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에 대한 최초의 생각은 아주 오래 되었다.
고등학교 친구 모임이 있는데, 거기에서 매달 회비를 내서 그걸 모아 여행을 가자는 아주 단순한 생각.
이제 막 결혼한 녀석들도 있고, 아직 결혼 안한 친구도 있던 시절, 아이들도 없던 시절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여행은 10년도 넘은 프로젝트의 결실이다.
돈은 모으기 시작하였으나, 매달 걷기도 귀찮고, 쌓이기는 하는데 쓸 기약은 안보이고, 하여 4년쯤 걷다가 더이상 모으는 것은 중지하였다. 그동안 멤버들 모두가 결혼하고, 아이들은 태어나고, 여행은 꽤나 요원한 일이었다. 가끔 빠짐없이 모두가 모이는 송년회나 가족 동반 모임 등에서 회비를 일부 쓴 걸 제외하고, 그 돈은 저금리 탓에 눈에 띌 만큼 불어나지도 않은채 그대로 있었다.
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모일 때마다 단골 안주거리였다.
인당 80만원 정도의 남은 예산, 가족동반 여행으로는 국내 정도 가능할 것이나, 나는 남자들만의 여행에 쓸 것을 틈날 때마다 주장하였다. 다들 남자들만의 여행이 구미에 당기기는 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자신있게 동참 의사를 밝히지 못하였다. 해보지도 않고 자기검열에 주저앉은 중년의 남자들.
그러다 올해 초, 한두명이 계기를 만들어냈다. 일단 베풀기로 집에 포인트를 적립해두었달까. 한 녀석이 꽤 적극적으로, 그 포인트 유효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사용하기 위해, 남자들만의 여행 의견에 적극 동조하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서울에서 술자리에 다 모이기도 힘든데, 여행까지 모두 일정을 맞추는 것은 지레 포기하고, 3명만 모이면 여행을 가는 것으로 추진했다. 마찬가지로 베풀기로 포인트를 적립해둔 또다른 친구가 동참을 선언했다.
3명이 모이니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5월중으로 일정을 잡고 3명의 여행 선언이 있자, 자신 없어하던 친구들도 과감히 집에 승부수를 띄웠다. 생각보다 쉽게 허락을 얻어낸 녀석들. 7명의 모임에서 그중 하나는 외국에 살고, 집에 포인트보다는 마음의 빚이 많아 포기한 한 친구를 제외하고 5명이 뭉쳤다. 모두가 맞추기 위해서 휴가는 최소화, 금요일 단 하루 휴가를 내고 2박 3일로 짧게 일본을 다녀오기로.
날짜를 잡은 이상 이탈자를 막기 위해 비행기표 예약을 서둘렀다.
여행지의 선택 기준은 비행기표가 싸고, 다들 가보지 않은 곳일 것.
생각보다 우리나라에서 직항으로 갈 수 있는 일본의 도시들은 꽤 많다.
기준에 따라 정한 곳은 기타큐슈. 후쿠오카에서 가까운 곳이다.
금요일 아침 일찍 출발해서 일요일 아침 일찍 돌아오는, 꽉찬 이틀 정도의 일정.
이틀이긴 하지만 크게 볼거리가 많지는 않아 보여, 그중 하루는 료칸으로 갈까 했었다.
하지만 적당한 거리, 적당한 가격에 좋은 료칸은 드물었다. 한 곳이 눈에 들어왔으나, 아쉽게도 예약하려던 시점에 이미 만실. 다른 료칸들을 무수히 알아봤으나, 그만큼 조건에도 맞고 눈에 들어오는 곳은 없었다.
결국 괜찮은 목욕시설이 있는 호텔로 1박을 잡았다. 첫날은 기타큐슈에서 가까운 시모노세키의 호텔.
내린 날도 알찬 일정을 보낼수 있는 이점은 있으나, 이른 비행기는 역시 피곤하다.
여행 당일, 새벽 3시반에 일어나 둘은 우리집 앞에서 만나 차로 같이 갔고, 둘은 공항에서 만났다.
나도 몇시간 못잤고, 못일어날까봐 아예 샜다는 친구도 있었다. -_-;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공항은 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별로 세운 것도 없었던 우리의 계획은 시작부터 어긋났다. 일찌감치 들어가서 라운지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려 했으나, 라운지는 우리가 비행기 탑승할 시간부터 연다고. -_-; 그나마 라운지 앞에 꽤 편히 누워 쉴 수 있는 곳이 있어,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다.
짧은 비행을 거쳐, 기타큐슈 공항에 내렸다.
작은 공항이라 한국과의 노선이 없으면 국제공항이라기도 뭣할 공항이다.
수속을 하는데 입국카드 연락처에 꼭 호텔 전화번호를 써야 한다고 하여 좀 귀찮았...
아무튼 공항을 나와 바로 버스로 고쿠라역에 도착.
거기서 다시 전철 같은 기차를 타고 서너 정거장만 가면 시모노세키역이다. 큐슈섬이 혼슈섬과 이렇게 가까운줄은 몰랐다.
이른 시간이라 짐만 호텔에 맡기고, 바로 다음 행선지로 출발.
여행 일정을 짤 시간은 충분하였지만, 언제나 그렇듯 미루다 보니 이틀전에야 후다닥.
다행히 요즘은 괜찮은 여행사이트들이 있어, 자유여행 일정 짜는데 꽤 도움이 된다.
갈 곳들을 검색해 시간표에 나열하면 둘간 거리나 이동시간도 나오고, 지도에 루트 표시가 되니 순서도 편히 바꿀 수 있고, 그러고 나면 지도까지 해서 거의 여행책자처럼 pdf로 뚝딱 만들어준다.
우리의 첫 방문지는 가라토 시장.
칸몬 워프는 가다 보면 들르게 된다.
그렇다. 첫 행선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우리의 여행은 식도락이 절반이다.
가라토 시장은 금요일 포함 주말에 초밥을 싸게 판다고 한다.
넓은 시장 안에서도 초밥을 파는 곳들은 저렇게 몰려 있고, 또 거기에만 사람들이 몰려 있다.
구성을 해놓고 파는 것도 있고, 초밥류는 빈그릇에 골라 담는 것도 있다.
일일이 초밥 종류별로 셈을 해서 가격을 매긴다.
짜잔! 이게 맥주 빼고 11만원쯤 된다.
동그란거 네개는 덮밥류이고, 양쪽에 초밥 골라담은 것과 왼쪽 위에 대패로 썬 듯 얇은 복어회가 있다.
맥주를 사러 간 친구가 먼데 까지 가서 사오느라 한참을 기다렸다.
아침에 라운지 계획이 틀어지고, 저가항공이라 기내에서 주는 것도 없어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아무것도 못먹었다.
기다리느라 정말 배고파서 먼저 먹으려는걸 겨우 참았다. 나는 지금은 맥주 따위 필요 없단 말이다!
일본에서 이런 문화라니 약간 의외이긴 한데, 따로 자리도 없고 그냥 바깥에 바다를 보면서 아무데나 앉아서 먹는다.
맛은 다 훌륭하다. 너무 배가 고파 다 잘 먹었을 것 같긴 하지만.
먹고 나니 나는 금방 배가 차서 다음 행선지로 향하고자 했으나, 한 친구가 복어튀김을 못먹었다고 꼭 먹어야겠단다. -_-;
시모노세키는 특히 복어로 유명하다. 일본 유통량의 80%를 담당한다던가.
근데 지금부터 오늘 두 끼 더 먹을 예정인데 굳이 그걸 사와서 먹으려면 걸리는 시간이 아까웠다.
4명은 먹고 오라 하고 나 혼자 먼저 출발.
어차피 시모노세키에서의 동선은 아주 단순하다. 바다를 따라 쭉 걷다 모지코쪽으로 넘어가면 된다.
대도시가 아니고 볼거리도 한정적이라 크게 의견 나뉠 일도 없다. 그리고 한 친구 말고는 마치 패키지 여행 따라온 양 그냥 가자는 대로 따라왔다.
암튼 나는 먼저 아카마 신궁으로 향했다.
뭐 이 신사의 이런 저런 사연들은 뒤져보면 다 나온다.
나는 그저 사진이나 찍는다.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아카마 신궁 바로 건너편에,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가 있다.
밖에서 눈에도 잘 띄진 않지만, 저렇게 작게 공원처럼 되어 있고, 호젓한 벤치는 연인들 차지.
한글도 적혀 있어 읽어봤는데, 의외로(?) 조선에 대해 좋게 써놓아서 오호라? 했다.
"....국가 외교 뿐만 아니라, 선진 문화국인 조선의 문화사절로서 세련된 학문, 화려한 예술, 뛰어난 문화의 향을 전하여, 성심으로 교우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존숭의 념을 깊게 아로새겨 문화교류와 친선의 크나큰 성과를 거두었다..."
나중에 친구에게 이 얘길 하니, 영어나 일어로는 또 어떻게 써놓았을지 모른다고 하더군. 일본 어디선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관련된 유적 표지판에 그로 인해 조선 백성들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써있었는데, 영어로 적힌 건 또 묘하게 뉘앙스가 다르더란다. 일본애들 답구나 싶었다.
아카마 신궁과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를 보고 나니 복어튀김파가 도착했다. 그 친구들 구경하는 동안 나는 또 먼저 출발.
큐슈와 혼슈를 연결하는 간몬교.
여기까지 걷는 길은 매우 한적하다.
그런데 이렇게 한적한 길 중간에 이런 미니 신사가 있다. 올라가보니 저 보이는 데까지가 전부이다.
올라가 보면 후시미이나리신사 같은 데서 많이 보던 여우상들이 있다.
주변에 사람도 없고, 나무 그늘에 가려 음침한 느낌까지 든다.
모지코까지 간몬교 말고 지하터널로 건널 요량이다.
비행기로 큐슈에 내려 기차타고 혼슈에 왔는데, 다시 걸어서 큐슈에 갔다 배를 타고 혼슈로 돌아오는 코스다. ㅋㅋ
그 앞에 무슨 전투가 있었던 곳이라는데, 일본 역사에 큰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걸어서 건너는데 따로 입장료는 없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이런 길이 나온다. 보다시피 사람은 많지 않다.
780미터 길이로 곧게 뻗은 길인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 보면 완만한 V자 형태라, 중간까지는 약간 내리막이고, 나머지는 약간 오르막을 오르게 되어 있다. 바다 밑이라고 생각하면 좀 갑갑한 느낌이 든다. -_-;
이 인도 중간에 현간의 경계가 있다.
시모노세키 숙소에서 시작하여 모지코까지 대략 7km 정도로 나와서 걸을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애들이 지쳐했다. 뭐 날씨도 좀 덥긴 했지만, 다들 모자 같은 준비들도 부실했고, 체력들도 부실하고. 나만 썬크림에 선글라스까지 완벽 준비. 다들 간몬터널 건너고 나서 퍼져 있는 동안, 바로 근처에 있는 메카리 신사를 보고 왔다. 이런 곳에 신사라니 좀 특이한데, 미역과 관련된 행사를 한다고. 규모는 자그마하다.
모지코까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2km 남짓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모지코 레트로에 도착.
중년의 아저씨들이 바나나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ㅋㅋ
적당히 둘러보다 모지코 맥주공방이라는 곳에 들렀다.
나는 이름만 보고 뭐 맥주 만드는 실습이라도 하는 곳인가 하고 일정에 넣어뒀는데, 그냥 음식점이다. ㅎㅎ
식도락 여행인데 하루에 점심, 저녁 두끼만 먹을 수는 없다.
가볍게 야키카레와 맥주. 무슨 맥주를 넣어 만든 카레도 있다. 먹을만하다.
나올 때 집에 가져갈 카레도 하나씩 사가지고 왔다. 그냥 덩어리 카레 같은 건줄 알고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삼분카레 같은 거였다. 하나에 일인분으로 치면 꽤 비싼 편.
모지코 역에 들렀는데, 실제 사용중인 역이지만, 겉은 공사중이다.
다음은 큐슈 철도 기념관.
저질 체력 아재들 슬슬 또 상태 안좋아 보인다.
바깥에 전시된 기차들 전부 보고 온 건 나뿐.
나와서 다시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케익도 같이 파는 커피집에 들렀다.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맛도 없고 양도 엄청 적고, 싸지도 않고. 케익도 맛없긴 마찬가지.
일본은 다 맛있다는 편견을 깨주는 곳이었다.
대충 먹고 이제 정말 좀 재정비하려 숙소로 향했다.
페리가 숙소 근처까지 가면 좋았겠으나, 가라토 시장 근처로 간다.
숙소까지는 다시 버스를 타기로.
트윈룸이 잘 없어서 2박 모두 싱글룸들로 예약했다.
예상했듯 작고, 뷰라고는 없는 방이지만 오랜 시간 보낼 것도 아니기에 큰 불만 없는 방이다.
조식 포함 7만원대이니 뭐 그정도면 괜찮다.
대욕장을 보고 예약한 호텔이라, 각자 짐을 풀고 곧 목욕탕에서 만났다.
나름 노천탕도 있고, 분위기 괜찮다.
바다가 보인다...라고 하기에는 너무 산업 항구같은 느낌이라. ㅎㅎ
그래도 날씨가 좋아 해질 무렵 노천탕에 있기 좋다.
저녁 예약을 9시로 미뤘다.
한 친구가 일어를 더듬더듬 해서 도움이 되었다.
각자 좀 쉬다가,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카이쿄유메타워에 갈 사람들은 좀더 일찍 보자고 하였다.
다들 지쳐서 많이 안따라나올줄 알았는데, 다 같이 나서더군. ㅋㅋ
이 타워의 몇가지 놀라운 점은 우선, 이 타워는 건물이 아니다. 그러니까 전망대 근처 몇개 층을 제외하고는 그냥 비어 있다. 철골을 드러내지 않게 하는 유리가 있을 뿐이지, 중간에 사무공간이라던가 하는 게 없다. ㅎㅎ
올라가서 본 야경은 이렇다. 저 조명이 색색이 바뀌는 대관람차 없었으면 정말 심심했을 야경이다. ㅋㅋ
또 하나 놀란 건 사람이 정말 없다. ㅋㅋ
그리고 여긴 신기하게 local 할인이 아니라 외국인 할인을 해준다. 여권 보여주니 반값. ㅎㅎ
우리의 첫날 저녁 장소는 또다시 가라토 시장 근처다. 오늘만 세번째 온다. ㅋㅋ
이번에도 버스를 타고 왔다.
메뉴는 돼지고기 샤브샤브, 인데 조금 비싼 메뉴(인당 4만원 정도)를 선택하면 쇠고기도 무제한 주문할 수 있는 뷔페식이다. 단품으로 시키는 것도 가능하지만, 일단 두명의 대식가를 포함한 남자 다섯이라 뷔페식으로.
거기에 인당 만오천원 정도를 내면 술도 무제한. 뭐 역시 무제한에 포함된 와인은 형편없지만, 사케는 먹을만 했고, 맥주는 뭐 따로 시키는 것과 똑같이 맛있다.
훠궈에서처럼 생긴 냄비에 2가지 소스를 베이스로 끓이는데, 훠궈는 내가 싫어하는 향신료 때문에 안좋아하지만 여긴 맛있다. 저런 접시 하나하나를 계속 주문하면 가져다 준다. 하나가 양이 많지는 않지만 한 40판 정도 시키지 않았나 싶다. 곱창 같은 특수부위들도 있고, 쇠고기, 돼지고기도 당연히 맛있지만, 닭고기도 맛있어서 계속 다양하게 시켰다.
여기서 오늘 식사는 마무리 하였으니 결과적으로는 싸게 먹힌 저녁이었댈까.
부른 배를 조금이라도 꺼트리고자 돌아올 땐 걸었다.
가다가 또 편의점에서 맥주를 굳이 사서, 한방에 모여 나눠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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