가 슬퍼하는 광경을 보는 것이 더 힘들 때가 많다. 아픈 사람이 누구든 마찬가지다. 몸이 불편한 시람을 방문할 때는 여러분이 어떤 회로를 자극하는지 살피고 조심해야 한다. 죽음은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여러분의 오른쪽 뇌 깊은 곳에 영원한 평화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몸을 낮추고 평화로운 은혜의 상태로 돌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매사에 고마워하면 당신의 삶은 정말 멋질 것이다! (P178)

 

요즘 왠만한 책들의 저자들은 TED 강의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선입견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책을 다 읽기 전까지 저자의 모습을 보거나 말을 들어보진 않다가, 책을 다 보고 잠깐 보았다. 말하는 것은 뇌졸중의 흔적을 거의 느낄 수 없지만, 그녀가 얘기하는 모습은 보통 우리가 기대(?)하는 과학자보다는 종교인같기도 하다. ㅎㅎ 하지만 직접 겪고 느낀 그녀의 이야기들은 울림이 있다. 그리고 많은 용기를 준다.

 

나는 내 마음속의 정원이 살아 있는 동안 열심히 가꾸라고 우주가 내게 맡긴 신성한 텃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독립적인 행동을 하는 인간으로서 내가 물려받은 DNA 유전자, 내가 살아가는 환경과 잘 협력하여 내 두개골 안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을 아름답게 가꿔갈 것이다. 애초에 나는 작은 씨앗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지닌 DNA는 독재자가 아니다. 뉴런의 가소성과 사고의 힘, 그리고 현대 의학 기술 덕분에 얼마든지 멋진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나는 어떤 정원이라도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가꾼다. 내가 가꾸고 싶은 회로는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없애고 싶은 회로는 의식적으로 가지치기를 한다. 잡초는 싹이 올라올 때 제거하면 수월하지만, 행여 혹이 많은 덩굴로 자라더라도 결단력과 인내심을 갖고 영양분 공급을 끊으면, 결국에는 힘을 잃고 쓰러진다. (P180)

 

(P.S.) 음악도 좌우반구가 이렇게 역할을 나누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음악에서도 좌뇌가 하는 부분이 꽤 많았구나.

 

우리의 양측 반구가 서로를 보완하며 함께 기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다른 좋은 예는 음악이다. 음계를 조직적으로 반복 학습할 때, 악보 읽는 법을 배울 때, 지시된 음을 내기 위해 악기 운지법을 외울 때, 우리는 주로 왼쪽 뇌에 의존한다. 오른쪽 뇌는 연주를 하거나 즉흥연주를 하거나 시창청음을 하는 등 현재 순간에서 음을 실현하려고 할 때 능력을 발휘한다.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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