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에 걸친 드라마 Lost의 마지막, The End까지 보았다. (스포일러 있음)
3시즌까지 방송에 맞춰 보다가, 워낙에 등장인물도 많고 시공간도 꼬여 있는 복잡한 스토리인지라 다시 복습하면서 보기도 만만치 않아서, 완결될 때까지 3년을 또 안보다가, 종방을 하고 나서야 한꺼번에 몰아서 보았다.
미스테리라 하기도 이상하고 SF라 하기도 이상한 큰 줄거리에, 매 에피소드마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드라마들이 때로는 회상으로, 때로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시공간에서 펼쳐진다. 수많은 인물들의 사연들도 흥미롭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드라마들이 로스트의 메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늘어놓아지는 떡밥의 향연이야말로 로스트의 핵심이 아니었을까. 결국 큰 줄거리를 설명하는 데에는 별로 의미없는 것들이 마치 큰 의미가 있는 것 마냥 늘어져 있다. 그렇지만 그런 부분들이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아니라 로스트를 이루는 그 자체이기도 하다.
2,3 시즌까지만 봐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 드라마가 말끔하게 모든 것을 설명하면서 끝낼 수는 없을 것이라는 걸.
그렇다고 치밀하게 설명할 수 있는 얘기들만 늘어놓았다면 로스트는 이렇게 특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결말을 염두에 두고 쓰기 시작한 줄거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드라마가 어느 정도 끝답게 끝을 낼 수 있기만을 기대하면서 봐왔다.
확실히 1~3시즌이 얘기를 벌여놓는데 더 치중을 했다면, 4~6시즌은 서서히 설명을 하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특히 6시즌은 전체가 엔딩만을 위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이야기들로 채워져있다. 그렇지만 로스트의 비밀을 설명하는데에는 중요하지 않은 그 이야기들이 엔딩을 볼때 진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들이다.
그래서 개개인의 사연들은 큰 감정적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데 반해, 로스트 전체의 엔딩은 여운이 있다.
심지어 중요한 인물들이 죽어나가도, 그 개별적인 사건들은 큰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찰리나 로크의 죽음, 소이어의 연인 쥴리엣의 죽음, 심지어 김윤진 커플의 죽음도 그다지 슬프지가 않다.
그런 점에서 예외적인 인물들과 에피소드가 있다면 4시즌 에피소드5의 페니 위드모어와 데스몬드.
전체적인 구성도 훌륭했지만, 둘이 통화가 되었을 때 페니의 표정이나 둘의 대사가 정말 감동적이다.
이 주름 자글자글한 아줌마도 참 예뻐보인다. (근데 찾아보니 나보다 한살 많다. -_-;;)
나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도 이 에피소드를 언급하고, 타임지에서도 2008년 최고의 TV 에피소드로 뽑았다고 한다.
원래도 좀 좋아했는데, 아무한테나 말끝마다 brother를 붙이는 데스몬드의 말투도 왠지 맘에 든단 말이지.
데스몬드와 페니는 여러모로 로스트 최고의 커플이다.
잭과 케이트 커플은 사실 케이트는 소이어와 잭을 두고 재다가 소이어한테 먼저 갔었던 전력이 있고, 소이어와 쥴리엣도 각각 다른 사람들 좋아하다 둘만 남겨져서 이뤄진 커플이고. 권진수와 선도 섬 밖에선 선이 바람났다 섬에 둘만 남겨져서야 애정을 되찾았고. 록커 찰리와 미혼모 클레어의 조합도 현실에선 별로 이뤄질리 없을 법한 조합이다. 사이드는 도대체 섬안의 섀넌인지 섬밖의 나디아인지 누굴 택할 셈인지 모르겠고, 그밖의 기타 커플들은 더 존재감이 없고.
데스몬드와 페니는 섬에 의해 가장 오래 떨어져 있었으면서도, 유일하게 섬안과 섬밖에서,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가면서 애정을 지켜낸 커플이다. 괜히 감동적인게 아니었다.
엔딩은 열려있는 것도 아니지만 해석의 여지가 많이 있다.
설명하지 않은 수많은 것들을 두고 완전히 막힌 결말을 택할 수는 없었겠지만, 이정도면 훌륭한 마무리라고 본다.
1,2시즌 방영후 나왔던 수많은 추측 가설중에 '연옥설'도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섬은 그 자체로는 '현실'이었다.
왜?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냥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이상한 섬이 있었고, 그것은 현실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가장 큰 반전이다.
초기 시즌들에서는 섬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인물들의 과거가 병치되었다면, 섬 밖으로 나간 이들이 생긴 이후로는 과거로 돌아간 이들의 현재와 섬 밖의 현재가 병치되었다. 6시즌은 다른 시즌들과는 달리, 과거도 현재도 아닌 전혀 '다른' 세계를 섬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함께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평행우주를 예상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가장 이상한 곳이었던 섬이 아니라 6시즌에서 보여준 현실같은 세계가 현실이 아니었다. 사실 현실이 아니었다는 말은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모든 것은 진짜였으되, 그것이 꼭 우리가 존재하는-존재한다고 믿는-현세가 아니었던 것이지. 전에 꽤 인상깊게 보았던 일본영화 '원더풀 라이프'도 떠올랐던 결말이다.
특히 6시즌은 종교적인 비유와 해석의 여지가 많았는데, 그 중심이 되는 인물들 -제이콥, 검은연기, 벤자민 라이너스, 리카르도, 위드모어 등-이 결국은 모두 그렇게까지 중요한 인물들은 아니었다는 결말이다. 다들 그렇게 살다가 간, 가게 될 인물들이었을 따름이다.
감동적이었던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보면서, 새삼 미국이 여전히 대단한 구석이 적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6년간 이런 퀼리티로 하나의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끝과 마지막 장면을 맞추고, 옆에 달려와 같이 누운 강아지도, 마지막 로스트 타이틀 뜨면서 끝을 맺는 음향의 울림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대충이 없는 디테일들이 경이로왔다.
빠져서 봤던 드라마들이 끝나면 확실히 영화와는 다른 감흥이 남는다.
아무리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도 줄 수 없는 그런 감흥, 그만큼 함께한 시간만이 줄 수 있는 마지막의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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