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묵을 숙소는 카쉬에 있기 때문에, 아쉽지만 올림포스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출발.
올림포스에서 나올 때에도 제대로 된 길이 나올 때까지는 한참 걸렸다. 곳곳이 타이어 상태를 걱정스럽게 하는 비포장 도로.
사실 나름 멀쩡한 도로가 나왔어도 포장 재료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거치대에 스마트폰 진동이 계속 크게 느껴져서 원래 이랬나, 차가 작아서 그런가 싶었는데, 결국 이후 파묵칼레 근처 큰 도시인 데니즐리 근방에 가서야 (한국과 비슷한) 좋은 상태의 포장도로가 나와서 진동과 소음이 확 줄었다.
안탈리아-카쉬 구간은 거리도 아주 긴 편은 아니고, 중간에 올림포스도 거쳐 갈 뿐 아니라, 해안가를 따라가기 때문에 운전의 부담보다는 기대가 더 큰 구간이었다. 날씨도 좋았으니 지중해의 바다빛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중간중간 종종 차를 세워 바다와 절벽을 구경하였다. 좌측에 바다를 끼고 가는데 특히 반시계 방향으로 크게 회전하는 구간이 나올 때마다 모래가 쌓여 있는 작은 beach가 형성되어 있다.
private beach가 따로 없다. 근처에 차만 댈 수 있으면 먼저 와서 자리 잡으면 임자다.
한 가족이나 커플이 차지한 곳도 있고, 워낙 많아서 여전히 빈 곳도 많고.
이곳은 내 차지였다.
큰 길이 해안가를 쭉 따라가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륙쪽으로 들어간다.
전원일기에 나올 법한 시골마을을 지나고, 꽤 급한 경사의 구불구불 오르막도 오른다.
그 오르막길은 중간에 아무 것도 없고,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연결하는데, 그 길을 따라 차도르를 입은 아주머니 두 분이 걸어가다 내 차가 오는 걸 발견하고는 태워달라는 듯한 손짓을 하였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히치하이킹 신호에 응답할 시간은 짧기 마련인데, 예상치 못한 반응에 순간 내 머리속을 스쳐간 생각들은 꽤 복잡했다. 엇 이 분들이 힘들어 보이기는 했지만, 차도르를 입은 분들이 낯선 남성이 운전하는 차에도 타나? 영어도 안 통할텐데 이 분들을 태우면 어떻게 의사소통 하지? 얼마나 오래 태워야 할까? 설마 여성 두분인데 나쁜 분들은 아니겠지? 등등, 하는 사이에 결국 지나가고 말았다.
어버버 하는 사이에 두번째 히치하이킹 시도를 그냥 지나쳤더니 마음이 좀 안좋다.
두번 다 태워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데, 게다가 첫번째야 고생도 추억인 여행자 커플이고 차도 많은 곳이었으니 언제고 잡아탔겠지만, 두번째 내가 그냥 지나친 분들은 이미 힘든 고개를 절반이나 걸어 올라왔었다.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라 내가 지나가면 끝까지 고생이었을지 모른다. 가면서도 계속 커지는 후회였지만 되돌리긴 어려웠다. 아직도 후회로 남으니,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갚아야 할 업보인 것 같다.
다시 해안쪽으로 길을 달려 해가 낮게 떠있을 때 카쉬에 다다랐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마을 풍경, 네비게이션이 없어도 이곳이 카쉬인 줄은 알 수 있다.
유럽 부자들이 휴양지로 많이 찾는다더니 과연.
호텔에 체크인하고 마을을 돌아보기 위해 나왔다.
비수기의 카쉬는 어디든 호젓하다.
바다를 바라보는 이곳도.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고대 극장이 있다.
규모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보존 상태는 꽤 괜찮고, 위치가 워낙 좋다.
그 시대에 이 극장은 이 시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까?
맞추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 정확히 맞았다.
이곳에서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해를 지켜본 것은 노부부 한쌍과 열심히 사진 찍던 아저씨 한명까지 모두 넷이었다.
고대극장에서 바라본 카쉬 마을의 전경이다.
몇명은 해가 넘어간 직후 이쪽을 찾아오고 있다.
나는 이곳으로 걸어오면서, 여행 시작후 처음으로 음악을 들었다.
어느 정도 여행모드에 적응이 되었는지 음악 들을 생각도 났고, 치안에 대해 어느 정도 안심이 되면서도 호젓한 곳이라 음악을 들으며 걸어다니기 좋다.
아이패드에서 음악을 틀고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들었는데, 이 블루투스 헤드셋은 이번에 a5100을 구입할 때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다. 보통은 면세점이 카메라 등 전자 제품을 사기 좋은 곳은 아닌데, 이번에 사은 행사가 워낙 좋았다. 요즘은 인터넷 면세점들 경쟁이 많아서(사실 엄청나게 남겨먹기 때문에) 이런저런 할인 쿠폰들을 적용하니 가격이 인터넷 최저가와 비슷했다. 그런데 사은품으로 일단 상품권 11.5만원을 주고, 15만원쯤 하는 소니 블루투스 헤드셋, 소니 휴대용 충전배터리를 주고, 메모리카드와 LCD보호 필름도 기본이다. 블루투스 헤드셋 같은 건 여행 때 있으면 좋겠으나 또 막상 사려면 쓸만한 건 은근 가격도 있고 잘 안사게 되는데 이번에 생겨서 아주 잘 써먹었다.
사실 잘 써먹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 멋진 순간들을 선사해줬다.
이날도 음악들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어찌나 멋지던지. 누구 선곡인지 기가 막힌다. ㅋㅋ
내 아이패드는 여행가서 듣기 좋은 음악들로 채워놓는데, 랜덤으로 틀어놓았다. 물론 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로 채워놓은 것이지만, 그래도 때와 분위기에 맞는 음악은 따로 있다. 이때 랜덤 플레이는 내 기분을 읽기라도 한 마냥 최고로 나와 줬다.
주변 유적도시나 케코바 섬 등의 투어가 아니라면 카쉬는 둘러볼 곳이 그리 넓지는 않다.
이곳은 마을의 중심지 줌후리옛 광장.
도시마다 큰 광장 이름은 아타투르크 광장 아니면 줌후리옛 광장이라, 줌후리옛의 뜻이 무언가 궁금했는데, 돌아와서 찾아보니 '공화국'이란 뜻이란다. ㅋㅋ 왠지 아닐 것 같은 터키 사람들인데, 나라 사랑이 대단한 것인지, 여전히 국가주의가 강력한 것인지. 어딜 가나 넘쳐나는 자국 국기와, '국부'의 동상과, 그의 이름을 딴 수많은 거리와 광장들...
멋진 하루를 보냈으니 저녁 또한 멋진 곳에서 먹어야겠다.
가격도 별로 상관 안하고 광장 좋은 자리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앉았다.
그래봐야 30tl이었으니 터키의 물가는 여행자에게 친절하다.
왠지 리스본에서의 저녁이 떠올랐다.
생각 못한 불청객들이 있었는데, 사람 무서워 않고 돌아다니는 고양이와 개들.
내가 주문한 걸 눈치채고 하나둘 모이더니, 고양이 서너 마리와 개 두 마리가 내 주변을 서성댔다.
얘들아 이게 많아 보여도 고기는 얼마 안많아, 니들 줬다간 남는 게 없어.
쌩까고 혼자 먹고 있으니 개 두마리는 치사해서 안먹는다고 슬슬 멀어져간다.
하지만 특히 저 가운데 흰 고양이. 저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나를 뚫어져려 쳐다봤다. -_-;;
호텔에 들어가서 바로 자기는 너무 아까워서, 차를 끌고 오후에 온 길을 되돌아 좀 올라갔다.
멋졌던 풍경의 야경도 한번 보고파서, 또 날씨도 좋으니 별들도 보고 싶어서.
비싸서 그렇지 역시 렌트가 좋다.
이번 터키 여행중 최고의 하루를 꼽으라면 바로 이날이었다.
3월8일 하루의 여행기를 3개 째 적고 있으니 말이다.
제대로 여행 시작한지 겨우 2일째에 말이다.
예상했던 건 전혀 아니다. 올림포스가 뜻밖에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예상할 수 있는 클라이막스라면 가급적 뒤로 배치했겠지만, 예상 밖으로 좋았으니 뭐 어쩌겠는가.
사실 그날 이미 '오늘이 이 여행 최고의 날 아닐까?' 하는 우려(?)는 있었다.
혼자서 속으로, 입밖으로 탄성을 얼마나 내질렀던 하루였던가.
이 날로 인해 다른 날들의 감동이 조금씩은 줄어든 것도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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