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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s/reading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by edino 2024. 4. 8.

이 책은 들어본지는 꽤 되었는데, 읽을까 말까 하다 넘어갔었는데, 지인들의 추천사도 보고, 다시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 책 설명을 보다가 이 책이 언급된 것을 다시 보고, 어쩌다보니 yeon이 먼저 읽고 있는 걸 봤고, 암튼 여차저차하여 읽게 되었다.

 

막상 읽게 되었을 때는 스토너와 함께, 엄청나게 기대를 가지고 보게 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스토너는 기대를 넘어섰고, 이 책은 기대가 조금 과했다.

이 책에 대한 정보가 적었음에도 기대를 가지게 된 것은 역시 호평들 때문이었는데... 평들이 너무 좋았단 말이지.

정보가 얼마나 없었냐 하면, 이 책을 소설인줄 알고 읽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실망스럽거나 그런 건 아니고, 거의 마지막까지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갔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이 책이 내게 명작이 될 것인가 아닌가는 마지막에 달려있는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작가는, 인생의 질문에 답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야심, 혹은 절박함이 질문의 형태로 계속되니, 그 대답이 내게 마음에 들지 안들지가 중요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그 답이 나쁜 건 아닌데, 심지어 좋은데, 다른 평들이 너무 좋았듯이, 질문도 너무 거대하게 느껴졌다.

이하 스포일러, 읽지 않았다면 돌아가시오.

 

 

데이비드 스타 조던, 전혀 모르던 사람을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묘사한 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소박하지만 끈질김을 가진 내향적인 학자처럼 보이던 초반부를 지나, 시대를 잘 만나(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가 그때만큼 각광을 받고 성과를 쏟아낼 수 있었던 시기는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시절, 그리고 그에게 스탠포드 초대 학장이라는 날개가 달리고, 그의 야심이 그를 '악당'으로 몰고가기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의 악행(살인 배후는 의심이지만, 우생학에 앞장선 것은 밝혀진 사실)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스탠포드나 그의 이름을 딴 학교들에서 그의 흔적 지우기(그의 이름을 딴 공간이나 학교 이름 바꾸기, 그의 스승이자 인종주의자인 Louis Agassiz 동상 치워버리기 등)가 계속 되고 있다. 최근까지 그런 인물이 기념되고 있었다는 것은 경악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알려졌으면 그의 과오를 비판하는데 의견들은 모이는 것 같은데, 최근 선거전에 논란이 된 모 여대 초기 총장(심지어 초대도 아님) 김모씨는 왜 아직도 무지성 옹호가 많을까. 그의 행적을 비판하는 것을 자신들이나 그들의 학교에 대한 비판으로 여기는(아니면 그런 척 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튼 작가는 자신에게 인생의 답을 줄 것이라 기대했던 인물의 '배신'을 아주 훌륭하게 응징했다.

그리고 나는  작가의 아버지로부터도 한 가지 타산지석으로 배웠다.

아이들에게는 아무리 진실이라도 너무 빨리 알려줘선 안되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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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이 폭풍우는 짜증스럽기만 한 일일까? 어쩌면 그것은 거리를 혼자 차지할 수 있는 기회, 온몸을 빗물에 적셔볼 기회, 다시 시작할 기회일 수도 있다. 이 파티는 당신이 예상하는 것만큼 따분할까? 어쩌면 그 파티에서는 담배를 입에 물고 댄스플로어 뒷문 옆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친구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 친구는 앞으로 수년간 당신과 함께 웃고 당신의 수치심을 소속감으로 바꿔줄지도 모른다.

 

내가 세계를 이런 식으로 보는 데 익숙하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나의 확실성을-그러니까 나의 테디베어를-꼭 붙잡고 있고, 원망은 늘 그대로 남아 있으며, 나의 두려움은 늘 빵빵하게 차 있고, 지구는 납작하다. 하지만 그러다가 나는, 이를테면 인체에서 "사이질interstitium"이라는 새로운 기관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읽는다. 늘 거기 있었지만 어째선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놓치고 있었던 것. 그러면 세계는 조금 더 벌어지며 열린다. 그리고 나도 다윈이 했던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되새긴다. 우리의 가정들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실에 관해 궁금해해야 한다는 것을, 그 볼품 없는 박테리아는 어쩌면 당신이 숨 쉬는 데 필요한 산소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을 그 단단한 가장자리에서 마지못해 뛰어 내리게 했던 실연은 결국 더 좋은 짝을 찾게 해준 선물로 밝혀지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의 꿈들까지도 검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의 희망까지도... 어느 정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

 

그 "질서"라는 단어도 생각해보자. 그것은 오르디넴 ordinem이라는 라틴어에서 왔는데, 이 단어는 베틀에 단정하게 줄지어 선실의 가닥들을 묘사하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단어는 사람들이 왕이나 장군 혹은 대통령의 지배 아래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은유로 확장되었다. 1700년대에 와서야 이 단어가 자연에 적용되었는데, 그것은 자연에 질서정연한 계급구조가 존재한다는 추정-인간이 지어낸 것, 겹쳐놓기, 추측에 따른 것이었다.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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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우울하거나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은 작가의 맺음말에 나온 추천 도서를 적어둔다.

 

대니얼 롭, 그 물을 건너다

제니퍼 마이클 헥트, 살아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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