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hitchat/economy

암호화폐, 블록체인

by edino 2018. 1. 12.

기술이 이렇게까지 논쟁적인 주제가 된 역사가 또 있을까?

라고 쓰고 보니 왜 없었겠나. 예를 들어 자동차만 해도, 아니면 아직 본격화되기 전인 유전자 조작 기술이라던가.

하지만 대체로 기술과 윤리 등의 논쟁이었지, 이렇게 기술적으로 '어려운' 논쟁은 처음인 듯 싶다.

 

나는 비트코인 투자자도 아니고, 어설프게 알던 블록체인 관련 기술도 '16년 이후로 별로 업데이트가 안되어 있고, 경제 또한 전문 분야가 아니다. 블록체인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게 뭔지 알고 있는 정도.

어차피 내 의견도 누군가의 의견과 같을 것이고, 논쟁판에 끼어들 생각도 없지만, 내 맘대로 글을 남겨본다. 몇년 뒤에 보면 지우고 싶을 수도 있다. ㅋㅋ

 

내가 처음 비트코인을 알고 투자해볼까 했던 때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국내에 처음 비트코인이 화제가 되기 시작했던 때이다. 지금 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 화제가 되었던 때니까, 남들보다 엄청나게 빨리 알았던 것도 아니다. 어쨌든 거래소는 벌겠구나 싶어 찾아보니 이미 모 대기업 계열사도 거래소에 투자를 했던 때이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만에 하나라도 이게 대세가 된다면 1BTC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전세계 작년 GDP가 80조USD 정도 된다. 자산으로 따지면 훨씬 더 크겠지만 대충 이걸 비트코인 전체 발행량 2100만개로 나누어보면 비트코인이 전세계 통화를 모두 대체한다고 쳤을 때 1BTC가 적어도 381만USD 가치는 되겠지. 그때는 1BTC도 그리 비싸지 않았고, 혹시라도 내가 가진 현실화폐 자산이 0이 되면 헷지로는 충분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때 좀더 부지런해서 비트코인을 샀더라도, 게다가 먼 미래에 대한 헷지 차원에서 보험처럼 산 것이니 매매를 반복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금처럼 난리가 나봐야 내가 벌 수 있는 돈은 현재 시세인 1,500만원을 넘지 않는다.

 

순전히 게으름 때문에, 그리고 다른 우선순위들에 밀려, 비트코인을 구입하기 전에 제대로 공부해보자 싶어 기술적인 책을 사서 읽은 건 '16년이 되어서다. 그때의 결론은 비트코인은 생각보다 안전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거래소를 통하면 거래소가 약점이오, 개인적으로 보관한다면 내 PC가 털리면 끝이다. 종이에 적어놓자니 이건 더 불안하다. 어떻게 해도 나는 거기에 큰 돈을 넣어둘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또 우물쭈물하면서 여전히 헷지 차원에서 1BTC만 사두려고 진지하게 마음을 먹고 가격을 알아본 때가 '17년 중후반. 이미 연초 대비 5배 넘게 올라있더라. -_-;; 이제는 1BTC도 못사게 되었고, 이제는 영원히 비트코인은 사지 않는 것이 - 혹시라도 어떤 거래를 위해 필요하다면 바로 사서 바로 쓰는 교환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 - 내 자산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

 

어릴 때, 경제학에 대해서 지금보다도 더 무지했을 때, 나도 발행총량이 고정된 화폐가 이상적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면 인플레이션도 없을 것이오, 사람들은 화폐의 가치가 줄어들지 않으므로 더 소비를 뒤로 미루는 바람직한(?) 삶을 살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도 하고. 그때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체계를 이상적으로 생각했으니, 그런 체계에는 그런 화폐가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그러니 처음 그런 체계를 사토시가 만들었다고 하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론적으로 통화량의 증가가 자본주의 경제 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건 알게 되었지만, 뭔가 비트코인의 신비하고 이상주의적인 이미지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지.

 

하지만 발행량이 정해진 비트코인류는 교환의 매개체나 투기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현실화폐를 대체할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발행량이 정해져 있는 화폐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Ponzi의 세계다. 먼저 들어간 사람이 이득을 볼 수 밖에 없는 세계에 새로운 유입자들은 언젠가 끝이 나게 되어 있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 이미 정해져 있는 세계에, 돈을 벌자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언젠가 자기가 승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때의 붕괴는 필연적이다. 그럼 발행량이 계속 늘어나는 암호화폐는 어떨까? 암호화폐의 가장 큰 '매력'이 없어지는 셈이다. 이렇게 붐조차 일어나지 않았겠지.

 

현실화폐를 암호화폐가 대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가치의 안정이다. 농담 아닌 농담처럼, 커피 한잔을 2500원에 팔았는데 받아서 통장에 넣으려고 했더니 3000원이 되어 있다면, 누가 그 화폐로 거래를 할 수 있을까. 그 화폐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아니면 그 화폐는 받은 즉시 현실화폐로 바꿀 수 밖에 없다. 이 관계가 역전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경제 파탄으로 실물경제가 망가진 나라의 화폐는 예외다.) 그렇다면 언제나 주도권을 가지는 것은 현실화폐이다. 암호화폐의 교환가치가 아무리 높아져도 현실화폐의 가치가 낮아지지는 않는다. 암호화폐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적어도 패자가 되지 않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보는 근거다.

 

언제나 지하경제는 엄청난 규모로 살아 있고, 그 세계의 거래수단으로 통용이 될 수는 있으니, 아무런 본질적 가치가 없고 이 투기붐이 끝나더라도 비트코인의 가치는 0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확실한 건 지하경제라고 양지의 경제를 넘어 무한정 성장할 수 없으며, 그들도 언제나 양지의 경제를 통해서만 실질적인 이득을 챙길 수 있다.

어쩌면 지하경제의 규모에 따라 비트코인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가치가 커질 수도 있다. 다만 그 가치는 누구도 알 수 없고, 그 가치란 것도 현실화폐와 교환가치를 통해서만 측정 가능하다. 실물가치로 환산한 지하경제의 대략적인 규모라던가 거래량 따위를 알 수 있다면, 아주 대략적인 가정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적정 가치 측정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랬을 때 산출되는 1BTC의 가치가 지금보다 크다면 그때 투자는 나름 논리적인 투자가 될 것이다. 물론 그런 식으로 분석을 하고 투자하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물론 어딘가엔 있을지도 모른다.)

 

-------------------------------------

 

내 결론은 위와 같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그냥 관심을 끄면 그만이다.

만일 내가 행정부의 책임자라면? 규제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루 아침에 막는 것은 어렵겠지.

지속적인 경고를 하면서, 점점 수위를 높이면서, 최대한 연착륙을 유도하는 수 밖에 없다.

선진국들이 암호화폐로 인한 '부'를 독점할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기에 투자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적어도 손해보지 않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암호화폐에 투자 규모가 커지면 실물경제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를테면 주식시장에서의 거래가 상장이나 유상증자 같은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업에 한푼의 돈도 안흘러가는 개인, 기관들간 돈의 이동일 뿐이지만, 주식시장의 폭락도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하지만 주가가 오른다고, 혹은 폭락한다고 재화나 서비스와 바꿀 수 있는 내 돈의 가치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실제로 '거래소 폐쇄'를 하는 건 지나친 처사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메시지'는 적절했다고 본다. 적어도 실물화폐 세계와의 거래를 투명하게 하고, 기존 체계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안할 수 없다.

 

-------------------------------------

 

골치아픈 건 블록체인 기술이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이런저런 이유 다 끌어붙이면서 암호화폐 판을 정당화하는 논리들은 반박할 가치도 없는 얼토당토 않은 것들이 많지만, 암호화폐 잡으려다 블록체인 기술이 열어갈 장미빛 미래까지 다 죽인다는 류의 논리는 쉽게 반박하기도 어렵고, 또 암호화폐 투자자가 아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하기도 하는 이야기이다. 암호화폐 없이 블록체인은 성립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하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들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 알 도리는 없지만, 나는 아직까지 블록체인 기술이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바꾸거나, 안되던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예를 찾지 못하였다. 이더리움, 리플 등 다양한 체계들이 여러가지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건 대략적으로나마 알겠다. 하지만, 예로 드는 블록체인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문제들이 현실에서 그렇게까지 결정적인 문제인지가 공감이 안된다. 주로 드는 예가 컨텐츠나 의료기록 등을 블록체인 기술을 써서 이런저런 걸 한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두가 쓰는 플랫폼이 되었을 때 가능한 얘기이다.

 

생각해보니 블록체인이 꿈꾼다는 컨텐츠 유통체계 비슷한 것을 10년쯤 전에 특허로 쓴 적이 있다. 물론 피해나갈 구멍도 엄청 많은, 돈이 될 특허는 아니다. 그때 구상했던 체계에서도 창작자는 자신의 콘텐츠에 대해 사용 권리와 가격까지도 마음대로 부여할 수 있었다. 2차 창작자가 별도의 협의 없이도 1차 창작자가 허가한 권리 내에서 원본을 가공하여 수익을 나눌 수도 있다. 당연히 기존 기술로 안될 게 없는 것들이다.

 

결정적인 차이는 블록체인 기술이 쓰였느냐 아니냐다. 블록체인 기술이 쓰이면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사용과 과금의 정확성을 '기술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 그럼 단지 그 장점이 모든 창작자들을 불러모을 만큼 결정적인 요소일까?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만으로 해당 영역의 플랫폼을 장악할 만큼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플랫폼을 운영하기 위해 많은 분산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고, 부수적으로 코인이라는 보상체계가 필요하다면, 그 플랫폼은 충분히 기존 시스템보다 저렴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좋게 말하면 앤젤이나 벤쳐 투자요, 나쁘게 말하면 Ponzi인 체계를 뒤늦게 합류할 모두가 수용하려 할 것인가? 아마존은 늦게 입점하나 일찍 입점하나 그 안에 들어가서 경쟁하는 순간 공급자들의 지위는 같다. 하지만 블록체인 체계를 그런식으로 만들어도 동작을 할까? 빨리 합류하지 않으면 큰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위협 말고도 블록체인 체계에 서둘러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너무나 많은 블록체인 기술들이 있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으니, 내가 제기하는 의문에 답을 하려는 기술들도 있을 수 있다. 여러 문제들에 대한 최종적인 답은 아직 나와 있지 않고, 그러니 그에 대한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건 확실히 현명한 처사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아직까지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이 과장되어 있다고 본다. 이전에 있던 기술들도 포함하여 이런저런 요소기술들이 쓰이면서 블록체인 명칭을 이어가는 정도 아닐까. 더군다나 그들이 풀려는 문제는 비트코인이 그랬던 것처럼 너무나 거대한 문제들(정말 문제인지 아닌지는 논외로 하고)이어서, 무척 복잡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분야들 같다. 기술이 문제가 아닌 것들까지 기술로 다 풀려는 접근 방식은 아닐까?

 

-------------------------------------

 

새로운 기술을 홍보하는 사람들은 그로 인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비관론을 말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떠들썩한 소위 '새로운 기술'들에 회의적인 시선을 먼저 두는 편이다.

 

그리고 나는 아마존조차 이제야 진지한 투자 대상으로 바라볼 만큼 보수적인 투자자이다. 재미는 초기의 모험가들이 다 보겠지만, 나는 확실한 콩고물을 더 좋아한다. 대박은 없지만 쪽박도 없다. (사실 이 패턴이 별로 재미가 없어서 조금 더 모험적이고 싶기는 하다.) 어쨌거나 손실을 확정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하는 나같은 투자자는 거들떠도 봐선 안되는 것이 코인판이다. 타의에 의해 블록체인은 좀더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그 기술들 중 내 눈에도 괜찮아 보이는게 나올까? 혹시 나오면 업데이트하는 걸로.

댓글