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가고자 처음 생각했던 것은 순전히 싼 비행기표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인기를 끌었던 몇편의 대만영화를 본 적은 있지만 그닥 내 취향은 아니었고, 더군다나 영화속 풍경이 마음에 들었던 적도 없다. 게다가 언젠가 대만은 여행지로 어떨까 생각했던 시기에, 무슨 어처구니 없는 일로 일부 대만인들이 혐한을 부추기고, 가게 등에서도 한국사람 사절한다는 둥의 얘기가 국내 언론에 보도되어 바로 생각 접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요즘엔 가까운 거리, 아시아에 몇 안되는 후진국 아닌 나라, 친숙한 한자 문화권 등등의 이유로 찾는 발길도 적지 않아진 듯 하다. 그래도 아직 인기여행지까진 아닌듯. 주변에 가본 사람보다 안가본 사람들이 훨씬 많다. 저가 항공사 취항 등으로 타이페이 항공편은 적지 않지만, 거리 대비 비행기표가 싼 것을 보면 그리 인기 구간은 아닌 셈이다. 이보다 거리가 가까운 북경보다 훨씬 비행기표가 싸다.
아무튼 원래 계획은 여행 적기라는 11월에 가려고 하였으나, yeon의 회사 일정과 나의 조직개편 일정이 오리무중이 되면서 거의 파토가 날 뻔 했다. 하지만 극적으로 일정을 맞춰 지난주 월요일 항공 발권, 화요일 호텔 예약하고 목요일에 출국했다.
이녀석은 부모 잘 만나 벌써 세번째 해외다.
아직인건지, 앞으로도 계속 그럴건지 모르겠으나 비행기 탄다고 막 신나하고 그런건 별로 없다.
김포-송산공항으로 가면 송산공항이 워낙 타이페이 중심가에서 가까워(중심가에 속하는 우리가 잡은 호텔까지 지하철 2정거장!) 가급적 송산공항행을 알아보려 했으나, 인천보다 비행편 시간대가 다양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인천-타오위엔 공항 편으로 예약했다. 항공사는 Cathay Pacific. 3박4일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비행 시간대가 가장 좋았다.
호텔은 tripadvisor 타이페이 호텔 3위에 빛나는 Les Suites Ching Cheng. 1위 호텔은 중심가 및 지하철역과 너무 멀고, 2위 호텔은 레지던스를 표방하고 있는데 희한하게도 12세 미만은 투숙이 안된댄다. Les Suites Ching Cheng은 싼 편은 아니지만, Platinum 카드 서비스로 3박을 2박 가격에 묵을 수 있었다. 호텔은 7층 규모로 크지 않지만 서비스들은 만족스러웠다. 특히 비교적 번화한 난징동루역에서 100m 정도로 매우 가까워서 좋았다. 공항버스도 한번에 타고 걸어갈 수 있다. 인천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공항버스 가격은 6천원 정도로 저렴한 편.
오후 1시 좀 넘어서 호텔에 도착하니 체크인이 3시부터나 가능하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인지라 방에서 정비를 좀 하고 나가려 하였는데, 대신 호텔 조식을 제공하는 라운지에서 커피와 쿠키 등이 항시 무료로 제공되어 그곳에서 일단 좀 쉬고 있으려니 2시도 되기 전에 담당자가 와서는 방이 준비가 되었다고 했다. 업그레이드 어쩌구 그랬는데 방이 별로 큰 편이 아니어서 정말 업그레이드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세식구 3박 정도 쓰기 크게 불편하지 않은 깔끔한 시설.
엄마와 아이는 침대에서 좀 뒹굴거리고, 아빠는 그제야 열심히 첫날의 루트를 짰다. -_-;
3시쯤 되어 기내식 아점에 이은 늦은 점심을 먹으러 딘타이펑 본점으로 출발.
딘타이펑 본점은 융캉제에 있는데, 지하철인 MTR 역에서 한정거장 정도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어서 좀 걸어야 했다. 큰길도 있었지만 기왕이면 골목길들을 다녀보는 재미도 크기 때문에 일부러 넓지 않은 길로 가봤다. 좀 후진 일본같은 느낌이 난다. ㅎㅎ
역시 꽤나 남쪽인 것이, 거리에 이런 나무들도 있다. 11월말~12월 초이지만 낮에는 거의 20도까지도 올라가고, 저녁에도 10도 정도라 얇은 잠바 하나 정도면 다닐만 하다.
딘타이펑 근처에 다 와서야 무슨 역같은 것을 발견하였는데, 새로이 무슨 노선이 공사중인가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가지고 간 두어가지 종류의 MTR 노선도가 out of date였던 것이었다. 우리가 걸었던 한정거장 거리만큼은 결국 걸을 필요가 없었던 셈. 그래도 뭐 여행의 재미는 걸으면서 마주치는 일상적인 풍경들에 있다.
큰 길가에 있어 찾기 쉬운 딘타이펑 본점은 오후 4시쯤이라는 시간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본점이라 그런지 한국에서 가본 딘타이펑 지점들보다 훨씬 소박하다. 여긴 2층인데, 계단이 어찌나 좁은지 한꺼번에 사람들이 왕복으로 올라가고 내려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몇가지 주문해 보았는데 역시 샤오롱바오가 제일 맛나다. 가격은 우리나라에서보다 착한 듯.
우리 가족은 앞에 보이는 카운트 바로 앞자리에 앉았었는데 가장 안쪽 창가자리에는 외국인들 몇 가족 일행이 와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핸드폰으로 싸이 강남스타일을 틀었더니 아이들은 춤추고 어른들은 웃고 난리였다. ㅎㅎ
융캉제에서는 별로 끌리는 것이 없어서 먹고선 바로 중정기념당으로 향했다. 벌써 저녁이 되어 간다.
공원처럼 꾸며놓은 곳에 들어서자 커다란 건축물이 눈길을 끈다. 왠지 오사카성이 생각나는 위용.
내부는 그냥 들어갈 수 있는데 특별한 볼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다.
정권에 따라 이곳 이름이 바뀌어 왔는데, 뭐 자세한 대만 역사 얘기는 여기저기 많으니 자세한 설명은 통과.
중정기념당 앞쪽으로 이런 커다란 건물이 양쪽으로 있는데, 명칭은 정확히 모르겠다.
구글맵에 나와있기로는 National Theater와 National Concert Hall이다.
역시 규모가 으리으리한데, 조명을 받은 붉은색 기둥들이 인상적이다.
지하철이 있는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이지만, 도시 주요 지점들을 연결하는 지하철은 매우 유용한 이동수단이다.
타이페이의 MTR도 가격이 싸고, Easy Card라는 것으로 사용하기 쉽다. 1 day free 이런 종류의 티켓보다도, 쉽게 구입해서 요금 할인받아 사용하고, 나머지 잔액도 쉽게 환불받을 수 있어 좋다. 구간별로 요금이 달라도 알아서 정산되므로 신경쓸 필요 없다. 아이는 115cm 이하면 무료인지라 Kiwi는 아직 무료!
지하철 역의 풍경은 중국과 일본의 중간같은 분위기. 대만에서 수도없이 받은 느낌이 중국과 일본의 중간같다는 점이다.
뭐 대만이 일본을 좋아하는 것이야 워낙 잘 알려져 있지만, 직접 겪어보는 건 또 색다른 느낌이다.
특히 중국과 비교해보면 민족성보다는 문화가 우선이구나 싶은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우리나라도 비교해보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지하철역은 이렇게 위가 트인 경우가 거의 없다.
어느 지하철역을 가봐도 천장은 낮고, 통로 역시 땅굴처럼 답답하다.
하지만 북경만 해도 이런 스타일의 지하철 역들이 꽤 있다.
이곳은 타이페이 최고 번화가라길래 한번 들러본 시먼띵.
하지만 그야말로 명동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라 굳이 와볼 필요는 없는 듯.
뭐 타이페이에서 굳이 꼭 봐야한다라고 할만한 곳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 들러도 그만 안들러도 그만.
나중에 꼭 가보라 권할만한 곳들만 따로 꼽아볼까 한다. ㅎㅎ
그런데 Kiwi는 장난감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떼를 써서 거북이 인형을 하나 득템했다.
여행 내내 어찌나 예뻐하던지 사주긴 잘했다 싶었다.
시먼띵에서 멀지 않은 룽산스.
규모가 그렇게 크진 않지만 꽤 화려하다.
그러고보면 순수(?) 불교사원도 한중일 중에선 우리나라에서만 쉽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일본도 그렇지만 대만도 다양한 신들이 있는 듯. 도교사원을 더 만나기 쉬운 것 같다.
늦은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소원을 비는 모습들이다.
절 입구의 매점같은 곳에서 과자나 과일 등 다양한 간식거리를 팔고, 대부분은 요기 제물처럼 올려지는 듯.
나중에 수거해서 다시 팔려나? ㅎㅎ
예전에 도쿄 여행 마지막날에 들렀다가 수많은 인파에 놀랐던 아사쿠사가 생각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발디딜 틈 없이 들어차 뭔가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고 빌던 모습은 그 당시에도 왠지 일본보다는 중국 모습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여기서 비슷한 풍경을 접하자니 오히려 일본이 떠오른다. 불을 피우고 그 연기를 쐬는 모습들도 같다.
룽산스 근처에 있는 화시제야시장.
더운 여름이었다면 더 왁자했을텐데 이날은 비도 몇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단체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가이드북에서 보니 이곳은 좀더 관광객들 위주의 야시장이고, 북경의 왕푸징 샤오츨제를 능가하는 엽기적인 것들이 있다고 들었으나, 좀 쇠퇴했거나, 시즌이 아니었거나. 유리관에 커다란 뱀을 넣어둔 가게는 보았다. 아우 그리고 역시 적응 안되는 초두부 냄새. Kiwi도 냄새난다고 찡그린다. 난 어릴때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치즈(그냥 흔한 체다 슬라이스 치즈)를 냄새 때문에 못먹었었는데.
암튼 여차하면 비위가 상할까봐 첫날부터 무리할 순 없고, 아주 안전하게 생긴 것들 위주로 몇가지 사먹어 보았다. 가격들은 싸다. 오방떡 같은 건 10위엔이니 우리돈 400원 가량. 커다란 소시지도 우리돈 천원 정도였는데, 여기저기서 맛있으니 먹어보라 했던 건데 나는 좀 별로였다. 잘못 고른 것일 수도 있겠으나.
저녁을 야시장에서 간식거리로 때우고 오니 뭔가 부족함이 느껴졌다.
yeon과 Kiwi가 씻는 동안 나는 호텔 주변을 돌면서 주변 파악을 했다.
꽤 괜찮아 보이는 식당들도 몇군데 있고, 편의점이나 빵집, 모스버거, KFC 등도 바로 근처여서 뭐 사먹기에도 편했다.
편의점보단 상품이 다채로운 Wellcome 수퍼마켓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둘러보다 보니 우리에게 딱 필요한 것을 발견.
신라면 컵라면과 맥주, 안주거리, 아이 우유 등을 사왔다.
겨우 여행 첫날인데 외국에서 한국라면은 왤케 맛있나. 아이용으로 조금 싸온 도시락에 남은 밥까지 더해서 싹싹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우리 여행 즐거움의 반인 맥주 타임.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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